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 현실에서 뽑아낸 현실적 환상
이선영(미술평론가)
몇 년 전 가창 창작 스튜디오에서의 만남도 그랬지만, 김상덕은 쉴 새 없이 드로잉을 한다.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딴 짓을 한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을 만큼 그려댄다. 남는 시간에 남는 여백에 무엇인가 계속 끄적거리는 사람은 봤어도, 대화하면서 회의하면서 그렇게 하는 이는 드물다. 이런 행위는 그로 하여금 현실의 무게를 감소시켜주며, 시간을 절약한다는 기능적 측면도 있다. 그렇게 그린 것들이 작업실 한켠에 죽 붙어있다. 그것만 보면 그는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현실의 자락을 물고 늘어지는 사실주의자다. 가령 그는 시장의 어떤 할머니가 든 노랑색 시장바구니를 자세히 그려 놓는다. 큰 의미 없는 대상이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을 찔러왔던 부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기 위해서 준비물은 물론 순발력은 기본이다. 드로잉을 대신하는 편한 매체가 사진인데, 그는 반드시 드로잉으로 해놔야 자기식으로 현실이 해석되어 제대로 저장됨을 느낀다. 하지만 본(?) 작품은 전혀 다르다. 김상덕의 작품은 환상적 현실에서 뽑아낸 현실적 환상이다.

전시전경(이하 모든 사진 출전은 대구예술발전소에 있음)

사랑한다, 짝퉁세계_Acrylic, Oil Stick on Canvas_260.6x971.7cm_2024
드로잉은 보이지 않는 통로를 통과 하면서 극적으로 변화한다. 환상적 작품은 대개 환상이 환상을 낳는 식의 무아경이지만, 그의 환상은 현실의 기술(記述)에 바탕한다. 현실과 환상의 긴밀한 관계만이 날리지 않고 날 수 있는 것이다. 날리는 것은 수동적이고 나는 것은 능동적이지만, 김상덕의 경우 서사의 시점과 종점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 중간쯤 된다. 꿈과 현실의 관계와 유사하다. 꿈은 아무리 환상적이어도 그 사람의 경험과 기억, 생리적, 물리적 조건과 밀접하다. 한 화면에 이질적인 형상들이 정신없이 배열된 그의 작품은 꿈처럼 강렬한 인상만 남기고 세부 내용은 곧 잊혀진다. 무엇을 그린 것이며, 어떤 내용이냐고 묻는 것은 정확한 해몽을 바라는 것만큼이나 무리한 부탁이다. 그의 이전 작업은 재미있는 캐릭터를 창안하고 여러 상황을 재연하는 식이었지만, 이내 흥미를 잃었다. 풍경이나 인물, 정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만 재현은 아니다. 정해놓은 코드나 개념을 재현하는 것도 재현주의이며, 지루한 노동이다. 하지만 추상이라는 해결책은 ‘너무 많이 없앤 것’이라 거부한다.
사회는 재현적 활동에 대해서만 지위와 댓가를 줌으로서 자유로운 예술을 억압하거나 관리한다. 어디를 잘라도 그림이 되는 프린트 테이프같은 그의 작품에서 모서리를 끼고 하는 설치는 무엇인가 끝없이 생멸하는 역동적 화면에서 블랙홀, 또는 화이트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늘은 푸른색인데 땅색은 안보인다. 대지에 굳건히 뿌리내려야 할 식물은 그냥 꽂아놓은 듯하다. 대지 위에서 흘러가야 할 물은 파란 관을 통해서 흐른다. 그래도 흘러간다는 것이 중요하다. 질 들뢰즈가 주장하듯, 정신분열증적인 상황이 해방적이기 위해서는 막힘없는 흐름, 즉 탈주가 중요하다. 실제감 있는 인간보다 도형으로 그려진 인간의 움직임이 더 활발하다. 빠른 움직임, 또는 국면 전환, 또는 변모를 위해 모든 것은 기표가 되었다. 휴머니즘에서 말하는 인간은 너무 무겁다. 자세히 묘사되지 않은 인형들은 변형된 인간과 같은 급이다. 지시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기표들은 이합집산하면서 순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인과 관계 없이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원근법을 무시하지만 원근감은 있다.

사랑한다, 짝퉁세계_Acrylic, Oil Stick on Canvas_260.6x971.7cm_2024(부분)

건전한 사행문화 정착_Acrylic, Oil Stick on Canvas_ 130.3X193.9cm_2024

보드랍게 다뤄줭~_Acrylic, Oil Stick on Canvas_ 193.3X360.6cm_2024
둥근 얼굴에 작은 광대같은 고깔모자, 나비 넥타이에 비닐 거적같은 상의, 모델이 되는 종도 감정의 싱태도 알 수 없는 얼굴은 기괴하다. 세 가닥으로 내려오는 하지 부분은 나름대로 안정적이어서 뭔지 모를 일로 부산하게 움직이는 화면에서 중심을 잡는다. 작품 [건전한 사행문화 정착]에서 귀여움과 불쾌함 사이에 있는 인물의 중요 부위에서 발산되는 에너지는 전체적으로 들떠 있는 화면과 어울린다. 푸른 하늘에 떠있는 구름마저도 분열적이다. ‘건전한’과 ‘사행문화’라는 반대의 어휘가 한데 결합되어 있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많은 제목들이 그렇다. 리차드 로티는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에서 현대를 특징짓는 키워드로 아이러니를 꼽은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아이러니스트는 진정한 본질이 있다고 믿지 않으며 자신의 뿌리 없음을 상기한다. 로티에 의하면 아이러니스트의 방법은 추론이 아니라, 재서술이다. 재서술이란 논증적인 절차나 주관과 객관을 통일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단순히 한 용어에서 다른 용어로 매끄럽고도 재빠르게 옮겨감으로서 놀라운 형태 전환을 산출한다.
재-재서술을 제외하곤 재서술에 답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작품 [보드랍게 다뤄줭~]에서 속도감 있는 필치에 실린 토끼 닮은 캐릭터들은 여기저기로 뛴다. 가장 환상적인 동물로 알려진 공룡도 빠지지 않는다. 작품 [사랑스런 돼지고기들아 보물찾기 하자]에서 속옷만 입은 인물들은 돼지 정도가 아니라 돼지고기로 호명되었다. 인간의 전형적 표식인 직립하고 있지만, 얼굴은 가면을 쓴 듯 변형돼 있다. 가려진 얼굴은 보물찾기라는 기획이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어느 색깔도 지지 않으려는 경쟁으로 화면은 늘 생경하다. 다 칠해지지 않은 배경은 여백같은, 또는 스스로 만든 기표가 이합집산하는 형식과 관련해서 원자론자들이 생각했던 빈공간같은 역할을 한다. 여백이나 빈공간이 없이 자유로운 생성이나 변형, 탈주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형태를 잡고 색을 칠하고 나서도 그 위로 낙서처럼 자유롭게 그은 선들은 물질과 에너지의 호환적 관계를 떠올린다.

사랑스런 돼지고기들아 보물찾기 하자_acrylic, oil stick on canvas_90.6X130cm_2024

신뢰할 수 없는 자들 간의 신뢰_Acrylic, Oil Stick on Canvas_ 130.3X193.9cm_2024
캔버스에 아크릴로 칠하고 오일 스틱으로 한 번 더 드로잉하는 작품은 알록달록한 가운데에서도 전반적으로 따스한 색감은 분자적 운동을 더 활발하게 한다. 김상덕의 작품은 활기차면서도 신비롭다는 점에서도 역설적이다. 작품 [사랑한다, 짝퉁세계]는 기표들이 쇄도하는 정신분열증적인 세계는 ‘짝퉁세계’임이 드러나며, 작가는 그러한 세계를 비난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랑한다. 1990년대 텔레토피를 보고 자란 세대인 그는 세트장같이 가짜 느낌 좋아한다. 어른의 동화로 각색된 세트장은 황량한 미궁같은 세계다.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두 화면의 높이는 맞지 않는다. 정합적으로 퍼즐이 맞춰지면 재미가 없어서다. 작품 [신뢰할 수 없는 자들 간의 신뢰]의 역설 어법으로 만든 제목은 현실의 지배적 우세종인 사회를 풍자한다. 고깔 모자를 쓴 이들은 삐에로처럼 언제라도 그 역할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많이 쓰는 고깔모자는 한 형태로 고정되는 캐릭터를 벗어나면서도 가족유사성같은 관계를 가진다.
출전 ; 대구예술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