근대를 관통해온 주체, 그리고 도시와 역사

2016년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 전; 확장하는 선, 서용선 드로잉 

  

이선영(미술평론가)

  

지금 여기에서 작업의 기본으로 돌아가다


2016년 아르코미술관의 대표작가전이 드로잉 전시라니, 아무리 서용선이 한국의 ‘대표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라 할지라도 왠지 격이 맞지 않아 보인다. 요즈음은 젊은 작가들조차도 엄청난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꼼꼼하게 화면을 채우는 것이 대세 아닌가. 방문을 걸어 잠근채 몰두했을 법한 요즘 작가들의 노동집약적인 작업들에서 타자들의 자리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한 추세는 보다 완결도 있는 완제품이 생산자로서의 경쟁력이기 때문일 테지만, 예술이 가지는 자유로운 기풍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점에서 보는 이들 또한 압박을 받게 된다. 아니면 그 초인적인 인내력에 압도 되든지. 시작과 끝을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완제품들에 견준다면, 착상과 작업 과정이 드러나 있는 드로잉은 아무래도 작품 이전의 구상이나 실험에 머문다는 관념이 지배적이다. 반대로 그것은 작가가 스쳐지나가기만 한 그 무엇도 대단한 것으로 떠받드는 물신주의일 수도 있다. 드로잉 전시는 매우 소박하거나 아니면 대단히 모험적일 수밖에 없다. 드로잉 전은 해당 작가가 너무 왕성하게 전시회를 연 나머지 이제는 드로잉 밖에 보여줄 수 없는 궁색함 때문일까. 아니면 엄연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작가를 자료화, 역사화 시키는 맥 빠진 기획일까. 


전시 포스터, 아르코 미술관 1,2층에 7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드로잉으로 그 작가의 기본을 보여준다는 이 전시의 출발은 소박했지만, 사실 서용선에게 드로잉은 회화는 물론, 조각 그리고 산간벽지 마을에서의 공공예술 작업까지 전 방위적으로 작업해온 이의 면모를 포괄적으로 압축하는 위상을 가진다. 나무로 만든 거대한 규모의 조각상이든 벽과 구분될 수 없는 큰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든,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노트 한 켠에 그려진 드로잉과 다를 바 없다. 재료의 물리적 여건에 제한되기 십상인 큰 규모의 작업에서도 여전히 흐르는 자유로운 기운, 노트 한 페이지에 몇 개의 선으로 그어진 형상들에게도 충전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이 전시 작품의 면면들은 그의 드로잉이 본격적인 작품의 준비 단계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디로 뻗어나갈지 불확실하면서도 힘 있게 그어진 선들의 집합은 그 밀도를 약화시키지 않은 채 어른 키 몇 배의 규모로 자라나곤 한다. 마찬가지로 2차원 3차원 상의 공간에 구현된 것은 그자체가 다양한 강도로 흐르고 있는 선, 그리고 선의 확장인 면들이다. 


또한 그에게 선은 동시에 색이다. 미술사에서는 양자 간의 택일 및 방점을 통해 상반되는 사조들이 부침해오곤 했지만, 현대미술의 기본어법을 제시한 세잔과 인상파 이래로, 선과 색은 상보적인 요소가 되었다. 서용선의 작품에서 색은 선으로 인해 힘을 받으며, 선은 색으로 인해 풍요로워 진다. 선-색은 작가의 감성과 사고를 따라 시각화 된다. 신화와 역사든 도시와 인간이든, 화면에 그려진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볼 수는 있지만, 단순한 재현주의에 기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있는 것을 가다듬을 뿐인 재현주의는 미술이 자기 발목을 잡는 것에 불과하다.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규모와 무관하게 야성적으로 펼쳐지는 그의 작품은 재현 이전의 단계 또는 그 이후의 단계이다. 존재가 권력이라면, 재현의 과정 또한 복잡할 것이다. 서용선의 작품에서 힘 있게 꿈틀거리는 선-색은 구조화되고 있거나 해체되고 있다. 대학원 졸업 후 본격적인 작업 활동을 하기 시작한 1986년부터 현재까지 엄청난 분량의 드로잉들에서 선별한 이 전시는 생활인과 사회인을 겸하면서 국내외에서 틈틈이 그려온 것들이다. 대부분 그때그때의 상황 속에서 재빠르게 제작된 것들로, 3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다. 



 전시장 1층, 자화상



전시장 2층, 도시



전시장 2층, 아카이브



선과 색이 결합된 드로잉


작가가 미술대학을 다니던 시기인 1970-80년대, 제도권을 중심으로 한 주류였던 단색화와 추상은 그것이 지배적인 만큼이나 저항감을 낳았다. 사대부의 화풍과 근대의 '예술을 위한 예술'이 미묘하게 결합된 듯한 고상하고 관념적인 화풍 속에 특히 억압된 것은 색이었다. 자기만의 색을 구가해야할 예술계가 이상한 집단주의 내지 기회주의적 속성을 내보였던 것이다. 작가의 회고에 의하면, 우리의 장구한 역사적 전통 속에서 극히 일시적인 시기의 특징에 지나지 않는 백의민족과 백자, 그리고 수묵화 등을 운운하면서 색은 천시되거나 금기시 되었다. 반면 서용선의 작품에는 생경하리만치 강렬한 색선이 지배적이다. 드로잉이라서 색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화가의 고유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색은 각 작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선으로 나타난 절도 있는 행위에 실린 색은 야수파 풍의 장식을 넘어서 표현을 향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순수한 색이 아니라, ‘형태의 존재감이나 입체감’과 관련된 색이다. 


작가의 비유에 의하면, ‘마티스와 피카소가 있다고 한다면, 피카소 쪽’의 선택이다. 색선이 두터워지면 색 면이 되고, 그러한 단순하고도 근원적인 조형 언어는 자기 충족적인 자율성만을 구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든 도시든 역사든 실재를 구축한다. 그의 드로잉 어법은 뼈가 있고 살이 붙거나, 구조가 있고 외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분되는 양자가 하나가 된다. 마찬가지로 내용이 있고 추후에 형식이 따르거나 그 반대가 아니라, 모든 것이 동시에 결정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어떤 내용을 담았든 간에 지각에 직접 호소한다. 스펙터클의 시대에, 미술의 시각성이 경쟁력을 상실해 가는 반면, 그의 작품은 드로잉이든 회화든 입체든 눈에 생생하게 꽂힌다. 발화 시간보다는 예열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을 그의 드로잉들은 그려진지 꽤 오래된 것에서도 이제 막 붓을 거둔 듯한 생동감이 남아 있다. 30년 세월을 기간으로 하는 이 전시에서 어떤 한 작품의 시간성을 가늠할 수 있는 증후는 때때로 미술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변색된 바탕 면에서나 발견될 뿐이다. 



42 st, 지하철역(뉴욕), New York City Subway #42st



거리에서(베를린), In the Street (Berlin)



형식적 요소를 중시했지만 형식주의에 빠지지 않았던 서용선의 작품에서 선-색-면은 그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나 의미를 향해 움직인다. 그것은 선이라는 조형요소가 그리기보다 앞서 쓰기를 통해 친숙해 지는 것과 같다. 쓰기와 그리기가 하나가 된 드로잉은 읽기와 보기를 추동한다. 그의 작품은 출발점이 된 참조대상은 있지만, 외양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이자 운동, 즉 재현이 아닌 변형이기에, 작가가 입력한 바대로 출력이 돼야 할 소통의 투명성은 담보되지 않는다. 어떤 확정된 의미로의 환원이 아닌 확장은 무의미, 또는 해독 불능을 야기할 수 있지만, 이러한 위험성은 예술의 속성 자체에 내재해 있다. 그것은 예술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가능성이기도 하다. 어떤 내용이나 기능도 거부하는 순수예술은 가능성보다도 한계에 봉착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재이다. 그 실재가 인간, 도시, 역사 같은 거대한, 그래서 공허할 수 있는 범주화로 귀결된다 할지라도 포기될 수는 없다. 


서용선은 이 실재를 그림의 실재와 겹쳐 놓는다. 그가 구사하는 조형언어는 단순하고 원초적이지만, 그것이 견고한 존재나 의미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의미는 오히려 변화 중인 선-색-면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이미 어딘가에 있는 현실을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와 반복 속에 계속 증식하면서 작품에 의해서만 비로소 열려지는 어떤 세계를 향한다. 이러한 자유로움이 최종적으로 머무르는 지점은 확실치 않다. 작가는 인간, 도시, 역사 같은 서사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직관을 살려낸다. 그럼으로써 자칫 완성작에 의해 약화될 수 있는 생명감을 보존한다. 어떤 참조대상으로부터 출발한 의미와 주제가 있는 작품에서 관념이나 개념에 내재된 공허한 반복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직관과 생명력이다. 우연적인 듯하나 필연적인, 반복될 수 없는 단호한 일획의 힘은 형태와 의미에 이르게 하는 새로운 지름길이다. 

 

매순간 변화하는 자아의 기록


서용선은 20여년 전에 자화상만을 가지고 전시를 했을 정도로 많은 자화상을 그려왔다. 이 전시에서 30여년의 세월의 흐름이 오롯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자화상이다. 시간성을 축으로 한 대상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전시 작품들은 1980년대 청년기부터 미대교수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매진해온 장년기까지 동시대의 시간을 통과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세상과 대면, 또는 대결하고 있는 치열함이 느껴지는 그의 자화상에는 자기 반영, 반성 따위의 차분한 관념으로 설명하기에는 모자란 들끓는 야성이 감지된다. 1980년대의 초창기 작업부터 일관된 특징은 세상에 대한 불편함, 더 나아가서는 불화, 그리고 결코 한가한 유희가 될 수 없는 그리기에 실린 자기 모습이다. 동일한 존재이지만 매순간 변화하는 모습을 지진계처럼 기록되어 있는 그의 자화상에는 다른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묵뚝뚝함부터 괴물같이 변형된 모습까지 다양한 양상이다. 그림이 아니라면 고정시킬 수 없는 순간순간의 차이들은 자화상이라는 장르를 퍼도퍼도 고갈되지 않는 영원한 소재이자 주제가 되게 했다. 



자화상, Self-Portrait, 1995


드로잉이 일종의 쓰기라면, 그의 자화상은 일종의 자술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에게 자화상들은 방학이나 여행 등, 홀로 있는 시간에 구하기 쉬운 재료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마치 일기와도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시도 떨어 뜨려 놓지 않았을 필기구를 옆에 둔 작가는 이 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작가와의 비슷함이 감지되긴 하지만, 그때그때에 맞는 가면을 쓴 듯한 모습은 내밀한 자기고백이자 시시콜콜한 일상의 기록이어야 할 통상적인 일기와는 거리가 있다. 작품 속에서 굳게 다문 입과 부릅 뜬 눈의 작가는 말하기 보다는 바라본다. 외형적으로 볼 때 그것은 굵은 선과 생경한 색/면의 조합으로부터 야기된 야수파, 표현파, 입체파 등 근대적 형식과도 비교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기기록에 대한 태도의 문제와 관련된다. 모리스 블랑쇼는 [문학의 공간]에서 본질적으로 일기는 고백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도 아니다. 블랑쇼에 의하면 일기는 기념비이다. 


즉 일기는 작가 자신이 위험한 변신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예감할 때 스스로 자기 확인을 하기 위해서 작성하는 일련의 지표 같은 것이다. 이러한 ‘기념비로서의 일기’는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반영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예술의 본질을 암시한다. 예술은 이미 있는 것의 확인이나 반복이 아니라, 변형의 순간을 담는 미묘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이 첨단 미디어 시대에 여전히 손으로 그리는 방식이 남아 있어야할 이유이다. 수 십 년을 가로지르며 펼쳐 놓은 서용선의 자화상에도 변화하는 정체성이 감지된다. 나로부터 시작했지만 다른 것(타자)이 되어 있고, 다른 것으로부터 시작됐지만 나로 변해 있는 차이의 감각이다. 그것은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시시한 자기노출증이 아니다. 미디어 시대에 더욱 일반화된, 자기 노출증에 머무는 소소한 ‘자기표현’이라는 것이 얼마나 동어반복적인가. 그것들은 대부분 대중매체들이 충동질하는 소비행위에 불과하다. 매체들이 매체들을 상호적으로 반영하는 현대는 개체들을 난반사하는 거울의 방에 가두어 놓곤 한다. 더욱이 타자와 다른 유일하고 독특한 존재여야 할 작가에게 나르시시즘의 유혹은 가까이 있다. 



오사카 자화상, Self-Portrait in Osaka



자화상, Self-Portrait, 2007


비스듬하게 거울을 마주본 채 제작되었을 서용선의 자화상에서 작가의 붓은 자신을 이상적으로 조탁하는 것이 아니라 자학하는 도구가 돼있다. 스스로를 산산이 조각내고 제대로 붙여놓지 않은 채 방치된 자화상도 많이 발견된다. 그때마다의 착종된 생각을 생중계하듯이 보여주는 머리는 이리 불뚝 저리 불뚝 제각각이다. 벗은 몸은 비틀거리며 때로 머리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기도 한다. 작가는 1995년 미국의 한적한 시골에서의 레지던시 때 본격적인 큰 작품으로 자화상을 처음 그렸다고 회고한다. 12주 동안 외국인들에 둘러싸여 수도원같은 작업실에 던져졌을 때, 마침 이전 사용자가 두고 간 거울이 눈에 띄었다. 전지 사이즈의 종이에 크게 자신을 그려본 것도 그 때가 처음이다. 심리학에서 거울은 조각난 몸을 상상적으로 봉합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서용선의 작품에서 그러한 상상의 봉합선은 터져 있다. 그의 자화상은 사랑스러운 나르시스가 아니라 공격적인 만평가와 동행하곤 한다. 사빈 멜쉬오르 보네는 [거울의 역사]에서 반사상과 주체를 다루면서, 거울이 분열의 위험을 야기하기에 경계를 풀지 않는 의식만이 단일성을 보장한다고 보는데, 매번 낯설게 다가오는 서용선의 자화상에서 이러한 경계감이 감지된다.  

  

도시와 근대적 주체, 역사와 신화


서용선은 20여 년 전 풍광 좋은 양평에 자리를 잡았지만, 틈틈이 국내외의 많은 도시를 여행했고, 가는 곳마다 스케치를 남겼다. 대표작가전을 코앞에 두고서도 스케치 북을 든 채 미국으로 떠나버려, 관객은 가장 최근의 작업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드로잉은 스치며 지나가는 인상을 순발력 있게 기록하기에 적당한 양식이다. 현대적 삶이 그러하듯이, 작가에게도 도시는 살고 머물고 대화하기 보다는, 통과하고 관찰하는 곳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 여행자가 될 때 인간은 새삼 혼자임을 느끼며, 타자들과는 다른(또는 달라야할) 자신의 정체성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세계화의 여파로 세계의 어떤 도시나 구조는 비슷해져 간다. 생산과 소비 시스템이 같기 때문이다. 독특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관광 또한 마찬가지다. 찰스 테일러는 [근대의 사회적 상상]에서 근대 관료제 국가의 확산, 시장경제, 과학, 그리고 기술 등과 같은 어떤 제도적 변화에 의해 근대성을 규정한다면, 근대성이란 궁극적으로 우리 세계에 수렴과 획일성을 가져오면서 어느 곳에서든 동일한 형태로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단일한 과정이라고 본다. 



도시에서, In the City



삼선동 동도극장 뒷골목, Backstreet of Samsun-dong, Dongdo Theater



물론 저자는 획일적 근대성에 대항하여 다원적 근대성을 지향하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거의 동시적으로 소통되는 시대에 그러한 다원성의 여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나마 그 도시를 특징짓는 것은 색이다. 가령 서용선은 독일의 탁한 무채색을, 프랑스의 밝은 청색, 보라, 청보라의 색을, 뉴욕의 어둑한 색들을 기억한다. 서울의 경우 1980년대부터 색이 밝아졌다고 회고 한다. 압축적 근대화를 통한 근대사의 크고 작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고도 성장기에 접어든 한국의 도시에서 컬러 텔레비전의 등장, 88올림픽 등으로 대표되는 색의 변화는 극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도시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던 그 색들은 물질주의의 현시이기도 하다. 돈암동에서 신림동에 이르는 서울을 관통하는 노선버스를 타고 다녔던 작가는 70년대와 80년대의 극적인 차이를 말한다. 당시 서울의 중심부였던 명동이나 종로조차도 70년대까지는 어두침침했다고 한다. 수년간 이어진 청소년기의 방황, 그리고 경제적 이유로 일주일의 5일을 학원 강사를 했던 젊은 시간들도 어두침침함을 더했을 것이다. 


80년대에 와서야 도시에서 원색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80년대 초부터 컬러 드로잉을 즐겨했다. 제도권 미술계에서 여전히 색이 금기시되고 있었지만, 서용선은 이러한 도시환경의 변화를 반영하고 색을 미술의 본질로 끌어들였다. 한국의 도시 근대화는 좋은 의미든 아니든 야수적인 활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색들은 살아있는 공기를 내포하지 못했다. 작품 속 도시는 극도로 압착된 공간이 특징적이다. 가령 지하철 같은 공간이 대표적이다. 이동하는 공간이 많이 포착되어 있는 드로잉에서 사람들은 주어진 비좁은 공간에서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20세기 초반 독일의 표현주의에서도 이러한 압착된 도시공간과 무관심에서 냉소주의, 불안함에서 공격성에 이르는 개인의 정서가 포착된다. 이러한 구조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근대를 관통하고 있는 보편적인 특징이다. 지역과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와져 도시에 몰려든 대중은 또 다른 보이지 않는 구조에 저당 잡힌다. 



집단의식-도시의 사람들, Collective Conciousness-People of the City



붓다, Buddha



사람들, People


서용선에게 공간은 그저 내용물이 담기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이고 중성적인 용기가 아니다.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의 생산]에서 공간은 사회와 더불어 변화한다고 본다. 따라서 공간의 역사가 존재한다. 공간의 개념은 정신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사회적인 것, 역사적인 것을 연결한다. [공간의 생산]의 핵심적인 주장은 생산양식이 사회적 관계를 조직하고 생산하는 동시에, 자신의 공간(자신의 시간)도 조직하고 생산한다는 점이다. 르페브르에 의하면 (사회적) 공간은 (사회적) 생산물이다. 하나의 생산양식에서 다른 생산양식으로 넘어가는 것은 생산의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순의 결과이다. 즉 하나의 방식에서 다른 방식으로 넘어가는 이행기에는 새로운 공간이 생산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용선의 작품에도 근대적 공간의 모순이 감지된다. 그의 작품 속 도시 공간과 인간은 자본과 인구를 집중시키는 근대 도시가 자연을 희생시키고 많은 눈먼 경쟁에 모두를 내몰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근 20년 넘게 서울과 양평을 오가면서 작가는 도시를 더욱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점은 세계의 어떤 도시 어떤 인간들을 관찰할 때도 관철되고 있다. 근대의 자율적 주체나 개인이란 어떤 시기에 계층에서 잠시 가능했던 개념인지도 모른다. 도시란 각 지역에 살던 이들을 한 공간에 모으지만 이 압착된 공간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식은 타자를 투명 인간화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된다. 그러한 침묵의 카르텔이 깨지는 유일한 때는 사건사고(대부분 불행한)가 발생하는 순간일 것이다. 서용선의 작품에서 그 자신을 포함한 도시 속 인간들은 자기만의 고독 속에서 잠겨있고, 분절화 된 인간들에게서는 경직성과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그가 청년기를 보낸 1970-80년대의 서울은 도시 집중화가 심한 시대였다. 이러한 추세는 불과 얼마 전부터 (서울의 집값이 너무 비싸서) 해소되기 시작했다. 근대를 관통하여 살아온 작가는 압착된 공간 속 고립되고 긴장된 인간 상, 그 안팎을 불태우는 듯한 강렬한 색을 남긴다. 서용선이 정착한 도시 근교의 풍경 또한 현대사회의 모순에서 면제되지는 않는다. 작가는 도시를 위해 갖가지 규제에 묶여 있는 동네의 실정을 말한다. 



반고, Pangu



희화 뇌신, Huihwa and Thunder God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과 물이 적절히 어우러진 그 동네의 풍경은 아름답다. 마르틴 바른케는 [정치적 풍경]에서, 우리는 자연을 볼 때 읽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심정으로 보는 경우가 많음을 말한다. 원래 우리에게 주어졌으나 이제는 상실된 것을 자연에서 찾는 다는 것이다. 공간을 사회적, 역사적으로 읽자면, 자연이 풍경으로 다가온 것도 근대의 일이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서야 그것은 풍경으로서 향유될 수 있었다. 또한 단종 시리즈 등, 서용선이 근 몇 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우리의 신화나 역사에 대한 관심 역시 근대적 특징이다. 모더니즘은 미술 이외의 것이라 생각되는 서사를 억압하지만, 모더니티는 주체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 주체 안에는 진보를 이끌거나 그 희생자였던 민족과 민중 또한 포함될 것이다. 이 풀뿌리 같은 익명의 존재들이 역사와 신화라는 주제로 나타난다. 서용선의 드로잉에는 근대적 발전주의의 환상에 빠져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곤과 우, 마고, 반고, 복희 여와, 서왕모 같은 동양의 신화적 존재들이 출몰한다. 

  

출전; 아르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