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기도 마석에 있는 모란미술관에서 유병훈 개인전 《숲. 바람-默(묵)》(11.1-12.29)이 열리고 있다. 1층과 지하 전시실 전체를 꽉 채운 유병훈의 작품은 독자적인 세계를 살펴보기에 손색이 없다. 2015년에 LA아트쇼에서 백아트갤러리 주관 《단색화 4인의 궤적》 전시를 기획한 나로선 참 반가운 전시다. 당시 이승조, 안영일, 김형대와 함께 유병훈을 초대하여 이들의 작품세계를 해외에 알렸는데, 그 무렵의 단색화 열풍이 유독 유병훈과 김형대 작가를 지나쳤던 까닭이다. 유병훈의 작업이야말로 촉각성, 반복성, 정신성이라는 한국 단색화의 3대 요소를 다 갖추었는데, 왜 광풍과도 같았던 단색화 조명의 열기에서 벗어났는지 모르겠다. 유병훈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접촉의 대명사격인 손가락은 촉감으로 곤충의 더듬이처럼 낯선 세계를 탐색할 때 사물의 질감을 느끼는 유용한 도구이다. 예컨대 천을 엄지와 검지로 맞잡아 살살 문지르면서 보드라움의 정도를 파악할 만큼 촉각은 시각과 미각 다음으로 예민한 인간의 감각이다.
유병훈이 <숲. 바람-默(묵)>이란 일관된 명제로 평면작업을 펼쳐온 지 어느덧 40여 년에 이른다. 작업의 항상성이나 견고성 면에서도 이만한 작가가 드물다. 자연을 대상으로 화폭 위에서 벌어지는 색의 향연은 그림을 그릴 때 작가와 세계 사이의 호흡의 결과이다. 긴 호흡과 짧은 호흡이 있는 것처럼, 자연을 보면서 받은 감동과 영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가의 내면에서 숙성돼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색은 자연에서 받은 감응을 캔버스에 옮기는 매개물이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작가의 태도에 달렸다. 유병훈의 경우에 전달의 매개체는 붓이 아니라 손가락이란 사실이 다르다.

<숲. 바람 - 默(묵)>,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62×112cm
서양 미니멀 회화가 원근법에 따라 추동된 선형적 시각주의의 끝물인 반면, 한국의 단색화는 대지성이 강조되는 촉각주의의 발호이다. 한때 그 기세가 그토록 강성했던 것은 모처럼 맞은 호기였던 까닭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단색화는 현재 논의되는 것처럼 대안을 모색해야 할 만큼 퇴색한 것일까? 아니다. 전투에서 포탄이 끊임없이 공급돼야 전쟁에서 승리하듯, 유병훈이나 김형대와 같은 원로작가, 그리고 전선을 재정비하는 후기 단색화 작가 중에 에이스를 전진배치해야 우세한 국면으로 이끌 수 있다. 문화는 소리없는 전쟁이다. 특히 내부전이 아닌 국제전일 경우 총성은 들리지 않아도 졌을 때, 심리적 열패감이 크다. 요즘 한창 매스컴을 달구는 K 아트나 한류의 열풍은 세계의 기운이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을 중심으로 일고 있음을 말해준다. 굳이 주역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주의 운행이 영원히 한쪽에 치우쳐 계속 가지는 않을 터, 모처럼 맞은 이 절호의 호기를 그대로 흘려보낼 것인가?
유병훈은 자연을 노래한다. 꾸준히 숲을 관찰하고 대지를 호흡하면서 그들로부터 받은 영감과 숨결을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록하되 붓이 아니라 손끝에 물감을 묻혀 색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으로 변주시킨 다양한 사물의 음성을 격조있게 화폭에 옮긴다. 그의 작품에서 유독 맡아지는 화풍의 특징은 음악의 율조 내지는 화음에 비견된다. 가히 색의 음악이랄 수 있다. 또, 다양한 사람이 모여 크고 작은 무리를 구성하는 사회와도 비견된다. 단색으로 이루어진 그의 화면은 얼핏 단색이지,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색점들이 서로 얼싸안고 몸을 부딪히면서 호흡하고 빗나가고 때로는 상대편을 치는 사회의 다양한 양태의 유비(Analogie)로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과 사회의 유비로서 유병훈의 단색 추상화는 궁극적으로 작가에게 있어서 작업이 뭔가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단색화 작가이면서도 단색화 열풍의 외곽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낸 그를 떠올리면, 그 침묵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기에 더욱 치열한 그의 작가정신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