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생광, <무당-3>, 1983, 지본채색, 136×137cm
에릭 홉스봄의 언급처럼 “전통이란 보존되고 전승된 어떤 것이 아니라 고안된 어떤 것”이다. 전통이란 끊임없이 해석·평가·재해석, 재발견의 과정을 지난하게 거치면서 시간의 풍파를 견뎌 살아남은 것이다. 전통이란 현재가 과거에 대해 씌운 프레임일 뿐이다. 그 프레임은 전적으로 현재의 관점에서, 현재의 필요에 따라 생겨나고 실행된다.
‘근대화/현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서구식 자본주의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서구의 근대문화와는 다른 ‘한국적 정체성’을 찾고 식민지적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간 한국 사회와 미술계를 지배해왔다. ‘세계성’과 ‘한국성’ 모두를 획득해야 한다는 이 애매한 자의식 속에서 한국현대미술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에 들어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속으로 편입되기 위한 서구화가 적극 추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적인 것에 대한 반정립으로서 동양주의와 민족주의가 대두하였다. 그에 따라 한국현대미술은 전통을 호출하고 그에 맞게 각색되었으며 한국 현대미술의 특질이 “만들지 않은 예술,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살고자 하는 행위의 예술”(조셉 라보)로 규정되었다. 이에 부응해 박서보는 “작위를 싫어하고 ‘나’를 드러내려 하지 않으며,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무명성에 살고자 하며 옛 선비가 자기순화의 수단으로 자기를 갈아 없애듯 먹을 한없이 가는 반복행위의 무위성, 그리고 자기순화의 수단으로 문인화를 치던 옛 선비가 궁극적으로 자기를 비워놓음으로써 크나큰 해방감을 맛보던 그런 무위자연을 살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작가들은 동양의 전통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원초적인 것, 자연으로의 회귀, 백색, 정신성, 무위, 범자유주의를 주창했다. 그것은 이른바 ‘서양’에 의해 승인될 수 있는 ‘동양성’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서양의 근대가 설정해 놓은 동양관, 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는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러한 성격은 이미 일본인 민예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1920년대에 조선미술의 특징으로 규정한 것을 동어반복하는 수준의 것이었다. 그러니 그간 7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은 ‘근현대’가 무엇인지를, 근대/현대를 구성하는 모순적이고 착종적인 선분들을 노정해왔다.
1970년대에 태동된 ‘한국적 모더니즘’이란 것도 일종의 ‘망상’에 해당한다. 그래서 내셔널리즘적 정체성이 요구되고 서구와 비서구의 시선이 교착되는 가운데, 타자화와 동일화의 과장이 반복 재생산되는, ‘근대라는 구조’만이 있었을 뿐이라고 비판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상당수 작가들은 민족적 주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동양적 가치’를 경유하였고 동양적 가치 중에서 어떤 것을 한국적 정체성으로 선택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자연성’이었다. ‘자연성’은 서구적인 것에 대응되는 동양적인 특징으로서, 또 동양적인 것 안에서 특화되는 한국적 정체성으로서, 겹겹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동양성이든 자연성이든 백색의 미든 모든 정체성 담론은 일종의 전도된 인식이다. 그것이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전제하고 출발하는 사고 말이다. 기원으로 소급해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태도, 미적 특징을 민족적 차원에서 정의하려는 시도 자체는 근대적 산물에 해당한다. 기원으로 회귀하여 타자에 정체성을 부여한 것이 바로 근대 제국주의의 오리엔탈리즘인 것이다. 여기에는 서구모방주의나 식민지적 담론에서 벗어나 ‘우리의 것’을 명명하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은 그 담론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역설이 자리한다.
정체성과 기원을 찾으려는 자들에게 동양적인 것·한국적인 것은 유령처럼 회귀한다. 그것은, 동양적인 것·한국적인 것이 굳건한 기원이어서가 아니라 공허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서구에 의해, 제국주의에 의해 내면화된 동양, 그리고 서양에 의해 타자화된 자신을 다시금 타자화하게 만드는 오리엔탈리즘적 구도 자체를 파열시키지 않는 한, 우리는 스스로를 진정으로 직시할 수도, 타자를 온전히 마주할 수도 없다.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것은 더 그럴듯한 한국성/동양성이 아니라 그러한 표상들로 표착되지 않는 다양한 삶과 미지의 예술적 영역들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견고한 정체성이 아니라 더 다양한 척도들, 더 다채로운 시선과 삶이자 그로부터 출현하는 미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