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조성묵, 〈빵의 진화〉, 2008, 폴리우레탄, 100×300×150cm
ⓒ 《멋의 맛: 조성묵》, 2015.12.1-2016.6.6 국립현대미술관
신문이나 인터넷 페이지의 한 화면에 충격적인 뉴스가 동시에 실리는 경우가 있다. 인터넷 화면은 종이 신문보다 빨리 교체되지만, 그때도 근본적으로는 양극화가 원인이 된 역설적인 사건의 조합은 흔히 발견된다. 그날 필자가 동시에 읽은 소식은 전쟁 지역에서 일어난 압사 사건과 자유와 풍요를 구가하는 사회의 실험예술 작품에 대한 것이었다. 식량을 비롯한 모든 물자가 부족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난리 통에 꽉 막혀있던 밀가루가 공급되어 오랜만에 문을 연 빵집에서 빵을 사려고 몰려든 인파에 압사한 사람들의 참담한 현실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를 맛있게 먹어치운 한 예술작품 소장자의 행위였다. 벽에 붙인 바나나는 현대미술에 관련된 책에서는 빠지지 않는 그 유명한 뒤샹의 변기의 후예다. 11월 30일자 문화일보는 한 가상화폐 사업가가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약 87억원에 낙찰받은 벽에 붙인 바나나를 떼어내 먹고 있는 퍼포먼스를 전한다. 작품가 87억원은 압사사건이 일어났던 가자지구 데이르 알-발라흐에 그날 모였던 모든 사람들의 빵값을 지불하고도 남을 것이지만, 그 지역에 며칠 사용된 무기의 가격보다는 저렴할 것이다. 대량 살상 무기의 가격은 대부분 고가의 예술작품보다 더 비싸다.
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1960- )이 2019년 선보인 이 작품의 소장자는 소더비 측으로부터 바나나와 공업용 테이프를 시중에서 구입해서 설치하는 법에 대한 안내서를 낙찰받았다. 가상화폐 사업가인 이 소장자는 이 작품을 스테이블 코인(달러화 등 기존 화폐에 고정가치로 발행되는 암호화폐)으로 지급했다고 한다. 가상화폐는 촘촘한 체계와 자동화가 가능한 고도의 자본주의에서만 가능하다. 개념미술은 아이디어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 소장자는 자기 사업의 선전을 위한 최적의 소재를 고른 셈이다. 모든 개념미술이 그런 영광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흥행에는 물신숭배가 깔려있다. 발전된 물질문명은 매뉴얼만 정해지면 쉽게 생산되기 때문에 부가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물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 상표가 소비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예술 또한 인정이 인정을 낳는 세계가 컬렉션의 동기와 배경이 된다. 물론 그러한 사실은 그리 나쁘지는 않다. 다만 자기 작품을 제대로 팔아본 적이 없는 배고픈 작가가 더 많기에 엄청난 가격대의 작품이 가능할 수 있었을 뿐, 87억원 짜리 바나나가 누군가를 해치는 것은 아니다. 미술 또한 현실 속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가상이나 개념같은 차원에 있는 추상적 가치는 얼마나 고상한 장소에서 소통 또는 유통되는가. 정치적 이념도 마찬가지다.
한편 인간이 촉발시킨 재앙인 전쟁은 배고픔과 치명적인 부상, 죽음 등 살과 피가 흐르는 구체적인 현실과 관련된다. 몇 년 사이에 그런 참혹한 소식은 너무 많았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실과 개념, 또는 추상은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을 부정하는 이는 관념론자이거나 잔인한 현실을 이용해 얻는 이익을 숨기는 사기꾼이다. 자연으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게 된 현대인에게 재앙의 상당 부분은 사회적이다. 독재정권은 소수 정파의 이익을 위해 비인간적인 경쟁과 전쟁을 촉발한다. 그들은 대다수의 위기를 먹고 사는 기생충이다. 3차 대전으로도 확대될 수 있는 길어지는 전쟁들의 피해자는 약자에 집중되어 있다. 세계화를 넘어서 이제 각국의 이해관계가 더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재의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자유와 풍요는 결코 개인적일 수 없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최고 권력자가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지킨다면서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사건이 있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대응도 이익과 관련된 정략적 판단으로 흘러가면서, 정치가들이 떠들어대는 고매한 가치와 먹는 문제의 관련이 드러났다. 자유로운 예술과 다수를 억압하는 가짜 자유주의는 차이가 있다. 현대미술도 의지하는 물신적 체계 바깥의 생명은 그 차이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