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히라시마군을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무더운 여름, 동경에서 1시간 여 떨어진 미토라는 한 시골마을에서 였다. 내가 그를 만나기까지는 내 사랑 지니 프로젝트를 맡았던 동경 오페라 시티 미술관의 큐레이터 시호코씨의 친절한 도움이 있었다. 이미 한달 전 미토 미술관의 협조를 받아 그 지역 고등학교에 자신들의 꿈을 묻는 설문지가 돌려졌고, 수많은 미토 지역 고등학교 학생들의 열렬한 편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 눈에 유난히 띄는 한 편지가 있었는데, 어린 고등학생의 글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 심각하고 어른스러운 내용이었다. 현 일본 고등학교 교육 체계의 문제점, 사춘기 소년으로서의 자신이 처한 구속감 등이 그것이다. 그는 자기가 처한 고3으로서의 갑갑한 상황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어떠한 계기를 통해 한번 벗어나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대단히 놓은 산을 극도의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고 올라 산 정상에 서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면 자신의 고민이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40도를 오르내리는 8월 일본 남 알프스 산맥을 향하게 됐다. 남 알프스는 북 알프스와 함께 일본의 지붕역할을 하는 산자락으로 3천미터급 봉들이 30여 개나 산재해 있는 고산지대이다. 이 특이한 이름을 갖게된 배경에는 그 지역 경치가 유럽의 지붕 알프스 산맥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히라시마군과 나는 각각 40킬로 씩 되는 배낭을 나누어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배낭 안에는 카메라 장비와 삼각대, 조명 세트와 자동차용 배터리 등 고통을 느끼기엔 충분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었고 예상대로 우리의 어깨를 짖눌러왔다. 새벽 5시에 동경을 출발한 우리는 12시간 고분분투 끝에 밤 9시가 되어서야 기타다케(3195미터) 정상에 서게 되었다. 가랑 비 내리는 텐트 안에서 새우잠도 잠시, 아침해를 놓치지 않으려 새벽 3시부터 분주히 짐을 챙겼다. 드디어 새벽 4시, 우린 떠오르는 아침 장관을 바라보며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동에 그만 잠기고 말았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사진 몇 컷. 어차피 미술 작품을 하러 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운무에 장관을 이루는 형형색색 자연의 방대함과 등산 도중 히라시마군과의 값진 인생 이야기는 내 초라한 사진 한 장으로 담아내기에 애당초 가망이 없었었다. 내가 하고있는 미술이라는 행위가 또다시 사소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우리 두 사람은 1시간 여 자연이 들려주는 감동의 공연을 감상하고 각자 말없이 산을 내려왔다. 아마도 서로의 머릿속에는 각기 다른 생각들을 가득 채우고서 말 이다.
- 정연두(35세)씨는 최근 국내외에서 통해 주목받는 작가로 미래의 꿈을 사진을 통해 실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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