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현대 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은 세계적인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에게 창조적인 영감의 원천이었다. 이 도시에서 김환기를 비롯한 한인 작가들도 시련과 도전, 성취의 발자취를 남겼다.
김환기는 1963년 10월 상파울루비엔날레 참가 후, 오십이라는 나이에 뉴욕으로 인생길을 급전환했고, 1974년 7월 영면하기까지 11년 가까이 뉴욕에서 생활했다. 그 시기의 뉴욕은 자유로운 분위기와 함께 인종차별, 페미니즘, 반베트남 전쟁 등의 사회적 이슈가 뒤섞여 있었고, 팝아트, 미니멀아트, 개념미술, 행위미술 등 미국 현대미술이 급물살을 타던 시기였다. 이러한 활기 넘치는 변화하는 흐름으로부터 김환기는 미술에 대한 고정된 관념으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끼며 자신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는 뉴욕의 무수한 사람 중 하나로, 하나의 ‘점’으로 존재감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었다.

개관 45년 만에 32번가 코리아타운 근처로 이전하여 독립건물을 올린 뉴욕한국문화원 갤러리코리아에서 열린 바로 이러한 뉴요커 김환기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망한 전시《Whanki in New York》(2024.5.2- 6.13)은 작가의 삶과 창작의 과정을 진지하게 따라가게 한다. 김환기의 일기, 스튜디오 노트에 남긴 색연필 드로잉, 작은 소품, 그리고 뉴욕타임스 위에 그린 유채 연작 등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며, 그의 일상과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전시장에 들어오는 부드러운 자연광, 천장과 벽 일부의 곡선, 그리고 하얀 갤러리 벽에 액센트처럼 자리한 ‘환기 블루’가 만들어내는 조합은 잔잔한 울림을 주는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특히, 전시장 중심에 설치된 환기의 마지막 일상을 담은 일기(1972년부터 74년 7월까지) 영상 작품은 관객에게 세월을 넘어 김환기와 만나는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Whanki in New York》 2024.5.2-6.13 @뉴욕한국문화원 2F 갤러리코리아
©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김환기의 뉴욕 시대’는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면서 도전과 예술적 탐구를 추구한 특별한 시기였다. 1964년 10월, 김환기는 아시아소사이어티 후원으로 셔먼스퀘어스튜디오(Sherman square studio, 73번가 서측 160)에 입주하며 ‘창작의 산실’을 가지게 되었다. 뉴욕 허드슨강과 센트럴파크 사이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 자연과 도시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비록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이민자의 삶이었지만, 그는 작업에 매진하면서 내적으로 용기를 얻고 변화를 다져갔다. 전시장에 놓인 첫 작품, <무제 (1963.12.31)>는 한국에서 그렸던 산, 하늘, 달의 이미지가 단순화되어 있지만, 1965년 이후 작품은 점차 단순화된 선과 형상으로 전환되었다. 1965년 1월 일기에는 ‘촉필’의 순수성을 알아차리고‘선 과 점’을 탐구하겠다는 다짐으로 뉴욕 타임스에 유화로 그린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막막한 고생 가운데 오직 ‘자신’을 믿고 성숙시킨 작품이 김환기 화풍의 정점인‘점화’이다. 1970년 김환기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완성되기까지 산고의 여정이 ‘일기와 소품 드로잉’을 통해 생생히 드러나 있다. 전시장 마지막 두 점은 점화의 대표작 소품이 한지에 유채로 되어 있듯이, 이번 전시 작품은 모두 종이를 매체로 하고 있다. 하지만 소박한 재료가 주는 진정성이 더 깊은 감동을 주기도 했다. 특히 서울 환기미술관에서 대여한 작품이 주요 전시 작품이지만 뉴욕에서 김환기 부부와 인연이 있던 개인 소장품이 처음으로 공개되어 특별함을 더했다. 또한, 전시장 1층에는 김환기의 작품을 후배 미디어아티스트들이 LG 올레드모니터에 재해석한 디지털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Whanki in New York》은 세계적인 것이 되기 위해 민족적인 순수를 모색했고 민족적인 것을 얻기 위해, 결국 자신에 전념했던 김환기의 단아한 삶과 예술적 탐구가 깊은 영감을 준 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