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노래1)
윤진섭 | 미술평론가
Ⅰ.
이경호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불, 1991년에 파리에 있는 세르지국립고등예술학교(D.N.S.E.P)와 디종에 있는 국립미술학교(D.N.A.P)를 졸업했다. 그가 프랑스에서 활동한 시기는 1987년부터 2000년까지다.
2000년에 귀국한 후, 이경호는 국내의 그 어떤 미디어 아트 작가보다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중 굵직한 것만 꼽아봐도 [미디어시티 서울], [광주비엔날레], [강원트리엔날레], [창원조각비엔날레], [전남수묵비엔날레], [상하이비엔날레], [세비아비엔날레], [세네갈비엔날레], [Z.K.M아시아현대미술제](독일) 등등 국내외의 주요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뿐만아니라 슬로베니아의 뉴블리아나 시티 갤러리를 비롯하여 타이페이 현대미술관, 상하이 두오룬미술관, 중국 사천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가졌고, [Tamarindo Art Wave Festival](코스타리카)을 비롯하여 [KIAF], [부산아트페어], [상하이아트페어] 등등 각종 아트페스티벌과 국제아트페어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Ⅱ.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경호는 학연에서 자유롭다. 이것은 그의 장점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소위 ‘S대’니 ‘H대’니 하는 학연과 인맥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는 그 반대급부로 학연과 계파를 초월하여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는 작가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물론 유난히 자유롭고 쾌활하며, 적극적인 이경호의 성격도 한 몫을 단단히 했겠지만, 운도 따라주었다. 가령 귀국 후 작업 초기인 2000년대 초반에 당시 국제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독립큐레이터 고(故) 이원일(1960-2011)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상하이비엔날레], [세비아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독일의 [Z.K.M아시아현대미술제] 등에서 이원일 큐레이터와 호흡을 맞추는 가운데 이경호는 국제적인 미디어 아티스트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대 초반에 형성된 미디어아티스트로서 이경호의 성가(聲價)는 상당 부분 이원일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한창 국제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1세대 독립큐레이터였던 이원일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이경호에게도 큰 충격이자 손실이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작업 환경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프랑스에서 상 2) 을 받고, 같은 해에 귀국했는데, 이때 갤러리세줄의 성주영 대표를 만난 것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연줄이 없었는데 성 대표가 그 역할을 해 주었다. 그때만 해도 설치‧미디어아트 작가를 전속으로 삼는 갤러리가 드물었는데, 성 대표가 개인전을 열어주고 천안의 정보통신부 건물에 설치작품을 넣는 등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한 관계로 국내에 이렇다 할 인맥이 없었는데, 이용우, 이원일 선생 등 유명한 전시기획자들을 소개해 주어서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지금도 성주영 사장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
작가에게는 일의 터전으로 이끌어주는 매개가 필요한데 그 역할을 성주영 대표가 한 것이다. 그때부터 이경호는 달리는 말이 날개를 단 듯 국내외 미술계를 종횡무진(縱橫無盡) 정열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 내용이 이 글의 서두에 열거한 국내외의 각종 비엔날레 등 대형 전시회거니와, 이경호는 그때부터 비로소 국제 미술계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Ⅲ.
그렇다면 이경호는 과연 어떤 작가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작가로서의 훈련과 초기 작업이 이루어진 프랑스 유학 시절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이 질문은 오늘날 이경호가 보여주는, 풍부한 상상력이 낳은 다양한 설치‧미디어 작업과 퍼포먼스의 정체를 해명하는 작업과 연계된다. 과연 무엇이 그처럼 변화무쌍하고 삶에 뿌리박은 다양한 개념의 작품들을 낳게 한 것일까? 그 의식의 진원지는 과연 무엇일까?
이경호는 몸 전체가 예술가다. 오로지 예술만을 생각하고 예술을 위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예술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다음은 그의 회상.
“초둥학교 4학년 때 장래 희망란에 ‘예술가’라고 적었다. 어릴 때부터 죽 예술 쪽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쪽 분야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계기는 특별히 없었다. 미술로 상을 많이 받았고 잘 하는 걸 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싫어하셨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인생은 자기가 결정하는 거라는 문구를 책에서 보고 아버지께 미대를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다른 방면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고 그림 쪽으로 뭔가를 남기고 싶은 욕심이 어릴 때부터 있었다.”
그 희망대로 이경호는 커서 작가가 되었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유럽 미술의 중심지인 프랑스로 가는 일이었다. 1987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디종과 파리에서 수학했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불어를 배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소통에 지장이 많았다. 그때 언어적 소통을 대신해 준 게 바로 예술이었다. 세계적인 예술가 올랑(Orlan)과의 만남은 그의 삶에 결정적인 변수였다. 디종의 미술대학에서 사제지간(師弟之間)으로 올랑을 만난 이후, 이경호의 삶은 변화했다. 알다시피 프랑스 파리는 예술에 관한 한, 무한한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 아닌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이때부터 이경호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예술적 실험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기존의 예술 문법을 뒤엎기 위한 과격한 도전과 새로운 예술의 창조를 위한 그 나름의 몸부림이었다. 당시 이경호가 행한 여러 퍼포먼스들을 유튜브를 통해 지켜보면서 승부사로서 이경호의 그런 예술가적 기질을 강하게 느꼈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이미 이경호는 미술학교에서 온갖 예술의 실험을 했다. 1991년 작인 <Informance(Installation+performance/설치 퍼포먼스)>는 세계적인 소장가들의 이름이 적힌 전시장 바닥 위에 덮힌 2.5t의 소금을 13대의 청소기로 빨아들이는(왕두, 신흥우, 김태종 외 파리장식미술학교 동기생들 참여) 작업을 선보였는데, 청소기에는 그해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판매한 작가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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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2년 전에 이경호는 모교인 디종의 에꼴 드 보자르 교정에서 저항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눈이 내리는 밤에 3층 건물의 옥상에 연결된 철선으로 불타는 13개의 옷을 연달아 내려보내 교정 한 가운데 놓인 욕조 속으로 빠트리는 작업이었다. 이때 이경호는 허공에 늘어뜨린 자루 속에서 나와 욕조 부근에 있는 3개의 드럼통을 ‘사물놀이’의 박자에 맞춰 탕, 탕, 탕 큰 칼로 내리치는 동작을 계속하였다. 퍼포먼스가 시작될 때부터 홍신자의 신들린 듯한 웃음소리가 담긴 황병기의 ‘미궁’과 함께 30명에 달하는 친구들의 고함소리와 사물놀이의 음향을 뒤섞은 소리가 들렸다 4). 장내에는 혼돈과 소란, 관객들의 고함소리와 놀라움이 뒤섞인 어수선한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이 작업은 숫자 3이 지닌 문화적 기호 5) 로서의 의미와 13이라는, 서구에서는 불길한 의미의 숫자를 뒤섞음으로써, 기존의 가치를 전복시키려는 의도를 담고있으며, 퍼포먼스가 벌어지는 서구사회 속에서 한국의 전통음악과 실험정신이 결합된 황병기의 <미궁>을 트는 행위를 통해 주류문화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작가의 의식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Ⅳ.
2000년도에 프랑스에서 귀국한 이경호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에서의 작가적 입지를 다져 나간다. 이 무렵 이경호는 프랑스에서 습작기와 수련기를 거치는 동안 점차 전위미술에 빠져 있었다. 형식과 매체로서의 테크놀러지와 인스톨레이션, 퍼포먼스, 오브제 등이 혼합된 가운데 이루어진 전방위적 아방가르드였다. 이경호는 훗날 유학시절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유학 전과 후의 의식을 연결시켜 보기 위해 다소 길지만 여기에 인용한다.
“87년 10월 프랑스로 건너가 디종과 파리에서 수학했다.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수업이 교차하던 시기에 여러 매체를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언어소통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작업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무언의 대화를 하는 방식을 체득했다. 퍼포먼스, 비디오, 사진, 조각, 설치, 그래픽디자인, 건축, 철학, 영화 수업 등은 자연스럽게 나의 작업 표현의 수단이 되었다. 그냥 스쳐가는 어떠한 우연도 뮤즈들이 주는 영감이라 생각하고 작업의 소스로 받아들였다.”6)
귀국 후에 이경호의 작업을 관류한 주제는 돈과 예술, 돈과 종교, 돈과 정치, 돈의 순환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키워드는 ‘인생’이다. 그것도 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곧 나의 삶(인생)인 것이다. 이경호의 작업 대부분에서 주관성이 강하게 노출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역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지름길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2014년 작인 <버스 기다리는 것을 생각해 보기!>(single channel, 6분)란 영상작품은 인생유전(人生流轉)을 다룬 수작(秀作)이다. 때는 겨울, 충청도 아산의 어느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 있는 버스정류장이 무대인 이 영상작품은 버스를 기다렸다 타는 세 명의 남녀 시골 노인들의 평범한 모습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단순한 플롯과 깔끔한 영상미로 보여준다. 카메라의 초점을 화면 중앙의 버스정류장에 고정시킨 작가의 의도가 보여주는 것은 원근법적 시선이다. 서구 근대의 상징인 원근법을 통해 세계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깔린 이 남근주의적 세계관이 한국의 한 한적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장악했다고 가정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근대 이후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이농(離農) 현상과 산업화 이후의 가족해체를 의미할 수도 있고, 황량한 시골 풍경을 통해서는 이른바 대지성에 대한 회복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어느 편이 됐든지 간에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버스 정류장과 그 주변에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이다. 작품의 도입부에, 자욱한 안개 속에 가르마처럼 들판의 한 가운데에 난 길을 걸어가는 검정 코트를 입은 주인공(작가 이경호)의 모습과 안개가 걷히고 난 후 햇살이 가득한 들판에 황량하게 서 있는 버스정류장과 촌로들 등 영화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곧 인생유전, 곧 덧없음에 대한 암시가 아닌가!
인생의 덧없음을 한 장의 비닐 봉지로 암시한 작업이 2006년에 세줄갤러리에서 발표한 <어딘가에/Somewhere>란 작품7) 이다. 이 연작은 홍콩, 경주, 북경, 파리, 부르셀, 뉴욕, 하와이, 마이애미, 나오시마, 몽골 등지에서 행해졌으며, 길에서 줍거나 상점에서 구한 비닐봉지를 이용,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거나 드론으로 촬영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8)
Ⅴ.
2006년 5월 17일, 외아들 찬유가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을 통해 이경호의 시선은 자아 혹은 인생 등 내부적이며 주관적인 관점에서 환경을 비롯한 생태 등 외부적이며 객관적인 관점으로 이동해간다. 그가 “허무 덩어리에서 석유 덩어리에로”라고 스스로 칭한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는 곧 현실의 객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잘 반영된 작품이 바로 2016년 창원조각비엔날레 출품작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9) 이다.
높이가 무려 10미터에 달하는 이 작품은 녹아내리는 빙산의 모습과 그 안에 담긴, 주변의 모습을 거울처럼 담고 있는 지구의 형상을 표현한 작품으로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구 환경의 문제를 제기하는 이 작품의 출현 배경은 과연 무엇인가? 한 인터뷰 중에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대 때는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발산을 위해서 작업을 했다면 가족이 있는 지금은 인간이 미래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 고민하고 표현하는데 작가로서 조그마한 힘을 보태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화제를 돌려 ‘돈’이란 주제에 대해 생각하자면, 이경호가 돈, 즉 현대의 자본에 대해 시선을 준 작품이 바로 ‘뻥튀기’ 작업10) 이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실천에 옮긴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와의 협업으로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당시에 이경호는 협상을 위해 이탈리아로 가서 프라다를 만났고 그 자리에 아르테 포베라 운동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제르마노 첼란트가 동석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프라다 로고가 박힌 뻥튀기 봉투 제작은 이루어지지 못 했다. 그러나 그 대신 전시장 한복판에 들여놓은 뻥튀기 기계에서는 쉴 새 없이 뻥튀기 과자가 생산되었으며, 단돈 1천 원에 관객들에게 나눠주는 퍼포먼스가 이루어져 수익금은 전액 광주지역 시각장애인 단체에 기증했다.
이 뻥튀기 작업이 흰 천으로 대변되는 빙하의 문제와 결합돼 이루어진 것이 2017년의 태화강 국제설치미술제 출품작이었다. 이때 바람에 휘날리며 끊임없이 너울대는 흰 천의 모습과 맨꼭대기에서 연신 터져나오는 뻥과자는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대중은 뻥과자를 받아먹으려고 높게 설치된 작품의 주변을 즐겁게 뛰어다녔다.
Ⅵ.
“아이를 낳고 생사를 오가는 심장수술 이후엔 비닐봉지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생명체와 아이가 살아갈 미래였다. 체온이 2도만 올라도 아이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모습에서 지구온난화를 다시금 바라보게 됐다. 지구도 사람 체온과 같이 2도만 올라도 큰 문제가 생길 것이란 통찰이 생겼다. 허무 덩어리였던 비닐봉다리가 석유 덩어리로 비치기 시작했다. 21세기의 화두는 사랑이다.”
위 글은 이경호의 봉다리 <Somewhere> 시리즈 작가노트에서 퍼온 것이다. 이 노트로 미루어보건대, 작가 이경호는 아들의 출생 이후에 더욱 지구촌의 생태와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 같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 즉 주관의 문제에서 나를 둘러싼 환경, 즉 객관의 문제로 관심이 이동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를 다시 풀이하면 초기의 퍼포먼스 작업에서 기(氣)의 발산이 주축이 되었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구체적인 정보와 사실(fact)에 입각해 사태를 바라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예술을 통해 환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음을 말한다.
이경호는 ‘지구와 사람’(대표 강금실 전 장관)과 같은 공부 모임에도 나가고, 환경과 생태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하면서 지구촌 문제에 대해 천착해 들어갔다. 그리고 심각성을 깨달았다. 영국의 환경운동가인 마크 라이너스의 책 <6도의 멸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온도가 1도 오르면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의 만년빙이 사라지고, 산 아래 사람들은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리게 된다. 세계 각지의 희귀 동식물이 서서히 멸종할 것이다. 온도가 2도 오르면 그린란드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해 해안가에 있는 도시들이 물에 잠기며, 이산화탄스의 절반이 흡수되면서 석회질로 된 생물들이 죽어간다.”
책은 극한적 상태, 즉 6도에 도달했을 때 지구촌에 닥칠 징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6도 오르면 죽은 생물들의 사체에서 발생한 황화수소가 오존층을 파괴해 자외선을 크게 증가시킨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대멸종이 진행된다.”
이 예측이 맞든 틀리든 아무튼 큰 위기에 직면할 것임은 불보듯 훤하다. “산업혁명 이후 최근 150년 동안 지구의 평균 기온이 0.85도 올랐을 뿐이다. 전문가들이 보는 임계점은 2도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미루어볼 때, 이경호의 석유 덩어리, 즉 비닐 봉지 작업이 의미있게 다가오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이경호의 작업은 현재 지구촌의 위기를 인재가 불러온 참사로 보고, “인간을 위한 화석연료 위주의 산업발전이나 화력 발전을 자제, 폐쇄시키는 운동”과 맞물린다. 그리고 그러한 운동은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억제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지닌다. 이경호는 지구의 위기 때 찾아올 혼돈과 패닉상태를 우려한다. 그는 아들 찬유의 세대가 맞이할 비극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명한다.
“우리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은 무엇인가? 핵, 육류, 의료, 제약, 곡류, 무기 마피아, 다국적 기업의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욕심, 인간의 이기심과 무지로 인해 다가올 미래에 65억 이상의 인구 중 몇 %의 사람이 생존할 수 있을까?
지구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지구 생명체 모두의 것이다. 개개인의 실천가 되기 운동이 필요하고 이것이 곧 사랑의 실천이 될 것이다.” 11)
이러한 이경호의 자연과 생태에 대한 통찰은 궁극적으로 ‘돈’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위기에 닿게 된다. 이경호가 전시장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여 번쩍이는 동전들을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쓸어담는, 끊임없는 탐욕과 이기심의 상징인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발하는 설치작품 12) 에 전념한 것도 따지고 보면 지구촌의 위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주요인, 즉 돈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경호는 작가 노트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기고 있다. 다소 길지만 이 글의 결론부분으로 삼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 이기적 유전자의 인간과 프로그래밍화된 기계들의 만남. 기계적인 배아복제, A.I, 유전자 조합, 조화냐 위험이냐? 인간의 감정까지 복제될까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환경과 인간의 과학기술이 임계점, 특이점을 향해 달려간다. 어느 시대나 있었던 감추어진 흑은 부풀려진 거짓들과도 함께...그래도 인간은 기적처럼 이 상황을 극복해 나갈 것이다. 모든 상황 속에서도 중심찾기!”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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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제목은 욕조 속에 드러누워 미래의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경호 작가의 모습을 은유한 것이다.
2) 1999년, 싸롱 드 죤 크레아시옹(50주년 기념 프랑스 파리 [싸롱 죤느 뺑트르]전 ‘Espace Paul Ricard’상 수상을 말함.
3) 이경호의 전언에 의하면 당시 크리스티의 경매 실적을 참고했다고 한다
4) 1967년 8월 3일생인 이경호는 숫자 ‘3’에 의미부여를 했는데, 이 3이라는 숫자는 3원소를 비롯하여 3위일체를 뜻한다. 이 ‘3’은 이경호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5)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三足烏)와 중국 고대에 등장하는 다리가 셋 달린 청동 제기(祭器/정(鼎)) 등
6) 이경호, <차가운 미디어를 따뜻하게>, 작가노트 중에서
7) 이 작품의 원천은 유년시절 하교길에 버려진 돌이나 나뭇가지를 발로 차며 귀가한 경험들이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1988년 파리 유학시절에 가위 눌린 꿈에서 깨어난 후 다락방 창문에 걸어놓은 눈 두 개를 그려넣은 비닐 봉지다. 악귀의 힘을 빌어 공포심을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한 행위의 소산이었다.
8) 이 작품이 실내에서 이루어질 경우 여러 대의 선풍기를 틀어놓아 바람을 만든 다음, 떠도는 비닐봉지의 모습을 실물과 영상으로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9) 작가는 이 제목을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지구의 정복자> 표지인 고갱의 작품 제목에서 차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10) 이경호의 이 작업에 영감을 준 사람은 한겨울에 총신대역 입구에서 뻥튀기를 팔던 아주머니였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비로소 인생을 이해하게 됐다고 이경호는 회상한다.
11) 이경호, <ICEBERG를 위한 작가 노트 중에서 (2009)
12) 이경호 작, <대박/JACKPOT>, K-P.O.P, MOCA, Taipei, 2014
13) 이경호, 앞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