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의 매트릭스 안에 놓여진 인간들
권치규 전(2006.12.22--12.31, 파주 출판단지 내 갤러리 아이오)
이선영(미술평론가)
여러가지 방식으로 조합된 기하학적 구조물 안팎에 배치된 인간들은 인간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필자가 받아든 권치규의 명함에는 ‘한국 구상조각회’ 부회장이라는 직함이 찍혀있다--을 보여주면서, 관객을 일련의 상황극 속으로 몰입시킨다. 그러나 여기에서 인간이란 살아 숨쉬는 살덩어리를 무정형의 물질 덩어리로 번역하는 식의 통상적인 구상 조각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권치규의 작품에서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축약된 형태는 단독자로 존재하며 상황 속에 고독하게 서있다. 철저히 중성화되고 익명적인 인간의 모습은 각 작품들이 내포하고 있는 실존적인 상황조차 장기판의 말같은 것으로 치환시킨다. 장기판의 말은 그자체가 어떤 의미를 갖기보다는 상황의 매트릭스 안에서만 의미화 되듯이, 작품 속 인간 역시 일련의 맥락 안에서 존재의 의미가 산출된다.
이렇게 기호화된 상황은 존재보다는 관계를 중시한다. 기호화는 대상과 일대일 관계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대다의 관계, 즉 지시대상과의 유동적 대응을 통해, 구체적 상황을 보편적인 상황으로 번역하면서 인간적 사고의 지평을 확대한다. 그것의 가장 성공적인 예가 바로 자연과학이며, 오늘날 정보사회를 통해 편재화되었고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물론 인간은 과학과 기술 이전의 사회에서도 신화, 종교, 예술을 통해 자연 현상을 인간화하고 체계화해 왔다. 그것들 역시 과학의 언어처럼 자연 현상의 배후에 있는 초월적인 세계를 추상화하여 파악하려는 것이다. 가와노 히로시는 정보론적 미학을 개진한 책에서 이 세계가 직접적인 경험의 세계가 아니라, 간접화된 추상의 세계라고 주장한다.
정보미학자들은 근대과학은 통사구조와 의미론에 의해 체계화 된 이미지의 세계를 정확하고 일관된 논리의 체계로 대체함으로서, 놀랄만한 규모의 가능성의 세계를 개척했다고 평가한다. 과학은 일상언어가 아닌 인공언어로, 이 언어가 추상하고 대표하는 힘에 의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알기 쉬운 구조를 갖춘 체계로 대체한다. 이러한 인간화 작업은 인간으로하여금 자연에 더 잘 적응해가도록 한다. 기호화된 인간을 도해화시킨 상황에 배치시키는 권치규의 작품은, 과학처럼 요소의 배열이라는 논리 구조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정보 미학적 관점에 의하면 예술작품 역시 일정한 컴퍼지션을 가지고 있으며, 구성 요소의 배치 유형, 즉 논리구조 위에 성립하는 기호인 것이다.
권치규는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주제가 ‘인간이라기 보다는 인간이 처해있는 인간의 조건과 상황’이라고 말한다. 기호화된 인간과 그 기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은 전통적인 의미의 3차원 양감을 벗어나, 추상적 공간 속에 암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인간은 공중 화장실이나 신호등 같은 사물에 새겨져 있는 류와 같은 기호화된 인간이다. 기호화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장치는 추상적이다. 가령 그것은 내부/외부, 열림/닫힘, 돌출/함입 같은 대립쌍, 그리고 질감이나 색상의 대비같은 조형적 언어로 표현된다.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어지고 자동차 도료같은 특수도장 처리는 기계적 익명성을 더욱 강조한다. 이 전시에서는 브론즈나 돌같은 전통적인 조각 재료도 사용되었으나, 그것이 사용되는 방식은 구성주의적이다.
많은 작품의 명제가 [-, life-상황]으로 되어 있고, 뒤에 붙은 일련 번호만 차이가 난다. 마치 확률론에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조합되듯이, 작가는 인간을 이런 저런 상황에 놓아본다. 작품 [-상황3]에서는 직사각형 테두리에서 돋아난 듯한 인간 쌍이 보여진다. 하나는 사각형 외부에, 다른 하나는 사각형 내부에서 돋아난다. 그것은 아웃사이더나 인사이더 같은 두 인간 유형이 떠오르게 한다. 작품 [-상황4]에서는 판에서 오려진 인간이 판 바깥에 서있고, 그것의 짝패가 되는 인간은 빈 사각형 안에서 서있다. 그것은 충만함 가운데 공허, 공허 가운데 충만함 같은 것을 표현하는 것일까. [-상황4]는 작품 [-상황1]에서 또다른 변주로 거듭난다. [-상황1]은 흰색 돌판에서 빠져나간 듯한 인간이 검은 돌판 위에 서있고, 검은 돌판에서 빠져나간 인간이 흰색 돌판 위에 서있는 작품이다. 판의 구성이 평행에서 직각으로 변화했고, 각각의 판에서 빠져 나온 형상들이 멤버 체인지하듯 다른 자리를 옮겨갔으며, 재료도 스테인레스에서 화강석으로 바뀌었다.
관객은 검은 돌판 위에 서있는 하얀 돌판에서 빠져 나온 인간과 그 반대 상황이 마주한 형태를 구체적인 상황에 대입하여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황2]은 색상이 다른 두개의 돌판이 평행으로 맞물리는 선이 지평선이 되고, 그 위에 서있는 인간과 나무의 그림자가 아래로 떨어진다. 하늘과 땅에 해당되는 공간의 색이 구별되듯, 밝게 음각된 나무와 인간은 어둠게 양각된 그림자와 대비된다. 자연의 대표자인 나무와 그 자연과 동렬에 선 인간은 얇은 돌판에 새겨진 작은 스케일임에도 불구하고, 기념비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 무정형의 덩어리에서 인간이 튀어나오는 형태와 정방형에서 바위 형상이 튀어나오는 형태가 짝으로 배열된 작품 [일탈 원, 투]는 자연과 인공의 상징적 대립 쌍을 이용한 것이다.
[life-찰나, 원 투 쓰리]에서 인간의 일생은 3단계로 축약되어 있으며, 같은 형태와 크기의 집 3채에서 실루엣으로 튀어나온다.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노년으로 갈수록 튀어나온 정도가 길어진다. [life-望]은 원근감 있는 정방형에 서있는 인간들을 표현했다. 인간들은 체계화된 조직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다. 작가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상황을 기호화 함으로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데, 이야기의 내용은 비극적이기도 하고 희망적이기도 하다. 가령 작품 [life-fling]에서 찌그러진 주사위 형태에 새겨진 인간은 보르헤스의 작품 [바빌론의 제비뽑기]처럼 삶을 우연의 게임으로 환원시킨다. 그러나 삶이 주사위 놀이같은 게임이라는 것은 불행도 행복도 아니다.
그것은 행복의 우연성이라는 비극을 낳지만, 불행의 필연성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해 준다는 점에서, 평등한 기회에 대한 실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치규의 작품에서는 던져진 주사위 자체가 찌그러지면서 게임 원칙 마져 폐기되는 더욱 불행한 사태로 귀결되는 듯하다. 그것은 어쩌면 작가라는 존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태는 아닌가. 만물의 기호화, 그리고 그 기호의 놀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권치규의 작품에서 우주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쇄가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작품 [life-look]은 한쪽 끝이 원통, 그리고 다른 한쪽이 열쇠 구멍인 형태인데, 그 열쇠구멍은 동시에 인간의 형태를 이룬다. 인간의 맞은 편이 뻥 뚫려있는 것은 바닥이 없는 듯한 상황 설정이다. 그것은 인간의 거대한 가능성이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함을 상징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