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모색: 울 도시, 울 미술/ 도시의 산책자, 울산의 재발견
고충환 | 미술평론가
미술관의 기능은 크게 전시와 소장작품 관리 그리고 교육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여기에 지역 미술, 현대미술, 특성화 미술을 적용하고 수행한 것이다. 여기서 지역 미술은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한 미술을 말하며, 특성화 미술은 특정 주제에 대한 선택과 집중으로 특화된 미술(예컨대 여성주의 미술, 생태예술, 그리고 미디어아트와 같은)로서 다른 미술관과의 변별성을 기하게 해주는 계기이며 제도적 장치로 이해하면 되겠다.
<울산 모색: 울 도시, 울 미술>이란 타이틀을 내세운 이번 전시는 제목 자체가 말해주듯 이 가운데 지역 미술을 지향한다. 산업도시 울산의 도시 생태와 미술 환경을 겨냥한 것이다. 지역 리서치(흔히 단기로 머무르는 지역 입주 프로그램에서 작가들에게 과제로 주어진)가 그 축이 될 것인데, 그 성격상 해결방안을 찾아본다는 의미의 울산 모색이라는 말보다는 영문자로 표기한 Rediscovering Ulsan이 울산을 재발견한다는(그리고 여기에 재인식한다, 재고한다, 다시 생각해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뜻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한글보다는 영문이 오히려 전시 주최 측의 의도에 더 가깝고 더 부합한다는 생각이다. 모든 지역은 지역적 특수성을 함축하고 있고, 그 특수성은 알게 모르게 그러므로 잠재적인 형태로 예술에 반영되기 마련이다(예술은 시대를 반영하고, 사회를 반영한다). 그러므로 결국 그 잠재력을 재발견하는 것일 수 있고, 예술에 반영된 잠재적인 형태를 캐내고 발굴하는 것일 수 있다.
그 잠재력, 그 반영태는 자연스럽게 산업도시 울산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될 것인데, 전시 주최 측은 각 시간을 새기다, 산업 시대와 마주하다, 그리고 자연과 공존을 꿈꾸다 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안한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는 것이지만, 도시 울산은 선사시대의 유적에 해당하는 반구대 암각화(울주 대곡리 소재)로 유명하다. 도시 울산의 뿌리이며 역사에 해당한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도시 울산은 현대중공업과 석유화학공업단지로도 유명하다. 산업도시 울산의 도시 이미지를 만들고 구축하는 가장 강력한 기호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울산을 관통하는 태화강은 죽음의 강으로 불리다가 이후 각고의 노력으로 생명의 강으로 재탄생했다.
전시 주최 측은 이처럼 반구대암각화에서 현대중공업으로 그리고 재차 태화강으로 이어지는 역사 그러므로 시간을, 산업을, 그리고 자연을 키워드로 도시 울산의 지역적 특수성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며, 그 정의를 빌려 도시 울산의 연대기적인 서술을 시도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 면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시간 그러므로 역사, 울주 천전리 명문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970년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가 먼저 발견된 이후, 1971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연이어 발견되었다. 한 해에 서너 달씩은 사연댐의 불어난 물속에 잠겨 있던 것이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와 고래를 사냥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천전리 암각화에는 기호화되고 양식화된 문양들이, 이를테면 사람 얼굴 형태와 동심원과 격자 형태의 문양이 절벽의 바위 위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어떤 이는 그 문양을 사진으로 찍었고(강운구, 안세권), 또 다른 사람들은 그림으로 그렸다(김창락, 김홍명, 양희성).
그렇다면 5000년 전 선사인들은 왜 절벽에 이런 그림을 아로새겼을까. 그 그림은 무엇을 의미하고, 또한 후세인에게 무슨 의미를 전달하는가. 김창락의 민족기록화(1967년부터 1979년까지 정부 주도로 진행된 기록화 사업)에서도 알 수 있듯 반구대 일대에서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 곧 풍요제 그러므로 신에게 바치는 제의를 그린 것일 것이다. 동물과 사람과 어로와 관련된 것들 그러므로 당시의 생활사를 그린 것일 터이다. 미술사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런 선사시대 그림들은 대개 절벽이나 동굴 속과 같은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에 마치 숨어있기라도 하듯 그려져 있다. 지금은 노출돼 있다 해도 그동안의 천재지변이나 지각 변동으로 원래 숨어있던 것이 나중에 드러난 것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그곳이 예사롭지 않은 공간, 신성한 공간, 신의 영역 그러므로 성소에 해당하는 것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인류 최초의 미술 그러므로 미술 기원론에도 소급되는 이 그림들은 당시의 생활사를 기록한 기록화로 그려진 것이고, 신에게 바치는 제사(희생제의)를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이 그림들을 그렸을 필경사와 제사장은 누구였을까. 고대 문자 이전의 그림문자를 주도한 사람들은 누구였고, 신과 인간을 중개했던 매개자는 누구였을까. 무당이다. 인류 최초의 예술가들이다. 기호 그러므로 언어와 문자를 매개로 한 의미를 주관하는 한편, 인간과 신, 하늘과 땅, 생과 사, 그리고 여기에 어쩌면 감각적인(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경계를 넘나드는 꼴이 그대로 예술가를 닮았다. 그러므로 어쩌면 무당이야말로 예술가의 전신이라고 해도 좋다.
실제로도 원주민에게 구조된, 꿀과 지방 덩어리와 펠트 천의 처방으로 구사일생한 요셉 보이스는 예술가를 무당이라고 했다. 신성한 물질을 매개로 이성을 구제하고 정신을 치유한다는 점에서 연금술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교육 그러므로 언어, 문자, 이야기(서사), 그리고 의미를 매개로 사람들의 의식을 조각한다는 점에서는 사회조각가라고도 불렀다. 그렇게 무당 그러므로 최초의 예술가는 이야기를 주관하는 사람이었다. 문자 이전에 역사는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전해지고, 그림문자의 형태로 전해지던 시절, 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예술은 이야기의 기술이기도 하다.
그렇게 울주 천전리 명문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역사 이전의 선사 시절에서부터 진즉에 도시 울산이 신과 내통한 신성한 공간을 품고 있던 곳이고, 그 공간을 운영했던 신성한 사람들이 터 잡고 살았던 곳임을 말해준다. 도시 울산의 신화적 상상력이 샘솟는 원천임을 말해준다.
산업, 현대중공업과 석유화학공업단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울산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다가 지금은 대표적인 산업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중공업과 조선소, 항만과 화학단지가 산업도시 울산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전형적인 아이콘으로 자리한 것이다.
사진과 영상을 매체로 하는 작가 박경근은 철광석을 녹여 쇠를 만드는 전 과정을 자동화한 제철 공정을 보여준다. 용광로에서 펄펄 끓는 쇳물로 대변되는, 압도할 만한 스케일로 스펙터클 한 비전과 함께 산업도시 울산의 생명력을, 울산의 꿈을 예시해준다. 조선소에서 한창 제작 중인 배를 각 머리와 허파 그리고 가슴과 같은 신체 부위에 비유해 기계 생명체(사물을 유기체로 보는)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 풀숲이 우거진 언덕이 있다. 언덕 저편으로는 휘황하게 불을 밝힌 화학단지가 보인다. 지나가면서 초현실적 풍경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사진을 매체로 하는 안세권은 그렇게 자연의 시점에서 본 울산 화학단지의 정경을 보여준다. 자연과 산업이 대비되고 자연과 공장지대가 대비되는 인공적인 풍경이 역설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적 환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런가 하면, 작가 이윤빈은 평소 공간에 관심이 많다. 공간에 대한 감각경험, 지각 경험, 나아가 공간에 대한 인식마저도 저마다 다 다르고, 그 다름이 서로 다른 작업으로 유도한다고 본다. 그런 만큼 공간의 사유화 그러므로 공간이 자신에게 주는 주관적인 느낌을 토대로 작업을 풀어나가는데, 작가의 그림에서 그 다른 느낌은 하얀 공백으로 남겨진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사물의 다른 부위와 대비되면서 하얀 여백으로 남겨진 부분이 얼핏 사물의 숨겨진 골격이며 구조를 보는 것도 같고, 표면에선 보이지 않는 건물의 설계도를 보는 것도 같다. 사물 감정 그러므로 사물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처럼 그 자체로는 비가시적인 대상에 형태를 부여하고 색깔을 부여해(비록 하얀 여백으로 나타난 것이지만) 가시화하는 작가만의 회화적 방법이라고 해도 좋다.
화학단지에는 마치 현대도시의 토템폴과도 같은 육중한 굴뚝들이 하늘을 찌르면서 서 있다. 굴뚝에는 연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작가 최원교는 울산을 대표하는 산업 이미지가 겹겹이 포개진 프린트 위에 어슷하게 커팅하는 방법으로 마치 춤을 추듯 연기가 날아오르는 형태를 조형했다. 실사로 찍은 연기와 인공적으로 만든 연기가 하나의 화면 속에서 어우러지거나 대비된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춤을 추는 연기가 산업도시 울산의 생명력(혹은 생산동력)을 예시해준다고도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산업도시 울산의 이미지가 겹겹이 포개진 프린트물, 그러므로 산업도시 울산의 몸을, 살을, 역사를 숨기면서 드러내는 방식에 주목해볼 일이다.
그리고 홍도연은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그림을 그린다. 그리면서 그리고, 지우면서 그린다.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흔적을 통해서 그림을 그린다. 사물 대상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물 대상을 재현하는 과정에 매개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그러므로 사물을 매개로 한 존재의 증명)을 그린다고 해야 할까. 흔적을 그리는 것인 만큼 그림의 궁극 그러므로 최종은 유보된다. 그렇게 연기되면서 특유의 아우라를 만든다. 말하자면 작가는 사물 대상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그러므로 어쩌면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유래한(남겨진) 흔적의 아우라를 그린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작가는 매일 바뀌는, 배도 바뀌고 이름도 바뀌는, 그러면서도 얼핏 어슷비슷해 보이는, 그러므로 어쩌면 하루하루가 같으면서 다른 일상을 표상한다고 해도 좋을, 그러므로 그 자체 일상의 흔적을 통해서 일상을 그린다고 해도 좋을, 그런, 자동차 선적장에 정박한 배를 그린다.
그렇다면 산업화 이전에 도시 울산은 어땠는가. 울산 특히 장생포는 고래잡이 그러므로 포경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고래는 울산역에서부터 알만한 광장이며 공원을 장식하고 있는 친숙한 조형물로 자리하고 있는 만큼 울산의 상징동물이라고 해도 좋다. 경기가 좋을 때는 지나가는 개도 지폐를 입에 물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이다. 한때 고래잡이가 성행하던 한적한 항구마을이었을 장생포가 지금은 육중한 구조물들로 이루어진 도시가 되었다.
디지털 콜라주를 매체로 하는 장우진의 사진이 공간 건물에 그려진 고래 그림이며, 공장과 건물 사이를 유영하는 고래 이미지를 매개로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서 옛 추억을 소환한다. 그런가 하면, 1960년대 산업화 시기에 대규모 석유화학공단이 형성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야음동과 장생포동 주민들이 이주 정착한, 울산의 대표적인 달동네 신화마을을 마치 안온하게 감싸기라도 하듯 붉은 노을을 보여준다. 노을은 대기가 오염되었을 때 더 선명하고 아름답다고 하는데, 산업도시 울산의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예시해준다고 해도 좋다.
과거가 그렇다면, 산업도시 울산의 미래는 또한 어떤가. 미니어처 형식의 모델하우스를 3D 디지털 미디어로 재현한 작업에서 작가 문창환은 산업도시 이후 미래도시를 상상하고 제안한다. LPG를 저장하는 볼 탱크와 기름을 저장하는 타워로 구성된, 에너지 전환으로 쓰임새를 다한 석유화학공장의 원형 그대로를 살려 흡사 새로운 형태의 아파트 단지와도 같은, 사람이 거주하는 주거환경으로 탈바꿈시켰다. 미래지향적인,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상상해본 것일 터이다. 그러면서 왠지 흑백화면으로 나타난 잿빛 도시가, 고도의 인공도시가 문명에 대한 경고와 함께 암울한, 비현실적인, 묵시록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공상과학영화를 보는 것도 같고, 사회생태학 혹은 도시생태학(자연과 인간, 자연과 사회 간 재설정된 관계를 요구해오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부분도 있다.
자연, 태화강과 신불산. 고대문명이 하나같이 강을 중심으로 발원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도시에도 강이 흐른다. 도시 울산에는 태화강이 흐른다. 도시 울산의 젖줄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한때 죽음의 강으로 불리기도 했던 태화강이 지금은 생명의 강으로 거듭났다. 그래서일까. 태화강 일대는 2019년 7월 순천만 국가 정원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 정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목판 화가 김억은 태화강이 발원하는 백운산 탑골샘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대곡천의 정경을 담았다. 도시 울산의 젖줄의 원천을 그린 것인데, 세로로 긴 화면에 굽이굽이 흐르는 강을 산세와 함께 표현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부감법으로 그린 그림이 장대한 느낌을 주고, 미학적 가치와 함께 기록의 의미를 수행한 고지도를 닮았다. 고지도의 현대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는 민중 목판화 이후 국토를 순례하면서 도시와 자연, 역사와 자연의 유기적인 관계와 함께 기록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 기행 목판화의 대표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김홍명은 태화강에 부는 바람을 그렸다. 태화강이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 바람을 따라 흐르는 강물이 시간성을, 역사성을,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여기에 어쩌면 무상함도(무상하게 흐르는 강물). 재현적이기보다는, 그리고 감각적이기보다는 상대적으로 관념이 강한 그림이다. 흐르는 강물을, 흘러들면서 흘러가 버리는 강물을, 그렇게 같으면서 다른 강물을 어떻게 재현하고 감각 할 수 있는가. 단면을 잘라낸 듯 수면을 클로즈업해 그린 그림이 태화강보다는 강 자체에, 강보다는 수면 자체에 주목하게 만든다. 그렇게 구상과 추상, 형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문다.
태화강이 도시 울산의 젖줄(그러므로 생명줄)이라고 한다면, 간절곶은 일출의 명소로 유명하다. 동북아시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 도시 울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했다. 김창한은 이런, 간절곶의 일출을 그렸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가 바다를 비추는, 그리고 여기에 파도가 격렬하게 부닥치면서 부서지는 장면이 표현주의를 떠올리게 만든다. 알다시피 표현주의는 주체와 대상, 주체와 세계 간 연동이 강한 편이다. 그런 만큼 간절곶의 일출을 그린 것이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벅찬, 격한, 작가 자신의 세계 감정을 그린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 세계 감정이 자연에 내재 된 생명력의 우연하고 무분별한 분출을 떠올리게 만든다.
정철교는 간절곶 일출과 함께, 자신이 정착해 사는 나사리의 정경을 그렸다. 온몸으로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는 해송이 인상적인, 자연의 거친 생명력을 떠올려주는 그림을 그렸다. 울주군 서생면 바닷가 마을의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이라고 했다. 원전을 품고 있는 마을이라고도 했다. 그래서일까. 원색이 대비되고, 여기에 붉고 가녀린 선으로 색면의 가장자리를 가두는 그림이 강렬한(그리고 여기에 어쩌면 불안한?) 느낌을 준다(모든 강렬한 것들은 불안하다?).
박시월은 주전 바다를 그렸다. 주전 바다를 그렸다기보다는, 주전 바다에 대한 기억을 그리고, 기억의 파편들을 그렸다. 투명한 유리판에 묽은 아크릴을 칠하고 연필로 그린 그림이 기억처럼 모호하고, 애매하고, 아득하다. 모호하고, 애매하고, 아득한 그림이 특유의 아우라를 만든다. 주전 바다는 몽돌 해변으로도 유명하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갈 때 몽돌들은 서로 부닥치면서 소리를 낸다. 그렇게 몽돌이 내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기억을 부르는 소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자연은 산하 그러므로 산과 강을 거느린다. 산이 있는 곳에 강이 있고, 강이 있는 곳에 산이 있다. 알다시피 도시 울산에는 젖줄에 해당하는 태화강이 흐른다. 그리고 산으로 치자면 신불산이 있다. 신령이 불도를 닦는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빼어난 산세로 영남알프스로도 유명한 산이라고 했다. 작가 강상복이 신불산의 이처럼 영험한, 빼어난 자태를 그렸다. 신성하고 밝은 기운이, 투명하고 맑고 섬세한 필치가, 묘사가 사진 같다. 보통의 수묵화나 수묵 담채화와는 그 질감이나 느낌이 사뭇 다르다고 해야 할까. 실경 혹은 진경산수의 또 다른 형식적 가능성을 예시해주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렇게 미술관 측은 전시 <울산 모색: 울 도시, 울 미술>의 안내로 도시 울산의 시간 그러므로 역사를, 산업을, 자연을 함께 산책해보자고 권유한다. 산책 자체는 일반적인 용어이지만, 산책이란 말이 지금의 문화사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그러므로 세기말을 살았던 일군의 사람들, 이를테면 보들레르(파리의 우울)와 루이 아라공(파리의 농부) 그리고 발터 벤야민(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도시의 산책자(플라뇌르) 이후부터이다.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표현으로 치자면 소요에 해당한다. 그렇게 목적도 없이, 생각도 없이, 정처도 없이 걷다 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것이 들리고, 무심하던 것이 유심해진다. 죤 버거는 다르게 보기를 수행하는 것, 다르게 보기로 유도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했다. 예술은 다르게 보기로부터 비롯한다. 전시는 그런, 다르게 보기를 통해 도시 울산을 다시 보기(그러므로 재발견하기)로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