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바타유(George BATAILLE, 1897-1962)에 따르면 물질은 담론적인 범주나 체계적인 사유, 또는 시적인 치환 그 어떤 것으로도 틀을 지을 수 없으며, 이미지의 숭고화 기능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반칙을 통해 이미지의 힘을 빼앗는다. 바타유는 물질 복원을 위해 물질의 비정형 속에서 어떤 질서(이미지)를 발견하고자 했다. 사물은 흔히 형태와 재료로 구분된다. 둘의 위계 속에서 물질은 종속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비천하게 여겨진다. 그래왔다. 반면 바타유는 이 자의적 구별을 없애고 원래 하나였던 물질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주장한다. 즉 물질을 정신으로부터 형태를 빌려 입는 소극적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가 형태를 산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한 적극적인 형태로 인식하는, 이른바 ‘기저유물론’이다. 미술은 물질이자 이미지이고 궁극적으로 물질에 힘입어 가시화된다. 비물질화를 추구하는 작업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미술은 물질을 통해 이루어진다. 회화나 입체작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업이 물질을 다루고 해명하며 물질에 영혼을 불어넣는가 하면 물질 그 자체를 즉물적으로 제시한다. 물질이 형태나 색채에 종속되거나 부차적이지 않고 그 자체로 유의미하게 인식되는 것은 현대미술의 중요한 성과다. 그래서 현대미술, 특히 회화의 경우 물감 반죽의 여러 구성 요소가 지닌 ‘암시적인 힘’에 주목하여, 그림을 이루는 물질에 대한 영성적인 마력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 저간에는 형태를 해체하고 물질로 돌아가려는 충동이 놓여 있으며, 동시에 물질이 지닌 정신적인 측면을 고려하기도 한다. 우리의 수묵작업이 그러한 예이다.


장 뒤뷔페, 〈지구 파편〉, 1944, 캔버스에 유채, 131×96.5cm


서구에서 회화를 물질로 되돌리려는 최초의 시도는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85)와 장 포트리에(Jean FAUTRIER, 1898-1964) 등의 작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뒤뷔페는 미술교육을 전혀 받지 않는 자처럼 그리기를 원하여 아이의 그림을 동경하고 정신장애인의 그림을 선호했다. 의도적인 소박함과 어눌함은 기성의 그림체계를 불식하려는 제스처다. 그의 그림에서 엿보이는 의도적인 서투름은 어린아이의 그림과 닮았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어린아이의 시도는 기존의 약호를 공들여 배우려는 필연적인 서투름이라면 작가의 시도는 기존 약호의 관습과 타성을 버리려는 의도적인, 힘겨운 몸짓이다. 그는 즉흥적이고 순수한 미술이 정교한 기술로 제작된 전통이론보다 더 진실한 감정이나 시각을 드러내며 더 정직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뒤뷔페를 중심으로 1946년 지식인 그룹 ‘아르브뤼 Art Brut’가 결성되었다. 아르브뤼는 거친예술, 원생예술을 말한다. 계몽과 이성을 거부하고 어린아이, 정신장애인, 또는 비유럽 및 선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오염되지 않은 지각을 옹호하는 전후 미술 사조다. 모던의 기획에 대한 환멸, 문명의 위선에 대한 반발은 자연스레 문명의 이전, 이성의 타자를 동경한다. 뒤뷔페는 어린아이나 정신장애인의 것처럼 순수하고, 기본적이며 창작자 자신의 충동에만 이끌리는 예술을 지향했다. 비장애인의 미술과 정신장애인의 미술 사이의 구별, 추상과 재현의 구별, 미와 추 사이의 구별을 포함한 모든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두꺼운 물감을 덕지덕지 발라 만든 얼룩과 같은 작품은 일종의 지표로, 예술가의 손이 지나간 흔적 혹은 자국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안료는 시각적 환영보다는 촉각적 질감의 효과를 내고, 그 형태가 무너져 물질로 돌아갈 때 시각 대신 다른 감각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뒤뷔페의 그림은 먼저 물질성을 강조한다. 감각적으로 직접 지각되는 작품의 특성이 내용을 능가하고 이미지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급격히 좁혀버린다. 그로 인해 서구적 사고에서 가장 우선시 되던 시각 대신 가장 멀리 있던 촉각이 적극 활성화되었다. 물성을 우선시 하는 그의 그림은 1945년 이후 서구현대미술이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회화는 이제 비정형의, 불확성실성을 지닌 물질로 떠돈다. 물질에 혼을 불어넣거나 물질 스스로 자립하는 세계, 그리고 촉각의 세계가 그만큼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