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현대미술가협회의 과제와 미래적 전망
윤진섭 | 미술평론가
Ⅰ.
대구는 그 어떤 도시보다 현대미술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현대미술의 메카’라고 부른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1974년에 창설된 [대구현대미술제]에 가 닿는다. 연대기적으로 보면 1975년에 창설된 [서울현대미술제] 보다 1년이 앞선다. 그 이전에 현대미술이 강세를 보인 곳은 서울이 유일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수도(首都) 서울은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인식되었다. 미술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6.25 전후(前後)의 황폐한 상황에서 태동한 비정형(앵포르멜) 회화의 주도세력이 60년대 중후반의 침체기를 거친 뒤 다시 세력을 규합, 단색화로 부활하는 중이었다. 고(故) 박서보(1931-2023) 화백은 그 중심에 있었다. 미협 국제분과위원장 겸 부이사장(1970-77)과 이사장(1977-80)의 직책을 맡은 그는 전국 규모의 미협조직을 활용하여 현대미술 운동을 전파해 나갔다. 원래 미협은 1973년에 [서울현대미술제]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언론 보도가 된 상태에서 전시가 불발되었다. 그 사이를 치고 나간 것이 바로 [대구현대미술제]였다. 전국 규모의 이 전시는 자생적이었다.
김기동, 김영진, 김재윤, 김종호, 이강소, 이명미, 이묘춘, 이향미, 이현재, 최병소, 황태갑, 황현욱 등 기획위원들에 의해 전국적인 작가 선정이 이루어졌다. 70여 명에 달하는 초대작가와 <ST>, <신체제> 등 실험적인 그룹이 초대된 가운데 역사적인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1974.10.13.-19/계명대학교 미술관)의 막이 올랐다. 한국 현대미술사상 첫 ‘현대미술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대구현대미술제]는 최초의 전국단위 현대미술제였다. 이 시기 서울에서는 1972년에 창설된 [앙데팡당]전을 비롯하여 [서울현대미술제](1975)와 [에꼴드서울](1975) 등 대규모미술전이 번성하던 시절이었다.
1974년에서 79년까지 [대구현대미술제]는 총 5회 동안 307명의 작가가 초대됐는데, 그 명단을 살펴보면 실로 대단하다. 한국 현대미술을 통째로 대구에 옮겨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위세가 막강했다. 개념미술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입체, 설치, 비디오, 이벤트 등 다원주의적 징후를 보였다.
특기할 사항은 [대구현대미술제] 기간 동안 대구 인근의 강정(1977, 79)과 냉천(1978)에서 이벤트가 이루어진 것이다. ‘사건’을 의미하는 이벤트가 야외에서 행해지면서 [대구현대미술제]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작가들의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행위미술(이벤트)가 조선일보를 비롯한 매스컴에 의해 조명되면서 이 행사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에 광역시가 여러 곳 있지만, 대구만큼 현대미술에 대한 역사가 깊고 인프라가 잘 구축된 곳은 드물다. 대구는 경북대를 비롯하여 영남대, 계명대, 대구대, 대구카톨릭대, 대구예술대 등등 미술학과를 두고 있는 대학이 많고, 섬유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70년대 이후 콜렉터층이 형성돼 화랑업이 번성했다. 현재 대구의 화랑은 약 70여 개에 달하며 대구화랑협회(회장: 전병화, 소속화랑 42개사)가 결성돼 있을 정도로 세력이 막강하다. 미술대학이 이렇게 많다 보니 여기서 배출된 미술인들이 많아 대구에는 연일 전시가 끊이지 않는다.”
윤진섭, <한국 현대미술의 메카로서 대구의 중요성>, 서울문화투데이, 2023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대구와 강정, 냉천을 비롯한 인근 지역이 지닌 중요성은 한국 실험미술 내지는 전위미술의 산실이란 사실에 있다. 이는 [대구현대미술제]의 역사를 통해 검증되거니와 문제는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대구미술의 향방에 대한 과제가 이제 대구 미술인들에게 부여되고 있다.
Ⅱ.
[대구현대미술제]가 1979년에 제5회 행사를 끝으로 막을 내린지도 4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세상은 많이 변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문명의 패러다임이 대전환을 이루었으며, 이제는 세계가 한 가족처럼 소통하는 ‘SNS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즉, ‘손끝의 창조(Creation from the Fingertips)’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날이 발전해 가는 저작 앱(app)을 비롯하여 인공지능(AI), 챗봇(chatbot: 음성이나 문자를 통한 인간과의 대화를 통해서 특정한 작업을 수행하도록 제작된 컴퓨터 프로그램/NAVER), NFT, 메타버스 등등 디지털 기반의 가공할 신기술의 개발은 나날이 인간의 창조력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의 위기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까?
[대구현대미술제]가 열리던 70년대만 하더라도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그룹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대관화랑에서 전시를 했으며, 큐레이터란 말이 없던 그 시절에 전시기획은 작가들이 직접 하던 시절이었다.
1995년에 창설된 광주비엔날레를 기점으로 한국 미술계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이른바 국제화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개관, <미술의 해> 등 이 무렵의 한국 미술계는 놀라울 정도로 변신을 거듭했다. 작가에게서 큐레이터에게로 전시기획의 무게 중심이 옮겨갔으며, 갤러리 숫자의 증가와 함께 아트페어, 각종 옥션은 상업주의의 확산을 부채질했다. 그에 비례하여 미술에서 전위와 실험이 서서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과연 전위미술이 존재하는가?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무장한 ‘작가주의’의 실종에 애도를 표함과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비엔날레, 미술관, 화랑간의 관계는 또 어떠한가.
“<전위예술론>을 쓴 레나토 포기올리(Renato Poggioli)가 예로 드는 파레토(Pareto)의 ‘잔여물(residui)’ 개념은 흥미로운 관점을 시사해 준다. 파레토에 의하면 인간 행위가 지닌 ‘비합리성’과 관련된 잔여물은 여섯 개의 성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결합의 본능, 집단 추대, 외부적 표출 욕구, 사회성, 개인성, 성적 욕구’ 등이 그것이다. 파레토는 “인간은 이 비합리적인 성격의 잔여물들 위에서 수많은 신념체계를 구축한다.”고 보았다(레나토 포기올리, <전위예술론>). 예컨대 인간의 행위는 가장 이성적이며 합리적이어야 할 학문과 전시기획, 비평 등의 영역에서조차 이러한 잔여물들의 영향 때문에 비합리적이며 반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게 될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인간행위를 결정하는 수많은 변수들 간의 상호의존적 양상”(Pareto) 때문에 집단적인 패거리 문화와 따돌림, 게토와 같은 현상들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비단 미술의 경우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정치현장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광범위한 현상이다.
윤진섭,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역사와 비평>, 2020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서두에 언급한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총감독 파올로 헤르켄호프를 떠올렸다. 그는 왜 비엔날레 주제의 키워드를 ‘카니발리즘’으로 잡았던 것일까? 그는 경제적으로 핍박받는 제3세계의 입장에서 미국으로부터 부는 신자유주의의 북풍을 의식했던 것일까? 그래서 6대주 권역의 큐레이터들에게 이 식인풍습의 관행을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해 볼 것을 권유했던 것일까? 파올로의 권유를 받은 아피난 포샤난다는 이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막강한 국제금융 세력이 아시아에 가하는 약탈’로 해석했다. 그것을 침략으로 규정할 때, 침략을 당한 입장에서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는 과연 무엇일까? 굴욕을 견디며 던져주는 빵을 위해 참아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빵을 상대방의 면상을 향해 던지고 풀뿌리로 연명하면서 힘을 길러야 할 것인가? 서구와 연관시켜 볼 때, 내가 미술현장에서 부딪힌 문제들 중 상당수는 이런 심리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민주주의 요체라고 하는 다수결의 원리는 그것이 원칙대로 지켜질 때 금과옥조(金科玉條)인 것이지, 담합과 협잡, 눈속임과 매수, 패거리와 짝짓기가 횡행하는 사회현실에서는 허수에 불과한 것이다. 선의를 가장한 ‘보이지 않는 힘’은 미술현장에 출몰하여 질서를 교란시키며, 자의적으로 세계를 분리하고, 자기 입맛에 맞게 판을 짜는 도박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오늘날 아방가르디스트들에게 요구되는 사명이 있다면, 이처럼 어둡고 전망이 불투명한 시대에 인류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줄 수 있는 ‘전사의 힘’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상업주의에 영합하는 무늬만의 사이비 아방가르드가 아니라, 목표와 이상이 행동과 일치하는 진정한 의미의 아방가르드 정신의 회복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시기가 바로 오늘이 아닌가 한다.”
윤진섭,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역사와 비평>, 2020
Ⅲ.
1997년에 창립된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미술에서 ‘실험’을 추구하는 작가들의 결속체이다. 회원들은 <대구현대미술제>의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정신을 이어받아 기존의 미술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작가주의 정신에 충실하여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나’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국내외의 회원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소정의 심사를 거쳐 영입한다. 여기에는 회원의 질을 높임으로써 대구현대미술가협회를 정예작가 위주의 경쟁력 있는 단체로 성장시키기 위한 회원들의 협회에 대한 높은 자부심과 여망이 담겨 있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회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대안공간 ‘Space129’를 마련, 다양한 기획전을 기획하며, 코디네이터 제도를 도입, 회원전을 평범한 전시가 아니라 주제전으로 운영하고 있다. 매년 치루는 회원전은 코디네이터 제도를 도입, 대구문화예술회관 전관을 통해 소주제에 맞는 회원들을 분산, 배치하여 전시회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코디네이터 제도보다는 커미셔너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전시기획의 전문성을 살리는 방안이다. 즉, 현재의 회원들이 맡는 코디네이터 제도보다는 외부의 전시기획자들을 초빙하여 보다 객관적으로 협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각이 요구된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론들은 결국 작가주의 정신의 정착과 확산에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원 각자가 대구라는 좁은 지역을 벗어나 한국을 거쳐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진취적 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50년 역사를 지닌 <대구현대미술제>의 ‘도전과 저항’의 전위정신은 이제 세계미술계에 한국의 미술을 심은 단계에 이르렀다. 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이 구겐하임미술관으로 간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1970s]전에는 김구림, 박현기, 이현재, 이향미, 정강자 등 대구 출신의 작가들과 함께 김영진, 이강소, 최병소 등등이 초대돼 대구현대미술가협회의 위상을 높인 바 있다. 또한 이 전시에는 1975년에 대구에서 결성된 전위단체인 그룹 ‘35/128’도 초대돼 대구 미술의 실험성이 부각되었다.
올해의 전시 타이틀은 <우리가 하려는 그 무엇>이다. 이 타이틀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새로운 예술 창조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의지에 대한 표명이 아닐까? 그리하여 오늘의 내가 처한 현실을 극복하고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나를, 나의 세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1974년에 창설된 <대구현대미술제>와 1975년에 창립을 본 ‘대구현대작가협회’의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전통을 이어받은 ‘대구현대미술가협회’의 회원들은 연례 회원전을 하더라도 소품 위주의 평범한 전시가 아니라 심혈을 기울인 대작을 출품하는 게 전통이다. 이는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였다. 회화, 조각, 오브제, 설치,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와 형식, 매체를 통해 각자 개성이 뚜렷한 작품세계를 선보임으로써, 70년대 이후 ‘실험미술의 메카’로 각인돼 온 대구미술의 전통을 잇고 있다.
전시가 평범한 회원전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의 주제 아래 여러 섹션을 두고 각 섹션은 코디네이터의 관점에 따라 전시를 구성했으나,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주제나 소주제 공히 관념적이기보다는 구체성을 띨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획전문가들로 구성된 인사들이 기획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주제와 소주제를 잡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전시가 기획된다면, 향후 대구의 실험과 전위정신을 잇는 [대구현대미술가협회전]으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이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 주최 강연원고,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