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대천(名山大川) 속의 현대

 

이선영(미술평론가)

  


김기나는 ‘와유산수(臥遊山水)’ 시리즈에서 최초의 산수화가(山水畵家)인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화가 종병(宗炳)의 예를 들면서, ‘늙어 거동이 불편해지자 젊은 시절 다녔던 명산대천(名山大川)의 풍경을 벽에 그려놓고 와유산수(臥遊山水)를 통해 누워서 산수 유람을 즐기며 자아성찰을 추구하였음’을 거론한다. 북송(北宋) 시대 화가 곽희(郭熙)의 이상적인 산수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요컨대 산수화에는 ‘가고 싶고 머물고 싶고 집을 짓고 거주하고 싶은 경치’라는 이상이 깃들여 있다는 말이다. 명산대천 사이에 옹기종기 마을풍경을 그리는 김기나의 작품은 곽희가 구분한 이상적 산수 중, 최고로 평가한 ‘가거(可居)의 경치’에 속할 것이다. 작가는 전통 산수화의 의미는 담되, 현대적인 매체를 사용한다. 수묵화든 유화든 화폭에 이질적인 재료가 섞여 들어가는 것이 현대적 어법인 이유는 그것이 그림에 전제된 환영에 균열을 가하기 때문이다. 꼴라주는 김기나의 작품처럼 이물감 없이 얇게 붙이는 차원부터, 컴바인 아트처럼 3차원상의 큰 물건들이 붙는 경향까지 포괄할 수 있다. 




 2024 臥遊山水 - 단청을 입다, 130.0×130.0cm. 한지, 수묵, 채색, 헝겊, 2024 



헝겊, 한지 등을 꼴라주하는 작가의 방식은 전통적인 필묵(筆墨) 화법을 탈피하기 위한 것이다. 작가는 ‘臥遊山水’ 시리즈에서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들을 먹이 아닌 헝겊으로 처리했다. ‘단청을 입다’(2024)는 제목은 단청의 오방색을 활용한 것임을 알려준다. 한지나 헝겊같은 재료와 수묵채색이 함께 하는 작품은 깊이와 발랄함이 공존한다. 꼴라주는 그림의 환영(illusion)적 가정을 위반하는 현대적 조형 언어지만, 김기나의 작품에서 한지 바탕 면과의 밀착도가 특징이다. 그래서 그의 꼴라주는 상당 부분 환영에 가담한다. 반쯤 비치는 듯한 재질은 산봉우리들의 묵직한 중량감을 걷어내고, 그러한 풍경을 마주했을 때의 심상으로로 변환시킨다. 겹겹이 붙여진 면들은 메아리처럼 확장되면서 공간을 환희로 가득 채운다. 색의 진정한 출처는 자연이듯, 색색의 면들은 풍경을 이루는 이물감 없는 조형적 언어로 스며든다. 가령 자연은 계절에 따라서 푸른 산, 붉은 산, 노랑 산을 보여줄 수 있다. 


자연은 기후 위기의 시대에 도전받고 있지만, 여전히 그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다양성의 모델이다. 그림 전경에 자리한 집들은 전체 화면의 비중은 작지만, 관객의 시선이 닿고, 거기에서부터 원경의 자연으로 나아가는 시각적 안내판이 되어준다. 자연이 품고 있는 인간의 문명에 대한 이미지는 꼴라주를 비롯한 현대적 어법으로 각색된 동양화의 정신만은 오롯이 보존한다. 나무들이 마을 집 위로 드리워져 아늑한 느낌이다. 깊은 산에서 인간은 살 수 없기 때문에 중간적 단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마을 집들을 에워싸듯 존재하는 나무들은 마치 정원처럼 자연과 문명의 중간 지대를 이룬다. 동양화에서 중요한 여백은 거의 비어있듯이 처리한 수면으로 대신한다. 여백은 단순한 없음이 아니라, 풍경에 잠재적 운동감을 부여하는 요소이다. [臥遊山水-솜사탕 나무](2024)는 문학에서 ‘액자소설’이라는 장르가 있듯이, 다른 작품 속의 일부는 또 하나의 풍경이 된 듯한 작품이다. 




 2024 臥遊山水 - 솜사탕나무, 71.0×96.5cm. 한지, 수묵, 채색, 헝겊, 2024 



다른 작품에서 자연에 깊이 파묻혀 있는 장면이 또다른 작품에서 전경화 된다. ‘솜사탕 나무’ 아래의 푸른 지붕 집들은 마치 축축한 땅 위에서 자라난 버섯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 하늘을 찌르는 바벨탑의 문명과 달리, 자연과의 접속 지점들이 있다. 꽃이 활짝 피면 주변이 환해지는 것도 있지만, 솜사탕 나무는 마치 도시의 인공조명같은 느낌도 있다. 김기나의 풍경은 거친 자연 그자체, 또는 코드화된 문명이 아니라, 양자의 공존을 꾀한다. 문명은 자연 안에 있다. 아늑한 보금자리에 대한 욕구를 심미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작품 [臥遊山水-파란집 마을](2022)에서 마을은 나무숲과 산 안쪽에 자리한다. 작품 [臥遊山水-매화마을](2020)은 전경에 매화가 가득 피어있는 구도로 저편에 마을이 보이는데, 마치 나무 위의 까치집처럼 매화나무 위에 얹혀진 모습이다. 작품 [臥遊山水-雲海](2002)에서 산을 배경으로 그 사이사이에 서 있는 사각형 구조물은 마을 집들과는 다른 차원이다. 하지만 그 또한 자연의 그물망 내부에 자리한다. 


희망사항이 투사된 김기나의 풍경에는 회화 자체의 환영적 속성을 가속한다. 작품 [臥遊山水-水鄕](2024)에서 작가는 화면의 많은 부분이 반영상에 할애했다. 꿈결같이 흐르는 풍경에는 그곳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투사된다. 희망은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을 추동하는 강력한 힘이다. 이전 시대의 신화와 종교가 그러했듯이 예술 또한 비현실의 현실성과 관련된다. 가고싶고 살고 싶은 곳을 담은 그림은 희망에 대한 희망이다. 작품 [臥遊山水-咫尺萬里之世](2022)에서 물과 산 사이에 있는 마을 집들은 도시에 집중된 현실에 대응하는 이상적 풍경이다. 거의 여백으로 남겨진 듯한 수면은 현실적 중력감을 감소시킨다. 작품 [臥遊山水-매화 그늘 아래](2022)는 마을 전체가 매화나무 아래에 있는 것같은 원근법적인 과장이 있다. 나무의 밑둥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명암법 등 환영의 요소가 축소되고 가지들과 꽃은 평면적으로 자유롭게 배열된다. 보이는 모습 그대로가 아닌 풍경은 은유적인데, 김기나의 작품 속 집들이 그렇다. 집은 무인지경의 풍경에서 사람들 대신해서 거기에 서 있다. 




 2024 臥遊山水 - 水鄕, 96.5×162.0cm. 한지, 수묵, 채색, 헝겊, 2024 



지붕은 사람들의 얼굴이다. 나무처럼 집도 지상에 뿌리를 내리며 하늘을 향해 있다. 그것은 지하와 지상, 그리고 하늘이라는 세 영역을 연결한다. 작품 [臥遊山水 -소나무 마을](2019)에서 집같은 인공 구조물 보다 자연의 비중이 높은 풍경은 도시에 몰려 사는 현대인의 로망이다. 멀리서 본 풍경이긴 하지만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심상에 가까운 광경임을 알려준다. 산뜻하게 칠해진 지붕이 강조된다. 지붕은 집과 관련된 대표적인 형태이기도 하고, 형태로부터 추상된 도상적 기호이기도 하다. 집은 그 내부구조를 유추할 수 있을 만큼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작품 [臥遊山水-梅花谷](2022)이 그렇다. 하지만 자연의 비중을 크게 한 과장된 원근법은 장난감같은 차원에 놓인 문명을 말한다. 대지 부분을 여백으로 남겨 쓰여진 문자는 단지 작품 제목이나 작가명에 대한 정보를 넘어서 시서화의 전통과 관련된다. 결과적으로는 조화롭지만 작가가 선택한 이질적 재료와 방식은 자연과 예술 언어에 대한 고민이 내재되어 있다. 자연은 무조건 아름다운 것인가. 예술은 자연과 동일시 될 수 있는 것인가. 


문화평론가 캐밀 파야(Camille Paglia)는 [성의 페르소나sexual personae]에서 루소로 대변되는 자연에 대한 선한 관념을 수정하려 한다. 동양의 자연관과도 비슷한 자연에 대한 루소적 자상함과 배려는 한순간에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캐밀 파야는 자연에 대한 자유주의적 가정과 달리, 자연에 내재된 폭력성과 잔인함을 강조한다. ‘추악함, 고통, 유산, 부패 등’과 같은 자연의 현실을 상기시키면서, ‘자연의 파시즘은 인간사회의 그 어떤 파시즘보다 강력한 것’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인류세 이후 인간이 자연에게 가한 폭력은 수시로 되돌아오고 있는 실정 아닌가. ‘고삐 풀린 자연’의 폭력성이 철저히 감춘 김기나의 작품은 기만이기 보다는 ‘와유산수’에 내재된 희망 사항을 말한다. 희망이란 무엇보다도 부재감을 전제로 한다. 고령화 등, 인간이 불편해서 자연을 향유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이제 주관 뿐 아니라 객관인 자연 그 자체도 앓고 있다.  




 臥遊山水 - 雲海, 60.0×65.0cm, 한지, 수묵, 채색, 2002 



또 한편으로 스며드는 듯한 필묵에 더한 자르고 붙이기의 방식은 예술이 결국은 자연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자의식의 발로이다. 캐밀 파야는 자연과 예술을 대조시킨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한다. ‘자연은 우리를 낳은 위대한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의 창조물이다...’ 자연과 상상력을 연결시키는 전통적 흐름 대신에 ‘예술의 유일한 기능’은 ‘오묘하지만 생산성은 없는 감정들을 각성시키는 것’(오스카 와일드)라고 주장되었다. 자연에 지나치게 방점을 찍는 경향은 그 극단적 반대를 낳기도 했던 것이다. 캐밀 파야는 ‘자연은 조야하고 소란스러운 원시적인 힘일 뿐이다. 아름다움은 자연에 대항하는 우리의 무기다. 아름다움은 자연의 용해하는 흐름을 정지시키고 동결시킨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한쪽으로 치우친다. 김기나의 작품은 현대적 조형 언어의 인위성과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 애쓰며, 이것이 현대 한국 화가들이 많이 고민하는 전통과 현대의 관계 설정에 대한 작가의 잠정적 답일 것이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4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