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반란이 일어나는 축제

 

이선영(미술평론가)


  

 인간의 몸에 침투하여 기생하고 싹을 틔우는 ‘기생식물’, 동물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변형식물’들이 우글거리는 정원은 상상력이 가득한 내면풍경이다. 이희명은 약하고 수동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식물을 능동적인 존재로 탈바꿈시킴으로서 강력해진 자신을 표현하였다. 근래의 대표작인 [fantastic revolution]은 이렇게 강력해진 하등생물의 변혁을 꿈꾼다. 이 하등생물이 기존의 체계화 된 먹이사슬을 뒤집고 상위소비자를 공격하는 지상최대의 먹이 연쇄 소비자로 등장한다. 그 자신이 남아선호 사상의 희생자로서, 약한 것이 강력해지고 상위등급을 공격하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여성성은 나뉘어진 반쪽 중의 하나가 아니라, 전능함으로 변모한 괴물의 양상을 띄고 있다. 


이희명의 작품에 나타나는 괴물성은 부정적이고 어둡기 보다는 긍정적이고 밝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썩어가는 것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그곳으로부터 생명의 에너지를 모아 창공의 태양을 향하는 식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생, 공생, 합체 등을 통해 변형된 생물체들은 친숙함/낯섬, 정상/이상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서 발생하는 기괴함이나 그로테스크를 넘어서, 과도하고 폭력적인 위반을 향한다. 이 무법천지 속에서 형태와 색채는 적절한 조화보다는, 도를 넘는 생경함을 가진다. 어디선가 떨어져나온 신체들이 변이를 거치면서 종횡으로 뻗어 나간다. 담장에 둘러싸인 정원이나 화분같은 오브제로 경계를 명확히 확정지어 놓고 그 내부에서 광란의 해방구를 연출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작품은 축제에 근접한다. 


노동과 절약이 지배하는 활기없는 일상이 단절되는 축제는, 금기가 위반되는 가운데 발생하는 흥분과 열기로 가득차는 과도적인 시공간이다. 자연물이 변형된 형태는 동요에 의해 창조적이고 풍요로와지는 축제의 본질에 다가서면서, ‘강렬한 생명의 절정’(로제 카이유와)을 나타낸다. 동물류는 우주의 공격을 받아 지속적으로 분해되고 변형된다. 장 뒤비뇨는 [축제와 문명]에서 모든 사회는 자신의 존재 속에서 죽음을 사회화하고 자연의 지속적인 공격에 대항한다고 지적한다. 축제가 지속되는 동안 사회는 자연적인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필요로 했던 표상이나 기호, 규칙을 파괴한다. 혼미스러운 존재 간의 짝짓기가 이루어지면서 자연은 갑작스럽게 그 본질이 폭로된다. 이희명의 작품에 나타나는 괴물적인 개체들은 질서, 형식, 금지가 생기기 이전의 시간으로 회귀한다. 


로제 카이유와는 이러한 방종의 시간이, 왕의 시체가 부패하는 시간, 죽음이 표현하는 악취와 오염에 민감한 시간이며, 또 죽음의 유독성이 최고도에 올라 강하게 뿜어나와 활발히 작용하며 전염성을 띠게 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일상을 지배하는 금기가 과격하게 위반됨으로서, 세계의 시초에 있었을 법한 창조적인 에너지가 풀려나온다. 이 원초적인 시기는 인간과 세계의 유년시절처럼 지상낙원에 대한 개념과 일치한다. 최초의 시대는 기형적이고도 과도한 산출의 시대처럼 나타난다. 하등동물의 반란이라는 이희명의 모티브는 공동의 습관을 혼돈과 유동성으로 변모시킨다. 금기를 깨고 카니발적인 접촉과 조합 속에서 폐쇄되고  분리된 것들을 통합되면서 적극적인 상호소통이 이루어진다. 


축제의 한 가운데에서 꽃피운 환상성은 바흐친이 언급한대로, 정적이고 개별적인 단위들에 대한 거부, 양립할 수 없는 요소들의 병치, 그리고 고정성에 대한 저항 등 공격적 경향을 가진다. 그것은 폐쇄적이며 일원적이며 전지적인 시각에 반대하며, 사회적으로 타당성을 지니는 것들이 의문에 붙인다. 환상성은 일관성을 자처하는 듯한 현실성을 전복하는 것이지만, 이희명의 작품에서 환상성은 현실성과 밀접하게 관련을 가진다.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성]에서 환상은 실재적인 것에 기생하거나 공생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환상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것, 실재세계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다. 기생식물들은 일상의 견고함에 침입하여 상처를 낸다. 환상성은 닫힌 체계 내부에 있으면서, 통일체라고 간주되어왔던 공간에 침입하여 그 공간을 개방한다. 


환상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함을 제시하면서, 문화의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틀의 한계를 추적한다. 이희명의 작품에서 환상적인 것the fantastic을 추동하는 것은 변형transformation이다. 그것은 왜곡과 위축이 아니라, 재편성되고 탈위치화된 세계의 창조이며, 보다 넓은 지평을 위해 열린 지각과 관련된다. 환상적인 것은 초자연적인 영역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요소들을 전도시키는 것, 다른 것을 산출하기 위해 그 구성요소들을 새롭게 결합시키는 것이다. 규범이 없는 공포, 또는 희열의 공간 속에서 다형적인 무질서, 미분화, 불가능성, 충돌과 결합이 난무하는 또 다른 세계에서 주체와 대상 사이의 한계가 제거된채 서로에게 미끄러져 들어간다. 


변신의 무대인 축제는 유용성이 아니라, 덧없는 순간들을 위해 바쳐진다는 점에서 예술과 닮아있다. 그러나 이희명의 작품은 축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만큼, 현대사회에서 축제가 여가나 놀이로 변질된 것과 같은 운명을 따른다. 규칙 위반은 사회에 수용되어 장식화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겉으로의 질서 이면에 전쟁과 폭력이 내재한 현대사회의 야만주의에 조응한다. 축제와 같이 창조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세계는 상상의 세계 뿐 아니라 현실로 흘러 넘쳐야 한다. 환상이 단순한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진정한 도전이 되어야 한다면, 이희명의 작품에 있는 잠재적인, 혹은 명시적인 리얼리티의 요소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출전;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