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1999년 늦가을 광주 호남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나는 국제행위예술제를 기획하여 문예진흥기금을 신청했다. 지원금 1,000만 원을 받았는데 이 예산으로 어떻게 국제전을 치르나 걱정이 태산 같았다. 국제전을 할 바에는 세계 정상급 작가를 초빙하자! 그때 떠오른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오를랑(ORLAN, 1947- )과 호주의 스텔락(STELARC, 1946- )이었다. 문제는 그들과 나는 일면식도 없다는 것.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오를랑의 웹사이트에서 발견한 메일 주소로 다짜고짜 편지를 썼다. 이 사연은 여러 번 소개를 했기 때문에 되풀이하지 않겠다. 궁금하신 분은 달진닷컴에서 내 칼럼을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세상 일이 뜻대로 풀리려면 모종의 사인이 있다. 내 경우에는 당시 오를랑의 답변이 그랬다. 프랑스인인 오를랑은 서툰 영어로 자신을 국제행사에 초청하는 내게 “좋다, 당신의 그 열정이 마음에 든다. 서울에 가겠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그녀의 편지에서 본 ‘Yes’란 단어다. 그 세 음소를 접한 순간, 한 인간의 내면적 깊이와 넓이, 그리고 폭이 느껴졌다. 주지하듯이 오를랑의 이마에는 두 개의 뿔이 봉긋이 솟아 있는데, 바로 그것이 세상과 교신하는 안테나요, 청진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경호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G.MAP 센터장(왼쪽)의 파리 유학시절 스승이기도 한 오를랑(가운데)과 필자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G.MAP이 주최한 오를랑의 전시 첫날,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대표작의 이미지가 투사되는 가운데 진행된 그녀의 강연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나는 내 몸을 예술에 바쳤다.”는 발언에서 오를랑 예술의 새로운 도전과 탐험, 그리고 신과학 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매체에 대한 관심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서너 차례 그녀의 예술에 대해 글을 썼던 터라 강연이 끝난 후 이어진 토론에서 그녀의 작업을 가리켜 산(남성)을 깎아 골짜기(여성)를 메우려는 노력이라고 표현했다. 이 평탄 작업은 서양(산)과 동양(골짜기)을 평탄화 시키는 관점에서 내가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말이다. 이 글에서 오를랑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그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도‘그녀’도 오를랑을 지칭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순도 100%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존재하지 않은데 어떻게 단 두 개의 단어로 인간의 성을 가를 수 있겠는가? 오를랑이란 이름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의 이름이라는데, 이 또한 평탄 작업과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10여 년 전, 나는 평생 사용한 수십 개의 넥타이를 보자기(여성성)에 싸 큰 호박만 한 크기의 그것을 머리에 이고 등장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었다. 보따리를 풀자 나타나는 넥타이 뭉치(남성성)! 다시 보자기로 싸자 홀연히 사라지는 넥타이. 다 한 몸에 있는데 구분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를랑과 내 작업도 이러한 지점에서 연결 고리를 만들수 있지 않을까? 평탄한 인간의 지평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들이 만나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1999년에 처음으로 교신하여 2001년에 세줄갤러리에서 첫 대면, 다시 슬로바키아의 코시체에서 안경 바꿔쓰기 퍼포먼스, 2016년 성곡미술관에서 안경 바꿔쓰기 퍼포먼스와 증강현실 즉흥 퍼포먼스 실연, 그리고 이번 2024년 광주의 즉흥 퍼포먼스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77세에 이른 오를랑과 이제 칠십 문턱을 넘어선 나. 이제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조차 할 수 없으나, 인간 보편의 지평을 열기 위해 평생 온몸을 바쳐 온 오를랑의 피 끓는 예술혼을 오마주해야 작가이자 전시기획자로서의 내 인간적 도리가 아니겠는가? 진정 그리해야 되지 않겠는가? 인사동의 백상빌딩 내 DAS ZIMMER GALLERY에서 열린 《ORLAN, Surprise!_윤진섭과 함께하는 72시간의 기록》(9.8-9.10)전은 1999년 이후 사반세기에 걸친 그녀와 나와의 우정을 돌아보고 그녀의 투철한 예술혼에 존경을 바친 나의 오마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