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입규, 어떻게 가상현실에서 탈주할 것인가 


고충환 | 미술평론가

이제는 고전이 됐지만, 상황주의자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 소사이어티>에서 소설보다 더 극적인 현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말한다. 그가 보기에 세상은 스크린이고, 우리 모두 TV 쇼와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현실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미 그런, 가상현실을 살고 있다고도 했다. 여기서 시뮬라시옹은 가상현실을 매개로 현실감을 익힌다, 현실을 연습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그 자체 현실과 가상현실이 전도된 현실을 암시한다. 크로넨버그는 <비디오드롬>에서 성적 판타지를 쫓는 주인공이 마침내 욕망이 만든 판타지에 잡아 먹히는, 그렇게 현실을 집어삼키는 환상을 말한다. 그리고 <트루먼 쇼>에서는 가상현실(실제로는 연출된 현실)이 가상현실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주인공이 나온다. 

그렇게 우리 모두, 지금, 사이보그, 사이버 섹스, 사이버네틱스, 사이버 컬처와 같은, 사이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손안에 탑재된 소셜 네트워크가 인간관계를 대체한 시대를 살고 있다.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익명의 어떤 사람과 더 끈끈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한 번도 자기 방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세상의 모든 타자와 소통하는 히키코모리라고 하는, 그런, 역설적인, 기묘한, 이상한 세상을 우리 모두 살고 있다. 누가 잠정적인 살인자인지 정신병자인지 성범죄자인지도 모르는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고, 누가 죽었는지, 죽으면서 어떤 비명을 질렀는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관심도 없는 전자 게임이 전쟁을 대신하는, 그런, 극 초현실 시대를 살고 있다. 너무 많은, 너무 쉽게 취할 수 있는 정보가 역설적으로 종합적 인식능력을 파괴하는, 그렇게 오로지 파편화된 인식이, 파편화된 인식을 편집하고 재구성한 짜깁기된 인식이 보편화된, 그런, 불구의 시대를 살고 있다. 

작가 장입규의 설치작업은 바로 이런,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 감정, 그러므로 어쩌면 불구의 시대 감정과 마주하게 한 것이어서 그 의미가 크다. 이를테면 여기에 시계가 있다. 엄밀하게는 시계들이 있다. 시침이 서로 부닥치는, 그렇게 그 너머로 건너가지 못하고 막힌, 틱틱거리는 소리를 내는 시계들을 설치한 작업이다. 아마도 배터리가 닳지 않는 한, 플러그를 뽑지 않는 한 시계들은 고집스럽게 틱틱거릴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처럼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 시계를 왜 만들었을까. 서사적인 연속성이 없이 마치 널뛰기라도 하듯 경험되어지는 온라인상의 경험을 모티브로 현실과는 다르게 비선형적으로 작동하는 디지털 가상세계의 시간성을 표현한 작업이라고 했다. 아무 데서나 시작하고 아무런 곳에서나 끝내도 무방한 하이퍼텍스트를, 논리적 개연성 없이 마구 옮겨 다니면서 연결되는 하이퍼링크를 의미할 것이다. 하이퍼텍스트의 비선형적 시간성을, 하이퍼링크의 불연속적 공간 이동을 의미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질 들뢰즈는 정신분열증적 분석을 들어 이처럼 논리적 개연성이 없는 방식을 논리적 개연성에 맞춘 종래 제도적 관성을 돌파하는 긍정적인 실천 논리로 제안한 적이 있다. 그라면 아마도 이런, 불구처럼 보이고 비정상처럼 보이는 시계로부터 가다가 멈추어도 좋고, 뒤로 가도 좋고, 건너뛰어도 좋을, 그렇게 다르게 흐르는 시간, 다른 방식으로 논리적 개연성을 얻는 시간의 가능성을, 기왕의 논리가 재정의되는 실천적 가능성을 보아냈을 수도 있겠다. 

시계를 소재로 한 작업에서 비선형적 시간 개념을 다루고 있다면, 또 다른 작업에서는 불연속적 공간 경험을 다룬다. 가구와 가전, 집기와 생활용품이 일상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 거실이나 침실과 같은 방을 마치 자를 대고 칼로 자른 듯 토막 낸 조각들이 부유하는 섬처럼 전시 공간 여기저기에 던져져 있다. 조각난 구조물 밑에는 바퀴를 달아 자유자재로 이동 설치할 수 있는 가변설치작업이다. 일전에 오노 요코가 단절된 세계, 소통이 부재 하는 세계를 풍자하기 위해 절반의 방을 제안한 적은 있지만, 작가가 제안하고 있는 조각난 방은 왜일까. 온라인 속에 부유하는 편집된 이미지를 모티브로 디지털 가상세계의 시공간 개념을 물리적인 현실 공간으로 끌어낸, 디지털 이미지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시각화한 작업이라고 했다. 블루 모니터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는 가상현실을 현실 위로 소환한, 그렇게 낯설게 하기를 시도해본 작업일 것이다. 현실 위로 소환된 가상현실이 사람들의 현실 인식 또한 바꿔놓고 있음을 주지하는 작업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