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하는 선, 서용선 드로잉’ 전에 대한 스케치
이선영(미술평론가)
‘확장하는 선, 서용선 드로잉’ 전은 작품 선정부터 자료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전시다. 전시물 중에는 두서없는 자료로만 존재할 법한 이미지들이 설치작품으로 구현되어 있기도 하다. 원자들의 배열방식에 따라 제각기 다른 것이 나오듯이, 구성의 묘미가 발휘된 전시회였다. 그러나 최초의 ‘재료들’은 그렇게 가지런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평 작업실 여러 곳에 산재한 작품/자료의 더미에서 건져낸 것들은 카오스와의 싸움이라할 만하다. 더구나 전시를 앞두고 작가마저 자리를 비운 상태니 말할 것도 없다. 전시 기획자가 느꼈을 막막함은 작가들이 작업을 앞두고 겪는 그 과정을 똑같이 밟았을 것이다. 불쑥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영감을 포획하는 드로잉은 애초부터 명확한 틀과 문맥을 갖추기 힘들기 때문에 결정해야할 사항이 많다. 결정할 사항은 많지만 시간은 많지 않다. 자유로움과 곤혹스러움은 한 몸의 두 얼굴이다. 예술은 이러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두얼굴 조차도 분열을 거듭할 것이다. 그래서 예술에는 그토록 광기와 직관이 많이 언급되는 지도 모른다.

1층, 신화

2층, 도시
전시된 작품들은 메모지에 그린 드로잉부터 일련의 환경을 이루는 확장된 드로잉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자료는 낡아서 한 장 한 장 떨어지는 드로잉 북부터 최근에 제작된 거대한 벽화 스케일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크다. 서용선의 드로잉은 자기에 대한 직시부터 강원도의 지역 주민과 함께 했던 공공예술 작업까지 여러 차원을 아우른다. 끝없이 움직이는 선은 자기 안팎을 탐구하며, 타자와 함께 하는 어떤 계획으로 자라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기적으로 자라기보다는 단절과 도약이 많다. 드로잉은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자유와 포용성을 인정받아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올해의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전이 드로잉 전시라는 것은 근대에 와서 본격적인 작품의 준비 단계를 넘어서 작품으로까지 인정된 드로잉의 위상 변화와 맞물린다. 드로잉은 ‘본격적인 작품’만큼이나, 또는 그보다 더 작가의 진면목을 드러낸다는 기대치가 있다.
자화상, 역사와 신화, 도시와 군상으로 범주화된 이 전시는 작가가 매우 다양한 관심사를 아우르고 왔음을 알려준다. 그러한 관심사들이 시작도 끝도 불확실한 드로잉의 방식을 취했을 때 그자체로 드러나는 태도가 발견된다. 이 전시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서용선은 자신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나는 인간들의 정신계를 형성해왔을 역사와 신화를 반복적으로 그렸다. 외적, 내적 현실은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의 장면으로 고정될 수는 없었다. 그는 매순간 변화하는 현실을 드로잉으로 포착하려 했다. 전시는 자화상이라는 항목의 상대적 안정성 때문에 다른 부문보다 더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러한 집중적 배열 속에서 자신을 형성하는 이질적 힘들은 더 많이 감지되었다. 그는 자신의 변치 않는 모습이 아니라,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 그린다. 그 다름이 자신을 불안하게 할지라도 말이다.
작가의 얼굴과 몸은 차이의 유희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일 뿐이다. 그의 자화상은 노숙자 같은 모습부터 이국적 괴물같은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서용선은 그리기를 통해 자신을 흔든다. 그의 자화상은 변화에 한껏 열려있다. 그렇지만 뭔가 편치 않은 모습은 일관된다. 이러한 불편함은 도시라는 생태계 속에 위치 지어진 군상들에서도 발견된다. 도시 속 군중들은 이동하고 움직이고 있지만, 외적인 부자유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각자 자기만의 세계에 잠겨있다. 자기만의 창을 갖지 못한 현대인이 그렇게 스마트 창만을 보듯이 말이다. 도시 대중들은 구획된 도시 공간 속에 갇혀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들을 자기 공간에 하나하나 배치한다면 자화상같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작가가 대중의 한명이듯이, 대중도 외적으로 정해진 자기 위치가 무색하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정체성을 가진다. 공적/사적 영역의 구별이 분명해진 근대사회는 인간을 자신의 직책에 따라 견고해 보이는 정체성과 정신적 아노미 상태로 분열시켰다.
젊은이의 얼굴이 담긴 1986년 작품부터 여러 자화상이 있지만, 2007년에 시리즈로 제작된 [자화상]이 특히 인상적이다. 거기에는 종이 한 장 한 장 마다 매 순간 변모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얼굴이 갈라지는 듯한 분열적 모습이 거친 선에 실려 나타났다 사라진다. 무의식이라는 진앙지를 가지는 지진은 그 위에 얹혀진 현실의 얇은 표피를 산산 조각내며, 울뚝불뚝한 힘의 흐름을 흔적으로 남긴다. 그의 드로잉은 에너지를 곧바로 형태화한다. 흐름이 구조이다. 여러 작품이 한 벽에 걸려있어 마치 애니매이션처럼 잠재적 운동감이 발견된다. 그의 작품에서 얼굴은 대지처럼 변화하고 세계의 도시는 얼굴을 가졌다. 발길이 닿았던 각 나라의 도시에서 작가는 지하철, 버스, 카페에 있는 인간 군상들을 관찰한다. 관광객이나 현대적 화가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사진을 찍기가 더 쉬웠겠지만, 기록영상을 보면 그는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눈이 보는 것만큼 빠르게 손으로 그리는 모습이 있다.

스케치북(뉴욕)

스케치북(오사카)
그는 손으로 본다. 그 결과는 정확한 재현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저기에 있는 것을 나의 것으로 취하기, 지식과 이해를 통한 소유가 아니다. 그에게 드로잉은 우연히 마주친 것들과 순간적으로 반응한 기록이다. 그것은 그때만이 가능한 생산으로, 다시 되풀이 될 수 없다. 되풀이될 수 없는 순간을 기억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작가란 존재는 바로 그 방식을 가지고 있는 자이다. 이를 통해 경험은 타자와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가시화될 수 있다. 시간만 나면 어디론가 떠났던 서용선은 순간의 특이한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이러한 우연한 만남, 또는 부딪힘의 기회를 많이 가지려 했던 듯하다. 세계 어디 보다도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의 도시 또한 기록된다. 400x385cm의 큰 작품 [집단의식-도시의 사람들](1989)은 2회 개인전이 열렸던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전시작품으로, 드로잉을 중심으로 같은 장소에서 그의 작품을 중간 정리해보는 이 전시의 의미를 더한다.
표면은 넓지만 매우 압착된 공간 속 붉은 색 군상들은 도시와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상황을 기념비적인 양식으로 구현한다. 그의 초창기 작업 속 도시대중들은 익명적이고 집단적이다. 한국의 정치적 변혁기였던 1980년대 동안 부상했던 관념인 민족이나 민중대신에, 서용선은 각자 존재하는 대중을 그렸다. 그들은 어떤 연대도 이루지 못하고 흩어져 있지만 관료적, 상업적,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정보적 연결망으로 서로 근접해 있는 주체들로, 민중이나 민족 같은 거대담론의 주체보다는 지금의 우리와 더욱 가깝다. 나무 위에 아크릴로 칠해진 작품 [도시에서](2016)는 225x885cm의 거대한 부조 같은 면모를 가진다. 아직 나무 냄새가 남아 있는 이 두툼한 작품은 도시의 바탕이 자연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작품 속 인간들은 촘촘한 그리드나 수직의 구조들 사이로 왕래한다. 빈 공간마저도 이런저런 선으로 처리하는 서용선의 작품은 모든 것을 코드화여 생산/소비의 유통에 귀속시키는 도시의 속성을 반영한다.
그 속에서 인간의 입지는 그리 자유롭지 않다. 1989년 작품과 비교했을 때, 압착된 공간과 그 속에서 서로를 투명 인간처럼 간주하는 도시 대중들은 여전하다. 도시 대중들은 도시 공간의 산물이다. 그의 작품에서 대중은 도시라는 소비 공간의 산물들로, 신문지나 포스터, 상품의 봉투나 포장지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는 인간이 소비한 것으로 인간을 나타낸다. 또는 도시에서 인간이 생산한 쓰레기로 인간을 표현한다. 세계화 시대에 생산/소비 품목은 비슷하다. 멜버른, 오사카, 와카야마, 뉴욕, 파리, 마드리드 등 그가 들렀던 자취가 남아있는 작품 들 속 도시들은 세계화가 공통의 문법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처음에는 차이가 두드러지지만, 거듭해 갈수록 인간사의 비슷한 점이 더 많이 보인다는 여행의 법칙이 그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도시별로 구획된 작품들에는 작가가 그 도시에서 느꼈을 색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색과 선이 일치되어 있는 그의 작품은 차가운 구조들 속의 익명적 인간들 속에 웅크리고 있는 욕망과 좌절된 욕망을 표현한다.

철암역 벽화 구상스케치, Plan for Cheoram Station Mural

광부들, Miners
그러한 욕망들이 수직 수평으로 이루어진 현대 도시를 조금씩 일그러뜨릴 것이다. 서용선의 작품은 자신과 도시 뿐 아니라, 신화와 역사같이 다소간 안정적으로 정리되어 있을 법한 분야 또한 과정적이다. 전시장에는 잊혀진 신화의 주인공을 위한 설명들이 제시되어 있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가령 중국 태초의 거인 반고를 표현한 작품 [반고](2002)의 해설--‘죽은 반고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의 숨결은 바람과 구름이, 목소리는 우레가 되고, 왼쪽 눈은 해가,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다...손과 발은 명산이 되고 피는 강물이 힘줄은 길이 살은 밭이 되었다...’--과 함께 하는 이미지는 신화가 구조로 정착된 단계가 아니라, 신화가 생성되는 상황을 표현한다. 녹색 선으로 듬성듬성 그어진 반고의 몸통은 비어있는 부분이 많은 만큼이나 역동적이다. 신화 또한 그의 작품 속 자화상이나 도시 군중들처럼 익명적이다.
신화의 저자는 없다. 그것은 집단 무의식을 통해 수많은 세월동안 서서히 완성된 것이며, 현대미술가가 추가한 또 다른 의미는 신화를 미지의 이야기로 열어둘 것이다. '저자의 죽음'을 말하는 현대적 미학에 따르면 예술작품 또한 예술가의 온전한 산물이라 할 수 없다. 동일자 자체가 타자로 이루어져 있기에, 작가는 자신을 탐구할수록 자신을 이루는 이질적 힘들을 더 감지하게 된다. 이 힘들은 고정된 자아나 주체에 대한 상을 산산 조각낼 것이다. 작가는 그 잔해로부터 탄생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그때그때 탄생한다. 탐구는 끝이 없는 것이고 명확한 결론은 유보되었다. 그렇지만 매순간의 치열성으로 그때그때 포획된 실재들이 있다. 전시는 그 단편들을 한데 모아서 보여준다. 그간의 정력적인 활동을 생각할 때, 현실에 대한 서용선의 태도와 방식은 야심차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끝없이 추적할 수밖에 없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을 기록하려했던 모네가 떠오른다.
서용선은 모네같은 인상주의 방식이 아니라, 표현주의 또는 야수주의, 입체주의 같은 근대미술의 어법 또는 먹의 필획같은 방식으로 자연(환경)을 추적했다. 방식이야 어떻든 간에 예술가에게 예술은 이 끝없는 과정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한국의 전형적인 구상/ 추상미술가와 차이가 있다. 그의 작품은 어떤 관념적 도식에 이끌리지 않는다. 그는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는 변화에 반응한다. 매순간 변화하는 현실을 담아내려는 드로잉은 도식적 사고와 거리가 있는 것이다. 서용선의 드로잉은 힘이 있지만, 기성관념에 의거한 확신에 찬 힘이 아니라 생성과 연관된 힘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역설적으로 말랑말랑하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와 매번 갱신되는 현실에 대한 관심이 작가로 하여금 드로잉이라는 형식에 매료되게 했을 것이다. 즉 그의 드로잉은 이모저모 알아볼 수 있는 정보와 이미지가 있지만, 개념이든 대상이든 선재하는 확실한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막막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현실화하는 과정이다.
그의 드로잉은 작품의 시작점이 아니라, 말미쯤에야 자신이 무엇을 그리려 했던지가 명확해지는 작업이다. 그것은 맹목이기 보다는, 자신이나 작품을, 더 나아가서 현실을 미지의 가능성에 열어놓는 것이다. 완성보다 기대가 앞서는 작업은 쉼 없이 진행되었을 것이고, 쌓인 것도 많다. 일단 손부터 움직일 뿐 어느 선에 멈춰서 정리하는 스타일과도 거리가 있다. 그래서 더욱 이러한 탐구적 전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전시되지 못한 더 많은 작품을 생각건대, 작가의 실체는 계속 기획되는 전시라는 결과를 통해서 점차 확실해질 뿐이다. 일찍이 공직에서 은퇴를 했던 서용선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현역’일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전시는 ‘드로잉’이라는 소박한 주제로 시작했지만 미술의 원초적 힘이 느낄 수 있으며, 원초적인만큼 확장력이 있다. 드로잉을 의미하는 선에 ‘확장하는’이라는 수식어는 작품의 씨앗이 뿌려지고 싹이 나고, 또 다른 접목들이 이어지며 증식되는 과정을 말한다. 어느 것은 근대미술사의 주요한 작품/자료로 완결되어 있고, 어느 것은 아직도 자라고 있는 중이다.
출전; 드로잉 세미나(아르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