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日常)과 이상(理想)

 

이선영(미술평론가)

  


학생들은 가뜩이나 무거운 가방에 인형 등 장식물까지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흐들흐들해진 애착인형 들고 다니는 이도 종종 본다. 기능주의를 넘어서는 그것은 병적 징후라기보다는 심리적 만족. 자신의 수호신이자 분신같은 역할을 하는 경우다. 일상대소사 또한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듯하지만, 생로병사라는 한계 속 인간에게는 위태위태한 길이다. 자연의 변덕에 따른 위험이 많았던 전통 시대에 길운(吉運)을 바라는 것은 필연이었다. 현대에 ‘위험사회’(울리히 벡)라는 사회학의 용어가 정착된 것처럼, 문명화된 세계에서는 또 다른 위험이 상존한다. 인류가 촉발시킨 기후 위기를 보면, 자연적 위험조차 사라진 게 아니다. 수로요의 김소연 작업실에서 무려 4.5m 높이의 십장생도를 구경했다. 십장생의 소재를 캐릭터로 만드는 등, 전통의 현대화에 고심하는 작가는 세월을 머금은 느낌의 천에다 십장생도를 재현했고, 종이나 캔버스가 아닌 마천은 어딘가에 걸쳐도 연극적 무대같은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그렸던 그림으로부터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들의 도예 버전으로 잔칫상을 만들었다. 




전시전경









파티 테이블처럼 여기저기 배치된 음식처럼 전시를 연출해서,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감상보다는 무대 안으로 관객을 들여보낸다. 그림이라는 형식 또한 만들어진 작은 입체물을 하나하나 담아낸 상자같이 제작하여 열을 맞춰서 벽에 설치했고, 원래 작가의 화풍이 담긴 그림도 소품 위주로 메인 테이블 뒤에 배치했다. 이전 그림의 환상성에 수로요에서 작업한 흙 특유의 따스함이 더해졌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참고한 모델은 젤리다. 젤리나 초콜렛 류는 성형이 자유로와서 색과 형태가 예쁜데, 작가는 이를 도자로 변주한 것이다. 밀가루든 흙이든 구우면 성질이 변한다. 테이블보 위에 한 상 차려진 것들은 그림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이다. 소라빵 위의 젤리, 의자 모양의 접시에 한가득 담은 젤리, 줄줄이 엮어 걸어 놓은 젤리 등, 작은 젤리 형태는 구조적 단위가 되어 여러 방식으로 조합된다. 작은 형태들이 과자처럼 쌓여 있거나 주렁주렁 걸려있어 공간 전체에서 단내가 나는 듯하다. 이전에 호텔에서 한 전시에는 십장생 캐릭터를 자판기에 비치하기도 했다. 전통적 상징의 코드화는 작품의 대중성을 강화한다. 


작가는 십장생도에 인간이 없는 이유로, 인간은 관람자로 거기에 속해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그가 선택한 십장생도라는 모델은 예술가 주체보다는 향유자에게 방점이 찍힌 어법을 위한 것이다. 흙의 질감은 구운 빵같은 느낌이 있는데, 작가는 이 전시에서 그러한 속성을 잘 활용해서 진짜 같은 구름빵과 구름파이를 만들었다. 밀가루를 반죽하는 사람도 성형 욕구를 가진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정교하게 꾸며진 케잌이나 아이들이 송편을 빚을 때 하는 것 같은 입에 넣고 싶은 작품들이다. ‘먹방’이라는 단어를 세계화시킨 K-문화에서 극락은 맛있는 음식에 있을 수 있다. 잘 차려진 잔칫상에서 우리는 물질적, 육적으로 체화된 유토피아를 본다. 하지만 실제처럼 연출된 그것들을 누군가 입에 넣는다면 이빨이 부러질 것이다. 그려진 빵을 먹을 수는 없다. 김소연의 작품에는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의 속성이 있다. 하지만 작가는 ‘멀리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2023년 개인전 부제는 [paradise,here]이었다. 일상과 이상의 조화이다. 














행복했던 기억, 또는 그에 대한 기대는 그렇지 않은 일상을 견디게 해줄 수 있다. 그것이 현실에 대한 허구의 힘이며, 허구의 현실성이다. 날것의 현실을 완화시켜주는 허구적 요소는 필수다. 이전 시대에는 신화나 종교가 해왔던 역할이다. 현실에서 짧게 성취될 수 밖에 없는 이상은 예술로 자리를 바꿔서 그 역할을 수행하려 한다. 작가의 주요 소재인 십장생도는 그 안에 의인화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민초들의 삶과 밀접했던 민속문화와 현대의 대중문화를 연결시키는 매개로 적당하다. 무병장수로 대변되는 십장생도의 주제는 어느 시대고 사람들은 안전과 행복을 바란다는 보편적 욕망에 의해 되살아난다. 작가는 그동안의 작업에서 여행지, 놀이동산 등, 그자체가 행복의 무대가 될 수 있는 장소들을 선호했다. 현대의 대중문화는 하나의 원천도 여러 형식으로 상품화하는데, 김소연의 경우 그림의 소재가 도자예술로까지 확장된 경우다. 하지만 작가는 대중적 염원의 이면도 바라본다. 십장생의 하나인 사슴 캐릭터를 흙으로 빚어 서서히 물에 녹였던 이전 작업처럼, 결국 모든것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출전; 2024년 수로요 도자 레지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