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PCM 프로젝트를 보고
이선영(미술평론가)
2016년 9월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에서 열린 김동현의 ‘PCM 프로젝트’는 핀볼게임과 롤링머신을 중심에 배치하고 회화작품 및 영상설치작품을 함께 전시하였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보이는 메인 작품은 관객이 핀볼 머신을 작동시켜 쇠구슬로 블랙박스를 맞추면 악기가 연주되고, 연이어 초콜릿이 든 작은 볼이 나오는 구조이다. 관객은 자신이 촉발시킨 원인에 대한 결과를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 같은 지름의 원 두 개가 호를 맞물리면서 하트를 그리는 이미지와 고래뱃속 풍경을 중첩시켜 고래뱃속에 모든 우주가 들어있고, 그 중에서 사랑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 뜬 과학기사에서 인간의 신경계와 우주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논문을 본적이 있는데, 김동현의 작품은 이렇게 소우주와 대우주간의 유사관계를 과학의 원리—cardioid animation--를 활용하여 표현한다. 또 하나의 영상 설치작품은 소금 결정체부터 인간까지 그 모습이 모두 다른 것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환경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기에는 과학의 필터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작가의 태도가 발견된다. 그 밖에 속도를 정적 이미지로 변화시키는 보드로 만든 의자, 풍자적인 느낌을 주는 움직이는 파랑새 등, 관객의 눈길을 끌만한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작품이 다수 전시되었다. 작품들은 관객에게 쉽게 이해되고 더 나아가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접근이 쉽다고 해서 구조나 구현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잘 만들어진 예술작품 뿐 아니라, 잘 개발된 상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와 연구가 있었고, 과학 기술자와의 협업도 지속해 왔다. 끝을 알 수 없는 그 탐구적 과정 때문에 여러 문화예술 지원체계를 활용하기도 했다. 이 복잡한 예술-기계와 함께 전시한 회화 작품들은 원래 전공을 살린다. 기이한 형태들과 생경하게 튀는 색깔은 단순히 대중성에만 호소하지 않는다. 보통 테크놀로지 작품으로 전환한 작가는 그림을 잘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김동현은 검도와 보드같은 스포츠를 비롯하여 자신이 즐겨해 왔던 것들을 작품에 다 쏟아 넣음으로서 다양한 관객과 접속 지점을 늘린다.
이 프로젝트의 장점은 동시에 단점이기도 해서, 관객의 참여를 고무시키는 상호작용작인 작품은 장난감 같은 가벼움이 있기도 하다. 가령 이전시의 메인 작품인 PCM 머신에서 관객이 기계를 작동시키면 초콜릿이 나오는 등의 방식은 다소간 장난스럽다. 의자에서 관장님과 큐레이터의 인사말이 나오는 작품도 그렇고. 김동현의 작품은 우주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시계로 간주한 고전과학의 혁명이 내재해 있다. 시계처럼 꽉 짜여서 돌아가는 우주는 결정론에 함몰되지 않는다, 놀이적 성격이 강한 김동현의 작품은 우연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빈틈없이 돌아가는 듯한 체계 속에서 우연은 행운일수도 있고 불운일수도 있다. 예술은 세계의 불확정성을 최대한 활용하곤 한다. 더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의 음악을 상상했던 피타고라스까지 이른다. 최초의 자극 이후에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우주에 대한 근대적 사고나 수(數)의 조화로 우주를 이해한 고대적 사고가 김동현의 작품에는 내재해 있는데, 이 전시에서는 그 철학적 의미까지 충분히 전달되고 있지는 않다.
재미와 의미가 상호작용하는 지점이 더 연구 되어야 할 것 같다. 또한 전시장의 각종 기계들은 너무 복잡해서 작가가 의도하는 방향대로 활용되지 않거나 고장도 날 수 있어서 전시장에 작가가 상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난점도 있다. 전시장은 접근성이 좋고 넓었지만,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되지 못하고 각각 따로 노는 느낌이다. 그것은 다소간 밝은 조명 상태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많은 연구와 기술이 집적된 메인 작품의 규모를 더 키워야할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본격적인 작품이라기보다는 모델같은 분위기이다. 김동현의 PCM 머신은 그저 재미있는 기계가 아니라,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우주에 대한 비유이기 때문에, 보다 스케일이 요구되는 것이다. 2008년부터 2013년 사이에 제작되었다는 회화 작품들도 제각각의 캔버스가 아니라, 환경의 차원으로 확장되었다면(벽화처럼) 회화와 키네틱 작품이 함께 있어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질 것이다. 회화도 설치처럼, 또는 설치의 일부처럼 연출했다면, 관객이 이 전시에서 받는 총체적 느낌은 더 고양되지 않을까.
출전; 수원문화재단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