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국립20C(근대)미술관 건립을 위한 세미나 2024.7.23 종합토론
(왼쪽부터) 김허경, 김복기, 정준모, 홍경한, 도재기, 김한결 ⓒ 제공: 최열
해방 이후 70년을 기다려 왔다. 물론 가만히 앉아 기다린 건 아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근대미술사학의 태두, 석남 이경성 선생께서 일찍이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선창하셨고 나 또한 건립을 제창해 왔다. 하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했다. 국립미술관 건립은 민간에서 외친다고 해서 저절로 성립할 일이 아니다. 오직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결재권자인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이 있어야만 실현 가능한 국가사업이다.
돌이켜 보면 민간의 요구에 응답했던 정권은 오직 김대중 정권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제국 정궁이었던 덕수궁을 최적공간으로 판단, 결정했다. 다만 당시 국가재난상태인 IMF를 극복할 때까지 현대미술관 분관체제를 유지할 것을 단서로 달았다. 하지만 그 뒤를 이은 정부는 그 뜻을 계승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기회는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엔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결성되었고 2024년에는 국립근대미술관설립을 위한 전국연구자포럼이 결성되어 국립미술관 건립을 제창하는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두 모임에서는 그간 제창해 오던 명칭인 ‘근대미술관’과 더불어 ‘20세기미술관’을 병칭하는 데로 나갔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라 하겠다. 21세기도 4반세기를 지나고 있는 이때 국가 미술관체제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당위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1990년대 이후 미술 개념과 양태가 급격히 변모함에 따라 미술관의 성격과 기능 또한 이전과 이후를 엄격히 분리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따라서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21세기의 경계선이 그 미술의 본질과 개념, 형태를 가르는데 명료한 계선으로 부상하고 있고 이런 현상은 유럽 선진국에서 이미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21세기 접어들어 동시대미술의 급격한 혁명적 변모를 지켜 보고 있자면 19세기 이전을 품는 중앙박물관 그리고 20세기미술관과 21세기미술관으로의 분화는 시대의 당위로 보인다. 다시 말해 기왕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 분단시대 그리고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품을 수 없음은 명확관화한 일이다.
60년 동안 비만해진 국립현대미술관이 격동과 급변을 거듭하고 있는 두 세기를 모두 포용할 수 없음은 과거 공룡 같던 루브르미술관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을 품고 있던 루브르가 소장품을 나누어 퐁피두와 오르세를 탄생시켰고 그 다양성과 풍요로움으로 말미암아 파리가 얼마나 매력이 넘치는 도시로 거듭났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이건희 소장품 기증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는 이건희기증관 건립을 결정했다. 대한민국은 고전-근대-현대의 3관체제를 갖추지 못한 나라다. 따라서 20세기 미술품이 다수 포함된 이건희소장품을 수장했을 때 문재인 정부는 수증품을 자산 삼아 공백으로 비어있는 ‘20세기’ 미술관을 창설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주무장관은 기증자가 작품성격에 맞춰 각 박물관과 미술관에 배분한 작품을 다시 회수해 독립된 기증관을 건립한다는 황망스런 결정을 내렸다.
잘못은 언제건 바로잡아야 한다. 간단하다. 이건희 기증품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수증품은 모두 20세기 작품이다. 새로이 건립할 국립20세기미술관에 이건희기증관을 설치하여 문재인 정부의 결정을 계승함과 더불어 지난 70년 동안 기형이었던 국립미술관을 19세기 이전(고전)-20세기(근대)-21세기(동시대)의 3관 체제로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 필요성에 뜻을 함께한다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지난 7월 23일자 공개발언이 조만간 실현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최열(1956- ) 가나아트센터 기획실장, 한국근현대미술사연구소 운영위원장 역임. 인물미술사연구소 소장. 2022 제4회 혜곡최순우상 수상. 『한국근대미술의 역사』(1998, 열화당)외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