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례식장에 놓인 〈샘(Fountain)〉(1917-2024)의 영정 사진 ⓒ 2024 촬영
나는 〈샘(Fountain)〉을 죽였다. 2023년 3월 23일에 벌어진 일이다. 1년 뒤인 2024년 12월 11일 오후 4시, 많은 한국미술계 인사가 모인 가운데 경기도 평촌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2기적팩토리에서 〈샘〉의 장례를 치뤘다. 미술사가 양은희 선생이 작성한 〈샘〉의 약력을 장례식의 사회를 맡은 김정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실장이 대독했다.
“1917년 4월 뉴욕 미드타운의 마르셀 뒤샹 작업실에서 출생. 올해 107세. 당시 대량생산된 남성용 변기에 뒤샹이 ‘R.Mutt 1917’이라고 사인을 하며 탄생. 출생 즉시 뉴욕의 《독립미술가협회 창립전》에 참여하며 논란을 야기. 전시 준비 중 좌대에 놓인 모습에 반한 미국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사진을 찍어 탄생을 축하했고 그 사진은 이후 사라진 샘의 실존을 증명하는 사진이 됨…(중략)…이후 샘은 전시되지 못하고 버려짐. 그러나 샘을 사랑한 뒤샹은 미니어처를 제작해서 그의 〈여행용 가방〉 시리즈에 보관하기 시작. 2차 세계대전 이후 샘의 명성이 높아지자 뒤샹은 1950년 샘을 재탄생시킴. 뒤샹은 1968년 사망할 때까지 샘의 쌍둥이 16개를 만들었고 현재 전 세계 미술관에서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의 아이콘으로 인기리에 전시 중…(중략)…2006년 파리에서 작가 피에르 피노첼리가 망치로 전시중인 샘을 구타해 8조각이 남. 2023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윤진섭의 자택에서 사망, 이후 1년 후인 2024년 12월 11일 경기도 평촌에 있는 2기적팩토리에서 다수의 미술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샘의 사망을 공식화하고 장례를 퍼포먼스 형식으로 치름.”
〈샘〉은 남성용 소변기다. 1917년, 현대미술의 비조(鼻祖)로 추앙받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 이 기성품(ready-made) 미학의 대명사는 이후 숱한 논란을 야기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마침내 2023년 살해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죽었다. 향년 107세, 호상이었다. “후사를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선(禪)에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뜻이다. 2019년, 중국의 한 음식점에서 소 갈비찜을 먹고 잘 생긴 갈비뼈를 하나 챙겨 왔는데, 어깨가 뻐근할 때 툭툭 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어느날, 나는 반들반들 윤이 나는 상아색의 갈비뼈에 붓으로 다음과 같이 썼다. 살불살두 살두살왕(殺佛殺頭 殺頭殺王).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뒤샹(頭上. 뒤샹의 이두식 표기)을 만나면 뒤샹을 죽여라. 뒤샹을 만나면 뒤샹을 죽이고 왕치를 만나면 왕치를 죽여라.” 왕치(王治)는 2009년 이후 어느덧 100여 개에 달한 나의 예명 가운데 가장 첫 번 째 것이다. 초등학교 때 〈십오야(十五夜)〉라는 KBS 라디오의 연속방송극이 인기가 있었는데, 사극인 이 드라마에 나오는 산적 두목 이름이 바로 왕치였다. “으흐흐, 나 왕치!”하고 가슴을 치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이 연속극은 임권택 감독이 1969년에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쳤다. 꼬맹이 점원이 “오징어! 땅콩!”을 사라고 외치던 시골 극장 시절의 이야기다.
옥과미술관장을 지낸 최준호 박사의 『추사, 명호처럼 살다』라는 책에 보면 추사 김정희 선생이 평생 사용한 호가 무려 343개에 달한다고 한다. 놀라운 숫자다. 서양에는 그런 전통이 없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아무리 천재라도 이름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하나다. 예외가 있다면 마르셀 뒤샹인데, 로즈 셀라비(Rrose SÉLAVY)가 바로 그것이다. 100여 개에 달하는 내 예명의 뿌리는 추사 김정희 선생에게 가 닿는데, 이는 추사를 전위(Avant-garde)로 해석한 나의 관점에서 비롯된다. 마르셀 뒤샹은 1920년대 초, 에 모자를 쓴 여자로 분장하고 이름을 로즈 셀라비로 지었다. 마침내 뒤샹의 얼터 에고(분신)가 탄생한 것이다. 94년 뒤인 2017년에 KIAF가 열리는 코엑스에서 나는 여자로 분장하고 이름을 ‘정마담(Madame JUNG)’으로 지었다. 수많은 관객으로 붐비는 전시장을 활보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쾌감에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 했다.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