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삶과의 거리
이선영(미술평론가)
일관된 화자(話者)의 다면성
1945년 해방둥이인 황효창은 청년기에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하면서 자아를 대신하는 인형이나 광대로 이야기 해왔다. 극과 극으로 갈리는 우리 사회 분위기는 예술도 마찬가지여서, 작가가 20대를 통과했던 1970년대는 궁극적으로는 자기 옷이 아니었던 실험미술과의 관계 속에서, 뒤이은 1980년대에는 현실에 대해 직접 발언하는 ‘강성’ 작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만의 길을 모색했다. 황효창의 대표 이미지가 된 인형은 그의 분신과 다를 바 없으며, 동료 작가들과 실험의 시기를 거친 후,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야겠다고 결심한 7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진다. 인형은 현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은유적 도상이다. 실제 그의 인형은 권력의 비판자나 권력에 대한 맹목적 꼭두각시, 대자연에 뒤섞이는 원소같은 존재이자 고정된 시스템의 재현물 모두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가 선택한 도상에 내재한 모호함이기도 하고 유연함이기도 하다.

인형, 1977, 캔버스에 유채, 53x45.5cm

병 속의 인형, 1984, 캔버스에 유채, 90.9x72.7cm

만취, 2022, 캔버스에 유채, 33.4x24.2cm
아이의 장난감에서 영감을 받은 이후, 인형은 삶과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삶과의 거리를 유지했던 매개체였다. 1979년 제1회 태인 화랑 초대 개인전 이후부터 그의 대표 이미지로 간주되어온 인형은 예술이 아닌 사물, 즉 일상에 속한 물건이기에 기괴하게 다가온다. 프로이트는 [기괴함the uncanny]이란 에세이에서 자동인형(automata)의 예를 들면서, ‘겉보기에는 살아있는 것 같아도 실제로 살아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의심스러울 때 기괴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기계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상징한다. 블루스 매즐리시는 인간과 기계의 공(共)진화를 주제로 한 [네번째 불연속]에서 옛날부터 뛰어난 창조자인 인간은 자신의 쌍둥이, 즉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인형과 꼭두각시를 만듦으로서 자기의 정체성 문제에 부딪혔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자동인형이 주는 매혹과 공포는 인간이 기계적 타자를 만났을 때 보여주는 여러 태도와 관련된다.
[네번째 불연속]에 의하면 ‘자동(auto)’이란 말의 어원인 ‘autos’는 그리이스어로 ‘동일’, 불어로 ‘나 자신’이라고 말할 때의 의미라고 한다. 황효창의 인형들처럼 자동화된 인간은 인간과 어떻게 다른가, 요컨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인형은 광대와도 겹쳐지면서 인간과는 다른, 유사(類似) 인간 화자로 발언한다. 황효창의 인형 또한 인간의 자율성을 의심 해온 전통, 가령 기계적 측면이나 무의식이 강조된 인간상을 공유한다. 인간의 자율성은 자본과 노동이 대립하는 양극화 사회에서 허구적이거나 이상적인 관념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발전된 기술이 노동/자본의 여전한 대립 속에 큰 변수가 되는 시대에 그의 인형은 곧바로 21세기와도 연결된다. 인형 이전에 그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실험미술로 중요한 활동을 했던 ‘에스쁘리’를 1972년에 결성했다. 마지막 전시가 된 1974년 [제 4회 에스쁘리]전 도록에도 인형 도상 작품이 실려있다. 이후 1979년 태인화랑에서의 개인전에 인형 소재 작품 25점이 전시됐다.

눈 먼 사람들의 동네, 1985, 캔버스에 유채, 97x130.3cm

절망, 1985,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감기시대1, 1985,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1980년대는 민중미술의 시기로 평가되지만, 그 주요 그룹과는 차이를 뒀던 소그룹도 많이 활동했다. 그중에서 한강미술관은 비판적 구상미술의 흐름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황효창은 1985년 여기에서 개인전을 한다, 이 전시에서 [80년대 감기]가 발표되었으며, ‘인형, 검은 선글라스, 소주병, 마스크, 눈물, 희화화된 얼굴 표정, 누워있는 모습’(2011 강원의 미술가를 찾아서, 이우진 구술정리 참고, 이후 2011 구술록으로 약술함) 등이 특징이다. 1980년대의 대안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1986년 그림마당 민 개관전 [40대 22인] 전에 이름을 올렸고, 거기에서 열린 [반고문](1986)전에는 [물고문](1986)을 출품한다. 70년대 중반부터 그려온 인형은 그 사이에 방점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일관성 있게 그의 작품에 등장한다. 수십년 세월 동안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우연찮게 선택한 예술적 화자(話者)가 인형이나 광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형이 보다 역동적인 동작과 연결될 때는 광대가 된다. 물론 광대는 가면이나 변장을 통해 인형과 비슷해진다.
인형이나 광대는 사람과 달리 사회로부터 일정 거리감을 가지고 우화적으로 발언하는 은유적 존재다. 사회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를 더 잘 말할 수 있는 역설적 존재는 예술가의 정체성과 겹쳐진다. 소외나 물화임과 동시에 변화무쌍함이라는 반대되는 성질을 한 몸에 장착한 역설적 존재는 싸구려 장난감이나 저잣거리의 희극배우로 취급된다. 그들은 축제나 무대에서 무엇으로도 될 수 있지만, 현실에서 그들을 위한 확실한 자리는 없다. 장난스러운 거리두기, 변신의 능력은 융통성 있는 황효창에게 예술가 자신을 적절하게 대변하는 존재다. 인형과 광대는 일상이 단절되는 시기에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서 예술과 닮았다. 이러한 단절의 시기 중의 하나인 축제는 가면과 흉내내기의 연기를 끌어들인다. 장 뒤비뇨는 [축제와 문명]에서 축제를 상징적 환각이라고 규정하면서, 그것은 니체가 말한 예술의 본질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즐거운 지식]에서 ‘우리 무한히 변화하며 춤추자. 우리의 예술을 자유라고 부르고 우리의 지식을 쾌락이라고 부르자’라고 말한 바 있다.

80년대감기, 1985,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파안대소, 1985,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왕자와 제비1, 1985,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왕자와 제비 ll, 2005, 캔버스에 유채, 55x55cm
축제와 예술의 내적인 관계는 양자가 극도의 무상적 행위라는데 있다. 로제 카유와는 ‘겉으로 보기에 무상으로 얻어지는 것 같은 목적없는 궁극성의 행위가 없다면 인류는 다시 동물적인 상태로 떨어져 버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군부독재로부터 민중이 고통받는 어두운 모습부터 온 우주와 함께하는 이상세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속 화자는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시대가 변했다고들 하는데, 얼마 전 국정 농단이나 2024년 12월의 쿠데타 시도 등, 그가 70-80년대 청년 예술가로서 겪었던 문제적 시대 상황은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울림을 준다. 그의 작업실 구석에 놓여있는 낡은 인형들은 여전히 할 말이 많다. 필자는 황효창의 작품에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존재인 인형/광대를 크게 존재론적 차원, 사회적 차원, 세계 내적 차원으로 구별해서 논할 것이다. 물론 세 범주는 교차하기도 하고, 연대순도 아닌 논리적 차원의 분류이다.
인형, 혹은 광대라는 존재
1970-80년대를 관통하는 기나긴 군부독재의 시대는 현실에 대한 냉소나 저항을 낳았다. 황효창의 인형은 그 두 가지 태도를 결합한다. 민족,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외쳐지던 시대에 인형은 소극적이지만, 미술에서 미술 이외의 것들을 제거해 버리려는 모더니즘적 해결책보다는 적극적이다. 홍대 미대 64학번이었고 72년에 졸업(군복무 당시 북에서 김신조가 내려오는 바람에 군대 생활이 6개월 연장되었다고 한다)했던 그는 첨단적인 실험과 사회참여 사이에 놓여 있던 60-70년대의 학창 시절을 회고한다. ‘당시 홍대는 아카데믹하기 보다는 실험적인 스타일 그리고 강한 추상표현이 앞서던 곳이었지...’(2011, 구술록) 졸업하면서 그가 만든 단체인 ‘에스쁘리’는 조각과 회화를 같이 한 특이한 그룹으로, 창립 멤버는 노재승, 전국광, 이일호, 김명수, 김태호 등이다. 3년간 지속된 이 그룹에 대해 ‘홍대에서 흔히 말하는, 그 시대를 이끌고 있는 예술계의 흐름 같은 그런 첨단을 한거야’라고 회고한다.

벌거벗은 임금님, 1995, 캔버스에 유채, 97cmX130.3cm

벌거벗은 임금님들2, 1995, 캔버스에 아크릴, 100x100cm

봄내, 1997, 캔버스에 유채, 45.5x53cm

사랑, 2008, 캔버스에 유채, 53.0 x 45.5cm(x2)
작가의 기억에 에스쁘리 그룹은 ‘상당히 의식적이고 철학적인 작업’을 했다, 하지만 곧 ‘서양 흉내내기인 첨단’이라는 각성이 일고 그는 구체적인 삶으로 방향을 튼다. 작가가 30세 무렵 ‘그때는 애들이 꼬마들이 있을 때니까 걔들의 젖병도 있고 인형도 있고...인형을 화면에 그려놓으니까 색다른 의미가 오는 거야. 이 인형은 그림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겠다...’(2011, 구술록). 이후 황효창의 대표적인 도상인 인형이 일관되게 등장한다. 70년 중반부터 그린 인형은 79년, 81년 태인화랑에서의 개인전과 85년 한강미술관에서의 개인전으로 보다 확고해진다. 그는 에스쁘리 활동으로부터의 전환에 대해 ‘전위적인 작품을 하는 작가가 아니라, 흔히 말하는 사회참여를 하는 그런 의식의 작품을 한 거야’(2011, 구술록)라고 말한다. 인형을 화자로 삼아서 사회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가 되자 문화예술 부문의 저항운동은 더욱 활발해졌고, 이후 ‘현실과 발언’ 등, 그 부문의 ‘주류’로 평가되던 그룹과도 차이를 보였다.
그는 이에 대해 ‘나는 튀어나가서 선동하는 체질은 못됐어. 잔인함이나 극적인 것을 그대로 표현하기 보다는 조금 더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게 더 낫더라고. 현실과 발언 멤버들이나 현장의 강성주의자들 입장에서 나는 약간 비껴가는 그림을 그린다고 보는 거지. 강성 쪽 애들이 보면 이건 감상이야. 세상을 그냥 보아 넘기지는 않고 나 나름대로 세상에 대한 얘기를 하고 간거지...’(2011, 구술록) 할 말이 많았던 시대에 인형은 술독에 빠져있는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눈과 입을 가린 맹목의 상태로 간접적으로 발언한다. 인형은 연출된 상황 속에 배치되고 이는 엄혹한 시대에 발언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인형은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고 자율적이지 않고 타율적이다. 인형은 사회적이기에 앞서 존재론적인 상황을 은유한다. 인형은 인간의 비인간적 상황을 말해주는 가장 가까운 소재다. 그가 선택한 인형들은 대개 산업사회가 대량 생산한 조악한 것들이다.

복화술사, 2000, 캔버스에 유채, 45.5x45.5cm

마임이스트, 2005, 캔버스에 유채, 45.5x37.9cm

안경 쓴 피에로, 2014, 캔버스에 유채, 75x75cm
그것들은 서양 고전주의 시대의 정교한 자동인형이나 곧 인간을 추월할 것으로 믿어지는 AI 같은 포스트휴먼의 모델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 원형(80년대적인 용어로는 전형)이 되기에 충분하다. [삐에로의 꿈](2011), [나는 인형이다](2014), [인형의 노래](2023) 전처럼, 개인전 부제에서 인형이나 광대라는 개념이 직접 들어가 있기도 하다. 무감각하게 웃는 모습을 그린 작품 [인형](1977)은 유신정권 시대에 그려진 인형이다. 당시는 중고교 학생들 가슴팍에 ‘10월 유신’이라는 리본을 달고 다니게 했던 시대였다. 최근 춘천 오월리의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 오래된 인형들과 소줏병이 마치 설치작품처럼 놓여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술과 인형의 조합은 소주 병 속에 들어가 있는 인형을 그린 [병 속의 인형 ](1984)부터 인형이 빈 소주잔 곁에 누워있는 최근 작품인 [만취](2022)에 이른다. ‘술독에 빠진다’는 표현도 있듯이, 시대의 아픔을 안주도 없는 깡소주로 달래던 시절이 반영된다. 취하는 것은 자아를 벗어나 타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초라한 안주상 앞에서 눈물짓는 인형이 있는 [하늘에 구름이 있고](1985)부터 벌거벗은 인형 앞의 소주잔 하나가 있는 [한 잔의 추억](2011)까지 그 배경이 구름, 달, 별이 떠 있는 푸른 하늘이라는 점도 연속적이다. 검은 안경, 또는 동공이 없는 뻥 뚫린 듯한 눈의 표현은 목불일견의 사회에 대한 풍자다, 작가는 ‘눈동자가 까만 이유’에 대해 ‘눈이 반짝반짝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시꺼멓게 푹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시꺼멓게 그린 거는 내 식의 절망감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우리 삶에서 슬픔, 비애 이런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비애미라는 게 우리를 엄청 끌고 들어가는 거라고...’(2011, 구술록) 80년대의 작품 [파안대소](1985)는 선글라스가 아니라 장님같은 모습이며, 그의 웃음에서 광기가 느껴진다. 20여년 이후 [웃고 사는 세상](2005)은 당시에도 오래되었을 인형은 찡그린 미간과 파안대소의 결합으로 광대의 과장된 연기를 떠올린다.

나 화났어!, 2015,캔버스 유채, 100cmX100cm

별과 남자, 2017, 캔버스에 유채, 53x45.5cm
달과 별이 떠 있는 푸른 배경에 별, 하트, 세모 등의 무늬가 있는 푸른 광대복을 입은 [안경 쓴 피에로](2014)는 가장과 현기증의 결합을 보여준다. 놀이는 문화와도 같이 일종의 상징적 모델로서,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을 따른다. 인류학자 로제 카유와는 [인간과 성(聖)]에서 놀이를 네가지 범주로 구분했다. 그것은 경쟁(Agon), 우연(Alea), 가장(Mimicry), 현기증(Ilinx) 인데, 이 네가지는 상호조합되거나 교차될 수 있다. 황효창의 작품과의 관련에서는 다른 것으로 변장하는 놀이인 미미크리와 현기증의 추구인 일링크스이다. 로제 카유와에 의하면 가장과 현기증이라는 인간의 강력한 본능에 근거를 둔다. 미미크리는 놀이하는 자가 자신의 인격을 일시적으로 잊고 바꾸어서 다른 인격으로 가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연극이 대표적이다. 로제 카유와가 말하듯이 놀이에서는 현기증의 추구조차도 현실생활의 정상적인 상태인 혼란을 완벽한 상황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놀이와 예술의 접점이 있다.
푸른 바탕에 푸른 의상을 입은 황효창의 광대는 배경과 형태가 구별이 되지 않는 어지러움과 관련된다. 실제 생활에서 그와 비교할 수 있는 경험은 취함 또는 죽음이다. 자율적 주체로서의 인간은 죽고 유사 인간으로 재생된다. 가면 또는 가면같은 얼굴도 중요한 요소다. 광대는 분장(분장은 가면과 같은 성격)을 통해서 일상에서 난장(亂場)의 세계로 들어간다. 로제 카유와에 의하면 가면은 축제, 즉 현기증, 흥분 및 유동성이라는 권위의 공백기에 나타나서 질서 있는 모든 것이 재생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파괴된다. 이때 가면을 쓴다는 것은 금기를 깨겠다는 공공연한 결의이자 진정한 사회적 유대이다. 요컨대 가면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타자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한계로부터 벗어난다. 물론 타자로 변형되는 것은 자기 동일성을 전제로 한다.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이태리 르네상스 문화]에서 이탈리아 축제의 가장 본질적인 장점은 개인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발전된 개인이 가지는 의미, 곧 완전한 가면을 생각해낸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번호 붙인 사람들, 2006, 캔버스에 유채, 91x116.8cm

제복 입은 사람들, 2007, 캔버스에 유채, 72.7cmX60.6cm

불통, 2022,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광기는 눈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황효창의 작품에서 눈은 검은 동공이나 안경으로 그 상태나 의도를 감춘다. 극도로 흥분한 상태의 광대인 [열받음!](2015)는 검은 구멍에 빛이 보인다. [험한 세상 I](2021)은 인형의 한쪽 눈은 확 돌아가 있다. 축제의 기간 동안 광대는 왕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다가 축제가 끝나면 희생된다는 신화가 있다. 황효창의 어릿광대 왕은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와 관련된다. 작품 [왕자와 제비1](1985)는 왕자가 자신에게 박힌 눈과 칼에 박힌 보석, 금을 제비를 시켜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는 내용이다. 20여년 후에 그려진 [왕자와 제비 ll](2005)는 이전 작품과 짝을 이룬다. 조각상처럼 창백한 형태에 입술만 붉다. 이 시리즈의 작품은 반(半) 부조적인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작은 마법의 원같은 공간에서 주인공인 광대는 거리의 악사들로 나타난다. 작품 [인생은 4분의 3박자](1996)에서 거리의 악사들의 연주 소리가 공간을 색점으로 가득 채운다. [벼랑 끝에 선 가족](2006)은 경직된 광대 가족이 위기를 암시한다. 가족으로 보이는 [거리의 악사 4](2014)은 검은 안경을 착용한 자동인형같은 모습이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정사각형 캔버스, 멜랑콜리한 푸른 색조, 얇은 화면은 인형이나 광대라는 소재 그 자체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들이다. 그의 작품에 많은 정사각형 구도는 풍경이나 광경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인간 대신에 인형이 등장하는 만큼 인공적 구조를 강조한다. 이 구조에서 자연적인 풍경의 시점과 지점은 어그러진다. 가령 [삐에로의 하늘](2010)처럼 탁자와 밤하늘이 바로 연결되는 초현실적 화면은 광대가 서로 다른 차원을 오가는 존재임을 말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입체파처럼 촉각적인 화면이 특징이다. 촉각적 화면은 환영에 호소하는 광학적 화면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광대처럼 가장이 필요했던 시대의 작품 [두 어릿광대](1989)는 입체파처럼 공간을 앞으로 바짝 당겨와 촉각적인 느낌을 강화한다. [마임이스트](2005)에 나타나듯이 작은 충격에도 쉽게 망가질 것같은 얇은 공간은 존재의 취약함을 상징한다. 여기에 더한 푸른 색감은 존재를 우울함으로 침몰시킨다.

이게 나라냐, 2016, 캔버스에 유채, 145.5x112.1cm

촛불, 2017, 캔버스에 유채, 112.1x145.5cm
맹목과 침묵에서 세계와의 교감으로
황효창의 작품에서 인형은 실존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확장된다. 그의 작품 속 캐릭터는 한국 사회에서 어두운 시대 중 하나였던 70-80년대를 살아오고 작업하면서 강요됐던 맹목과 침묵을 표현한다. 검은 안경 또는 동공은 맹목을, 마스크는 침묵을 상징한다. 검은 안경은 또한 당시 독재정권의 감시도 떠올린다. 작가의 회고에 의하면 ‘남산 같은 데서도 저놈 이상한 놈이다 하고 쫓아 댕기고 그러는 거지. 전시회를 하면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는 거야...’(2011, 구술록) 전시회에 대한 당국의 ‘관심’(?)을 보면, 당시에는 그래도 예술의 힘을 인정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작품 [감기시대1](1985)는 진실을 말하는데 입막음 당했던 시대를 잔뜩 낀 먹구름으로 표현했다. 그는 같은 제목의 작품을 시리즈로 제작했다. 날씨는 흐린데 전경에 인형들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초현실주의적 풍경이다. 감기와 시대의 결합은 40년 전에 코로나의 풍경을 예견한 듯 절묘하다.
[80년대 감기](1985)에서 작가는 ‘80년대’를 특정한다. 그의 작품에서 ‘감기’는 시대의 질병이다. 입 가리고 눈 가린 인형의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절망](1985)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인형이 누워있고 그 주변에는 경악하는 표정의 인형들이 있다. 맹목의 시대를 풍자하는 선글라스 낀 인형들이 보이는 [눈먼 사람들의 동네](1985)에서 배경의 집들은 들고나는 문도 창문도 생략돼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1995) 시리즈는 동화가 사회적 이슈와 딱 맞아떨어지는 황당한 시대에 정권의 나팔수나 기수는 피에로 같은 모습이다. 30여년 전 그림이지만 지금 시대에도 들어맞는 모습이다. 국정농단 시절에 박근혜는 최순실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재현되었다. 또 몇 년이 흘러 우리는 같은 사태를 목도한다. 국민을 군대로 위협한 내란 행위의 당사자와 그 하수인들은 밀랍 인형처럼 일사분란하게 반동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마르크스)라는 말이 떠오른다.

동심1, 2000, 캔버스에 유채, 37.9x45.5cm

동심 2, 2000, 캔버스에 유채, 37.9x45.5cm

봄꿈, 2008, 캔버스에 유채, 75x75cm
19세기의 밀납박물관의 인형들처럼 현실의 꼭두각시같은 존재들이 재현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네사 슈와르츠는 [구경꾼의 탄생]에서 ‘실물을 세부적으로 꼼꼼하게 재생하여 대중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시설인 밀납박물관의 욕망은 신문이 재현했던 것처럼 세상을 묘사함으로서 시사적이며 미학적인 사실성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현실감의 전통은 밀납인형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기술 발전에 의해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현상의 지배적 질서를 복제하는 재현주의는 광대의 변신하는 힘에 의해 변화해야 했다. 황효창의 작품에서 당시 ‘벌거벗은 임금님들’이었던 대통령의 구체적 생김새가 드러나는. 국민의 원성이 환호 소리로 들리는지 승리의 자세를 취한다. 풍자 대상이 실물과 닮은 점은 인형이나 광대의 가면같은 얼굴과 대조된다. 30여 년 후 아첨꾼의 무리에 둘러싸인 최고 권력자의 어리석은 행태를 모든 국민이 겪어내는 중이다. 황효창의 작품에서 무비판적으로 대세를 따르는 무리들도 광대복장을 한다. 그것은 집단적 획일성을 나타낸다.
작품 [번호 붙인 사람들](2006)은 핸드폰 번호를 떠올리는 숫자들을 수인의 번호처럼 달고있다. 공적 지위를 가진 자들이 많이 착용하는 곤색 복장이다. 작품 [제복 입은 사람들](2007)은 같은 복장으로 로봇처럼 행동하는 집단주의를 표현한다. 010으로 통일된 숫자를 달고 있는 화려한 복장의 인물들을 표현한 [불통](2022)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시대에 소통이 더 활발해졌는지 묻는다. 세월호와 국정농단 사건은 황효창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운동의 현장을 표현하게 했다. [어린 영혼들을 보내며](2014), [촛불 기원](2014), [촛불](2015) 등은 사회 참여자로서의 시점이 드러난다. [광화문에서 I](2016)는 태극기를 손에 든 사람에게 물대포를 쏘는 실제 상황도 나타난다. 극과 극으로 나뉘어 각자가 국민을 대변한다고 믿어지는 정치적 풍경 속에서 그것이 어느 쪽의 태극기인지는 불분명하다.

상생도1, 2001,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나무와 아이들 1, 2007, 캔버스에 유채, 55x55cm

바이칼의 혼, 2016,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겨울 숲, 2018, 캔버스에 유채, 50x50cm
하지만 [이게 나라냐](2016)에서는 꼭두각시 놀음을 하는 국정농단 사건의 당사자들의 얼굴은 알아볼 수 있다. 최근 작품에서는 윤대통령 부부의 관계가 사실적으로 등장한다. 명확하게 적시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해 굳이 은유는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사회운동은 다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게 하는 거대한 역사의 반동 앞에서 인형이나 광대는 다시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진보 뿐 아니라 역설 또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 황효창의 인형이나 광대는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집단주의의 산물이기도 하고 사회적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한마음이 된 모습이기도 하다. 세월호 노랑 리본 단 사람들의 촛불 시위를 그린 작품 [촛불](2017)에서 대다수가 고깔모자를 썼다. 검은 밤을 밝히는 촛불 든 백발의 인형을 그린 [꺼지지 않는 촛불](2018)은 자화상같은 모습이다. 2024년 다시 한국은 빛과 어둠의 싸움이 일어나는 중이다. 이번에는 촛불이 아니라 레드(LED)가 장착된 화려한 응원봉이다. 몇 십 년 사이에 부쩍 성장한 대중문화인 K-팝에 환호하던 젊은이들은 떼창을 부르며 저항한다.
황효창은 44세가 된 1988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홀로 고향 춘천으로 이주하여 오월리에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시작한다. 물론 실존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작업 또한 지속됐다. 발전이든 진보든, 급하게 변해온 한국 사회의 모순은 여전하며, 쉽게 화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정착한 오월리는 관광객들이 찾아올 만큼 풍광이 좋은 곳이다. 물론 그는 이 풍광 좋은 곳에서 유유자적하게 산수풍경이나 그린 것은 아니다. 그의 자연과의 교감은 전통 및 공동체적인 것을 포함한다. ‘내가 그때까지 그린 슬프고 절박한 모습의 인형을 그리는 거를 그만하고 이제 자연 속에 묻혀서 뭔가 새로운 거를 가지고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사실 춘천을 내려오게 한 동기라고...사람이 모든 사물과 어떤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게 아니냐. 그래서 상생도(相生圖)라는 말을 쓴 거야. 동물, 식물, 광물까지도 결국 인간과 다 같은 것이 아닌가.’(2011, 구술록)

육림고개, 2007, 캔버스에 유채, 40.9cm×31.8cm

역전풍경, 2010, 캔버스에 유채, 130.3x162.2cm (x3)
색감은 보다 밝아진다, 이에 대해 작가는 ‘사회에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동화 같기도 하고...색깔은 나이가 들면 밝아져. 그전에는 색깔을 별로 안 썼어. 회색, 검정, 짙은 푸른색 등 우중충한 그런 색을 썼지...’ (2011, 구술록) 필자가 최근 작가를 만났을 때 샛노란 점퍼를 입은 모습과 자동차 색으로 잘 선택되지 않는 노랑 계열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1986년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논문명이 [한국 전통 미술에 있어서의 색채에 관한 연구]일 정도로 전통과 색에 대한 관심은 중요했다. 처음에는 창고같이 허름한 곳에서 시작했지만, 작품 [우리 집](2018)에 나타나듯이 점차 인생 후반기 활동의 박차를 가할 본격적인 작업실의 면모를 갖추어 갔다. 검은 안경에 마스크 낀 백발의 남자를 그린 [자화상](2020)은 변신이나 가면 없이도 자신을 표현하기에 충분한 안정감이 있다. 인형은 동사가 되어 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세계와 화해한다.
(2편에서 계속) http://www.d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