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꽃
이선영(미술평론가)
[bloom-]으로 제목이 달린 작품의 출발은 꽃이지만, 그 귀결은 꽃이 아니다. 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이지만 작가는 거기에 이르거나 그 이후의 과정에 더 주목한다. 또 다른 제목인 [wave-]는 유기체의 역동적인 운동감을 나타낸다. 두 키워드를 연결하면 남주연의 작품은 꽃으로 대변되는 미의 관념이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 일어날 법한 보이지 않는 다양한 차원을 아우르는 장이다. 화가들이 꽃이라는 소재를 잘 선택하는 이유는 그 아름다움도 있지만, 꽃을 피우기 위한 노고나 허무함이 작업 과정과도 비교될 수 있어서다. 시리즈처럼 제작된 최근의 여러 작품에는 수정(受精)부터 낙화에 이르는 여러 과정이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추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식물을 넘어 인생과 우주의 생멸을 포괄한다. 그중에서 가장 열정적인 국면에 집중한다. 작가는 ‘영원할 수 없는 존재가 갖는 열정과 그 의미의 순환’, 특히 ‘생명의 열정’을 드러내고자 한다.

bloom 2404 2024, Acrylic Oil on cnavas, 116.8x91.0cm

bloom 2409 2024. Acrylic Oil on cnavas, 193.9x130.3

bloom 2413 2024, Acrylic Oil on cnavas, 112.1x145.4
[wave 2310]은 환희에 찬 열정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물질과 에너지 사이에는 빠른 호환적 움직임이 있다. ‘열정’은 생명이 단지 자기 보존이나 적응에 머물지 않는 적극적인 존재임을 말한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씨의 식물은 그저 고요하다. 하지만 땅과 하늘을 잇는 그 유기체 내부에는 끝없는 교통이 있다. 끝없이 흔들리는 존재인 생화는 조화와 달리 먼지가 쌓일 틈이 없다. 겉으로는 고요한 식물의 운동을 보기 위해서는 남다른 투시력과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정지된 대상으로부터 수많은 국면들을 끌어내고 그 속에서 극적인 움직임을 끌어내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다. 그 대상이 가장 보편적인 소재이기도 한 꽃이다 보니, 여러 차원의 접근이 가능하다. 작가가 속한 여러 미술 단체 중에서 ‘한국식물화가협회’가 있을 만큼, 꽃은 중요한 소재이다. 그에 의하면 꽃은 ‘자연의 질서를 조화롭게 이룬 존재로 인간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것의 ‘생성과 소멸되는 과정은 자연 속에서 순환하는 인간의 삶과 비유’된다. 꽃은 아름다움 뿐 아니라 추한 국면 역시 포괄한다. 굳이 꽃이 아니어도 될 만큼 남주연의 언어는 지시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작가는 침묵하고 정지된 것에서 소리와 움직임을 끌어낸다. 외형을 뚫고 내부로 들어가 그 안에서 일어남직한 사건을 포착한다. 형상은 단지 주체의 반영 상이 아니라 주/객관의 경계를 구별할 수 없는 사건이다. ‘재현이 아닌 생성’(질 들뢰즈)이다. 씨앗 안에 주름져 접혀있던 것이 자연의 섭리에 의해 때가 되면 순서대로 펼쳐지고 다시 때가 되면 접힌다. 미시적 과정에서는 동물의 배(胚)도 씨앗과 마찬가지다. 생로병사는 생명의 운명이지만, 그 과정은 재현이라는 정지된 방식으로는 표현될 수 없다. 작가는 꽃이 피고지는 속도를 가속화하여 붓질로 번역한다. 사물의 외형이란 과정의 한 순간을 물화시킨 결과일 따름이다.

bloom 2414 2024, Acrylic Oil on cnavas, 112.1x145.5

D_bloom 2419 2024, Acrylic Oil on cnavas, 53.0x45.0

D_bloom 2420 2024, Acrylic Oil on cnavas, 53.0x45.0

wave 2318, 2023, Oil & Acrylic on canvas, 130.3x97.0cm
과정은 고정된 경계를 유동적인 흐름으로 만든다. 살아있는 것은 지속적으로 유동한다. 작품 [bloom 2404]에서 매끄러운 바탕 면 위로 물감을 듬뿍 찍은 붓의 궤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형상은 미세한 관처럼 보인다. 잎과 꽃 등에 미세하게 펼쳐진 망은 식물의 생존에 필요한 양분과 수분의 통로다. 남주연의 주요 소재인 꽃은 재현되지도 않고, 현대미술의 주요 문법이 된 자기지시적 붓질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작가는 꽃이 피는 과정과 물감의 흐름을 중첩시킨다. 뿌리를 땅에 고정시키고 빛을 향해 서 있는 식물의 기본적인 구조상, 상하의 움직임이 활성화되어 있다. 꽃 하나에 집중된 형상의 경우에는 중심과 주변 간의 운동이 발견된다. 세상의 힘을 자신에게 끌어들이고 자신의 산물을 되돌려주는 무한한 상호작용이다. 흐르는 선과 리드미컬한 동심원 구조의 공존은 ‘모든 물질은 파동과 입자를 가진다’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염두에 둔 것이다.
화폭을 채우는 붉고 푸른 계열의 색은 꽃과 잎의 관계를 떠올리지만, 그것들은 서로 그 흐름을 뒤섞는 중이다. 폭발하듯 생명의 과정을 전개하고 있는 주요 형태 사이사이에 율동감있게 배치된 동심원 구조들은 꽃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꽃의 결과이자 시작인 열매나 씨앗, 홀씨 같은 형태도 떠올린다. 움직이지 않는 매체인 회화는 그 내부에 발생과 성장, 소멸의 여러 단계를 배열하여 잠재적인 움직임을 부여한다. 동심원들은 어두운 배경과 관련하여 별도 연상시킨다. 별의 주기는 생물과 비교도 안될만큼 길지만, 그 또한 생물처럼 탄생하고 성장하고 소멸한다. 식물의 여러 단계, 또는 미소한 생명체인 식물을 우주적인 경관으로 고양시킨다. 세상의 모든 꽃들은 조용히 피고 졌겠지만, 작가는 그것에 환희에 가득한 음향을 부여한다. 물론 회화 또한 침묵하는 매체이기에 소리는 은유적이다. 폭죽처럼 터지는 형태와 소리의 공감각적 연결망이다.

남주연 wave 2301, 2023, Oil & Acrylic on canvas, 145.5x89.4cm

남주연 wave 2305, 2023, Oil & Acrylic on canvas, 72.7x90.0cm

남주연 wave 2306, 2023, Oil & Acrylic on canvas, 72.7x90.0cm

남주연 wave 2310 53.0x72.7cm Oil & Acrylic on canvas 2023
꽃이든 그림이든, 그것들은 실제로 움직이지도 않고 들리지 않기에 더 과장된다. 작품 [bloom 2409]에서 밝게 표현된 화면 상단은 빛을 향한 식물의 격렬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마치 용암과도 같이 들끓는다. 그저 넘치는 생명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양상은 동물과는 다른 식물의 고정성, 고착 등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킨다. 자유롭지만 의미를 무한정 열어놓지 않은 제목은 거의 추상적인 작품에 실재감을 부여한다. 자연에 매료된 작가는 굳이 자연을 괄호치지 않는다. 조형 언어는 지시 대상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자율성이라는 환상과 달리, 대상과 언어가 서로에게 의지할 때 양자는 더욱 풍부해진다. 작품 [bloom 2413]은 수생식물처럼 흐름이 더욱 강조되어 있다. 유기체는 자신의 항상성을 위해 내부에 자신이 기원한 수생의 환경을 보존한다. 가령 모체의 양수는 바다의 환경과 유사하다. 작가는 ‘바다의 쉼 없는 모습을 통해 인간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한다.
특히 ‘물이 모인 바다는 율동적’인데, ‘바다는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꽃이나 바다는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질베르 뒤랑)에서 여성적인 상징으로 여겨진다. 물론 남주연의 작품에서 여성은 반쪽의 진실이 아니라 통합적이다. ‘여성’은 모든 것을 이항 대립으로 나누고, 그 한편을 식민화하지 않는 경향을 말한다. 그것을 다루는 작가의 언어는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현실적 진실]에서 말한 ‘항상 뭐라 결정지을 수 없는 욕망, 다시 말해 불가능에까지 동요하는 언어’인 ‘여성의 언어’이다. 작품 [wave 2318]에서는 꽃 안쪽에서 일어나는 내밀한 운동감을 보여준다. ‘wave’라는 키워드는 운동을 강조한다. 작가는 ‘움직여야 살아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습으로 서 있고 앉아 있고 누워 있다. 춤추고 있고 노래 부르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아름답기 위해 노력한다....나의 움직임으로 내 환경이 만들어지고 공기와 빛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외부가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람이든 물결이든 흐름을 타는 식물은 그렇게 자신의 향기와 포자를 널리 퍼트리며 세상과 소통하며 순환하는 생을 이어간다. 작품 [wave 2305]가 보여주듯, 이동할 수 없는 식물은 제자리에서 이동한다.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강렬한 폭발력이다. 작품 [wave 2306]에서는 속도감 있는 붓질과 생명의 운동성을 교차시킨다. 운동에 바탕을 둔 남주연의 작품은 다음 생을 기약하는 죽음 또한 포함한다. 바탕과 구별이 되는 유기체적 형태는 사라지고 물보라같은 움직임이 화폭을 가득 채우는 작품 [wave 2301]은 개체의 정체성과 항상성을 유지해 주는 외곽선의 해체를 보여준다. 작품 [D_bloom 2419]은 자신이 기원했던 곳으로 흩어진다. 캔버스의 바탕 면이 드러난 작품은 바탕의 색감 때문에 흙을 연상시킨다. 바탕은 와해 된 형태의 흔적을 흡수하며, 작품 [D_bloom 2420]에서는 화면에 노란 꽃물이 든 것 같은 형상만을 남긴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4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