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마술, 그리고 미술

 

이선영(미술평론가)

 


박건의 작품은 울긋불긋하지만 그가 선택한 상징적 재료는 정신성이 충만하다. 물론 투명한 계몽의 빛은 아니고 주변화되곤 했던 무속같은 전통이다. 노란 색감을 내는 열매인 괴화나무는 붉은 경면주사와 더불어 부정한 것을 쫒는다고 믿어졌다. ‘홰나무로 만든 괴황지를 염색하고 붉은색의 경면주사를 이용해 그린 부적은 단순히 낡은 미신에 머물지 않고 과학적인 증명 방식을 차용하여 가상과 현실을 이어주는 설계도를 탄생’ 시킨다. 배경과 형태를 이루는 주요 색들은 오방색에 속한다. 색과 재료에 내재한 전래의 상징주의에도 불구하고, 내용물을 채우는 것은 공학적 설계도나 컴퓨터 회로도 등을 떠올린다. 수직 수평의 축을 따라 배열된 형태들은 단편적 도상들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럽지 않다. 작업실에는 괴황지에 그려진 작품이 쌓여있다. 그 중 극히 일부만 설치의 방식으로 관객과 만난다. 완성에 시간이 많이 들었을 섬세한 작품들이 그토록 많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그가 작업에 깊이 몰두했음을 알려준다. 


박건, Rebirth of science_장지에 괴화염색, 경면주사, 연필_194x397.5cm_ 2024



박건, Rebirth of science_장지에 괴화염색, 경면주사, 연필_194x397.5cm_2024



박건, 기계혼환경(机械魂唤經)_장지에 괴화염색, 경면주사_194x265cm_2023



몰입은 합리적 과정에 의해 진행되는 노동과 달리 도약과 비약의 계기가 있다. 작가는 작업할 때 ‘난 샤먼이다’라고 주술을 건다. 스스로 ‘SF Shamanism’이라고 정의하는 박건의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인식 한계 밖 너머의 외부적이면서 접근할 수 없는 것들을 가시화’한다. 엘리아데의 [샤머니즘]에 의하면, 접신하는 샤먼의 영혼은 육체를 떠나 하늘로 오르거나 지하세계로 내려가며, 죽음, 질병, 기근, 재난 등 암흑의 세계와 맞서서 생명, 건강, 풍요, 광명의 세계를 지키는 존재이다. 박건에게 과학기술-주술-예술은 몰입이라는 공통적 과정으로 모순 없이 연결된다. 그것이 엑스터시이든 탈혼망아(脫魂忘我)이든 더 큰 자신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과정은 마찬가지다. 그는 ‘주술을 통해 관객들에게 영험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제시하고 싶다. 나는 그 중심에서 기꺼이 가상과 현실을 잇는 안내자가 되겠다.’고 말한다. 액운을 물리치는 주술, 매 순간 행운을 기대하는 작업 과정은 좋은 쪽의 변화를 말한다. 


주역과 통계학, 양자역학의 관계를 말하는 이가 있듯이, 박건 또한 주사위 놀이같은 세상의 법칙을 표현한다. 장기판이나 바둑판처럼 단순한 격자도 수많은 게임의 수가 가능하듯, 또 다른 서사로 이어질 배치는 무궁무진하다. 그 사이사이에 낀 인체의 부분들은 인간과 기계의 만남을 암시한다. 인체의 해부도나 MRI, 그리고 한의학에서 맥과 기를 집는 듯한 모양새, 관상 등 동서양의 의학적, 기술적 자료들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박건은 도면 이미지에 대해 ‘과학기술자에게 회로도는 기계를 움직이게 해주는 에너지’라는 점에서 부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교나 예술 또한 그렇다. 종교학자 니니안 스마트의 [현대종교학]에 의하면 성상을 비롯한 종교 예술품들은 저 너머에 있는 존재를 지시해 준다. 예술은 ‘종종 인류를 둘러싸고 있는 이상한 힘들에 대한 반응을 표현하는 수단’(니니안 스마트)이다. 이러한 힘의 발현이나 전달이 우연에 기대지 않고 체계적으로 재현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과학기술일 것이다. 



박건, 한국괴물 드로잉



박건, 환수염원부, 산해경#1_괴황지에 경면주사_ 80.5x60cm_ 2018



박건, 환수염원부, 산해경#2_괴황지에 경면주사_ 80.5x60cm_ 2018



박건, 환수염원부, 한국괴물#2_괴황지에 경면주사_ 80.5x60cm_ 2023



그는 이번 전시에서 출입구를 암막 커튼으로 가려 내부 공간을 어둡게 하고, 일부 작품은 벽에서 띄워 설치하여 관객의 작은 움직임에도 반응할 수 있게 연출한다. 보이지 않는 힘을 전달하는 그의 방식이다. 박건의 작품에서 뇌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인공지능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반영한다. 마치 수화처럼 뭔가 말하는 듯한 손가락들은 코드화된 세상과 손가락의 관계를 말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손가락이 아닌 손으로 그리는 화가이다. 질 들뢰즈가 현대회화론에서 손/손가락적인 것을 구별한 맥락에 의하면, 그에게는 과학기술적 손가락보다는 예술적 손이 빠른 것이다. 작업에서의 컴퓨터 활용은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데 한정한다면서도, ‘프로그래밍을 통해 주입된 명령만이 수행하는 것이 아닌 무한히 펼쳐지는 격자의 세상을 스스로 상상하여 만들고 자유롭게 여행을 한다’고 말한다. 17세기 고전주의 시대부터 인간기계론 등이 심심치 않게 나왔지만, 그때 기계의 모델은 시계에 불과 했다. 


누가 그 시계에 태엽을 최초로 감았는지는 여전히 비밀이다. 합리주의를 둘러싼 비합리주의의 역설이며, 그것은 AI같은 첨단 과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술과 마술은 오래전부터 밀접했다. 가령 고대의 연극 연출기법 중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는 기중기같은 기계장치로 신을 출현시켜 복잡하게 꼬인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시계처럼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우주의 질서는 고전 과학의 대표자 뉴튼이 제시한 것으로, 이후 자동인형이나 로봇 등의 모델이 되었다. 이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 21세기의 기계의 모델은 시계를 넘어선다. 디지털 코드는 정보를 복제하는 속도가 엄청나서 질적인 전환을 이루고, 기계는 인간 몸의 확장을 넘어서 정신의 확장이 되었다. 도면처럼 그려진 박건의 작품은 재현이라는 아나로그적 차원을 생략할 수도 있다. 그는 화가이기 때문에 ‘작동’은 관객과의 소통으로 충분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계획과 결과는 거의 동시적이다. 



박건, 환수염원부, 한국괴물#3_괴황지에 경면주사_ 80.5x60cm_ 2023



박건, 환수염원부, 한국괴물#4_괴황지에 경면주사_ 80.5x60cm_ 2023



박건, 환수염원부, 한국괴물#5_괴황지에 경면주사_ 60x40cm_ 2023



박건, 환수염원부, 한국괴물_괴황지에 경면주사_ 80.5x60cm_ 2023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은 정확도를 가져야 할 엄격한 회로도 이미지와 주술적 분위기를 결합한 작가는 ‘기계장치 속 영혼은 존재하는가? 기계장치와 인공지능이 우리 사람과 동격의 정신과 영혼이 지녔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나는 진심으로 그렇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그러한 믿음은 AI 때문에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으니 사회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로 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그 전모가 드러니지 않은 인공지능은 그에게 경이로움을 안겨 주었고, ‘정교하게 짜여진 놀라운 격자의 구조 사이를 느낄 때면 나의 영혼이 충만해져 감을’ 느끼게 했다. 그의 작품은 최신의 인공지능 이미지가 고풍스러운 매체에 실리는데, 그것은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도 인공지능 있었다’는  믿음의 발로다. 박건에게 ‘AI는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인공지능에 서사를 부여하고자 한다. 


출전; 영천미술창작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