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언 웨어링, 〈나는 절망적이다〉, 1992-3 ⓒ Gillian WEARING


몰락의 징후를 예감하면서도 이곳에 있는 모든 미술인은 침묵 속에 가라앉고 있다. 일련의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과 우리 일상의 근간이 흔들리는 폭력적 사태 속에서도 무감하다. 지난번 계엄의 선포와 내란의 자행으로 점철된 이 비민주적이고 폭압적인 상흔에 대해 우리는 할 말이 많아야 한다. 대들어야 하고 비판하고 따져 물어야 하며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그 많은 미술 단체나 협회, 그 어느 곳에서도 한 줄의 성명이나 선언조차 나오지 않았다. (2024년 12월 12일 기준. 자유와 민주를 바라는 시각예술인 638인 긴급 성명 13일 발표) 이미 오래전부터 이 정권의 무도함이 지속해서 자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침묵은 너무 길고도 무거운 가운데 미술인 모두는 언어를 잃었다. 미술인을 대변한다는 미협이나 그 외 여러 협회, 단체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들은 또 누구인가. 미술관이나 사립미술관협회 또는 평론가나 큐레이터 협회, 화랑협회 등의 그 모든 집단은 이 사건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그럼 우리 미술계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그토록 많은 단체나 협회, 기관과 그 구성원들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사는 이들처럼 자신의 현실에서 자행된 치명적 사건과 상처에 대해 언급조차 못하고 있다.

최악의 정권, 최악의 대통령, 최악의 집권여당으로 말미암은 엄청난 고통과 심리적 충격, 괴로움의 시간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견디고 있다. 궤변과 거짓과 속임수로 일관하는 저 무지한 정치인의 비논리적인 강변의 언어를 듣는 일은 너무나 슬프고 힘든 일이다. 해독되지 않을 뿐더러 모순투성이의 거짓말을 너무나 뻔뻔스럽게 쏟아내는 이들이 이 나라를 통치한다는 사실 자체가 난감할 뿐이다. 그 말과 음성은 우리를 타락시키고 절망시킨다. 그 결과 우리 삶은 망해가고 있다. 정치가 붕괴되고, 경제가 몰락하고 서민의 삶과 일상이 피폐해지고 곤궁해질수록 미술 역시 초라해진다. 미술의 위기는 현실의 몰락과 맞물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미술계는 오로지 미술 시장의 추이나 판매에만 관심을 갖고 자본에 철저히 종속되어 끌려다닌다. 
‘종북좌파세력을 척결하자’는 대통령의 뜬금없는 계엄 이유는 갑자기 현실의 시간을 지우고 1970년대로 되돌아간다. 유신 시대와 군사독재시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극우세력이 주술처럼 되뇌는 저 선언은 자신과 동조하지 않는 비판적인 세력을 뭉뚱그려 포괄하는 상투적인 레토릭이다. 80년대 민중예술가에게도 ‘종북좌파’라는 딱지가 붙여졌는데 이러한 우파의 폭력적 인권유린이나 정치적 프레임 씌우기는 반공이데올로기와 냉전체제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 강력하게 작동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70, 80년대의 폭압적인 독재 권력 속에서 목소리를 내던 소수 미술가의 영향이 지금은 거의 소멸된 상황 속에서 우리 미술계는 자본에의 순응과 상품경제 속에서 소비되는 물건으로서의 작품을 생산하는 시스템에 더욱 밀착되어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판매 회로에 갇힌 자폐적인 공예술로서의 작업이고 그 안에서 작가들의 주제는 인테리어 유사상품을 그럴듯한 내용을 지닌 고급미술인 것처럼 위장하는 논리로 채워져 있다. 

동시에 이 사회, 정치적 파국 속에서 도피해 치유나 위로, 위안과 같은 지극히 유약한 회로 속으로 밀려나 정작 본질적인 문제 자체를 외면하는 추이를 노정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전적으로 자기 치유술에 의지해 견디려 한다. 자기 기만적인 이 치유나 위안은 정작 현실적 난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무수한 정치적 폭거와 폭력, 대재앙과 수난을 겪어왔다. 그러나 유독 미술은 그 상흔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동시에 그 수준도 열악했다. 아니면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현학적인 제스처로 스탠스를 잡고 있다. 모종의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어 보이는, 그럴듯한 담론에 기대어 나오는 작업은 다소 공허하다. 일종의 겉멋 든 고뇌이다. 따라서 동시대 한국현대미술은 분열되어 있다. 상품경제의 거대한 회로 속에서 소비재 상품의 외양을 닮아가는 공예품과도 같은 작품으로 찢겨나가고 또는 너무 거창하고 그럴듯한 담론을 망토처럼 두르고 난해함과 진지함을 뒤섞어놓은, 알 수 없는 스펙터클로 존재한다. 이 두 흐름 모두 이곳의 현실과 무관해 보인다. 참담하고 극적인 시간이 경황없이 지나가는 이 순간 우리 미술인의 침묵과 적막은 더욱 심화되어 가고 그만큼 몰락의 징후는 깊어지고 커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