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계속) https://www.daljin.com/column/22551



소외되고 고립된 주체보다는 타자에 보다 열려 있다. 타자는 대자연부터 사랑하는 사람에 이른다. 편재하는 원소로 변신한 주체는 공기처럼 가벼워져 무엇과도 접속할 준비가 됐다. 작품 속 캐릭터는 동식물과 교감한다. 그들은 지상의 묵직한 중력을 벗어나 비행한다. 한편으로 황효창은 자신이 나고 자라고 다시 돌아온 고향의 진면목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작업도 병행한다. 우주적 비상(飛翔)은 대지와의 깊은 뿌리 내림과의 관련 속에서 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젖혀 별을 보려는 남자를 그린 [별과 남자](2017), 가면을 벗고 구름 한 점을 바라보는 광대를 그린 [구름 한 점](2014)에서 분장한 자는 하늘에게 본모습을 보여준다. 하늘이나 우주는 타자 중의 타자인 대타자로, 많은 문화권에서 종교의 영역에 속한다. [공지천 야경](1998)이나 [밤의 소양2교](2011)는 장소가 특정되면서 도시의 야간 경관 속에서 함께 하늘을 나는 남자와 여자가 등장한다. 



풍물시장, 2010, 캔버스에 유채, 245cmX122cm



번개시장, 2011, 캔버스에 유채, 12.2x24.5cm


다른 성(性)은 강력한 유인력을 가지는 타자이다. 광대 복장의 연인이 입맞추는 [입술](2005)에서 사랑은 블루이다. 작품 [복화술사](2000)에 나타나듯이 사랑은 종종 상대를 구속하는 권력이 되기도 한다. [미녀와 야수](2005), [철인과 미녀 2](2011)는 인형극을 비롯해 공연 문화로 특화된 도시 춘천을 반영한다. 황효창의 인형, 광대 소재의 작품들은 춘천과 잘 어울리지만, 이는 지방자치제 정착으로 공연문화가 특화된 지금 보다 훨씬 앞서 실천한 그가 시대 및 지역과 행복하게 만난 경우에 해당된다. [감기 걸린 남자와 안경 쓴 여자](2013), [세상이 왜 이리 깜깜한가](2013)는 아직도 밝다고는 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해 검은 안경으로 응수한다. 하지만 이제 타자들과 함께한다. 인형이나 광대는 애초에 타자이다. 자기 안의 타자가 타자와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동물이 등장할 때 광대들은 크기가 작다. 광대라는 상징적 존재는 신화적 동물과 어울린다. 


[새와 함께 날다](2007), [봄꿈](2008), [꿈 속에 날다](2011)에서 봉황을 비롯한 영험한 새와 아이들은 함께 비행한다. ‘춘천에 와서는 현실에는 없는 모습들을 많이 그리기도 했어. 이상한 동물들, 내 상상 속의 동물들 그런 걸 많이 그렸다고. 발이 여섯 개 달린 동물, 세 발 달린 새 같은거...현실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의 풍경, 다른 세계의 모양 등을 그리다 보니까...내가 나이 들어가면서 동화적이기도 하고...그냥 그 슬픈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꿈속의 하늘을 날기도 하고 새와 같이 놀고 인간이 동물과 어우러지는, 내 식의 이상향’이라고 말한다.(2011, 구술록) 2008년 개인전 제목은 [동화를 그리다](리앤박 갤러리)였다. 2001년에 갤러리 고도에서의 초대 개인전에서 발표한 [상생도]는 ‘그동안의 심각하고 사회비판적이었던 시각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던’(2011, 구술록) 작품이다. [상생도] 시리즈에서는 나무가 세계이다. [상생도 1](2001)에서 어릿광대의 팔 하나가 나무로 자라 한 세계를 이룬다. 



웃고 사는 세상, 2005, 캔버스에 유채, 53.0x45.5cm



한 잔의 추억, 2011, 캔버스에 유채, 53.0cmX45.5cm



꺼지지 않는 촛불, 2018, 75x75cm


나무와 달, 별과 꽃은 여전하지만 당시의 핸드폰은 시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릿광대는 밀알처럼 자신을 썩혀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상생도1]과 짝을 이루는 [상생도2](2001)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남성은 광대지만 여성은 일반인이다. [상생](2016)에서 여자 인형 머리 위로 여러가지가 열린/품은 나무. 여성과 풍요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나무와 아이들 1](2007)에서 곧게 자라 많은 가지를 거느린 나무는 하나의 세계이다. 그 사이사이에서 서커스의 공같은 열매와 함께하는 고깔 쓴 아이들이 보인다. 황효창의 작품에서 식물계를 대변하는 나무는 우주목(宇宙木)의 신화를 공유한다. 무언가 기원하는 색색의 천들이 묶여 있는 나무를 그린 [바이칼의 혼](2016)은 대지와 바다와 하늘을 관통하는 나무의 생태와 상징이 분명하다. 계통수같이 수직으로 펼쳐지지 않는 나무들은 미로와도 같다. 작품 [겨울 숲](2018)에서 나목들의 숲에 인형같은 캐릭터가 길을 잃었다. 

자연과 함께 했던 전통은 그의 작품세계에 이물감 없이 끼어든다. 문자도의 형식을 빈 작품 [봄내](1997)에서 글자와 이미지는 결합된다. 물고기, 새, 사람들이 모두 쌍을 이룬다. 작품 [사랑](2008)에서 고깔모자를 쓴 사람들은 매스게임을 하듯이 사랑이라는 글자를 만든다.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불과 얼마 전 풍경들도 곧 역사로 넘어가곤 한다. 황효창이 그림으로 담아낸 지역의 시장이나 골목들이 그것이다. 61세가 되던 2005년 ‘드라마 겨울연가를 소재로 한 한류전을 통해 사라져 가는 춘천의 모습을 그려나가기 시작’(2011, 구술록)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사라져 가는 춘천의 모습을 계속 그리고 있어...민족 미술은 생활 속에 있는 예술, 우리 삶 속에 있는 예술이라는 거지. 바로 우리 속에서 생성된 예술이 바로 민족미술이라고. 미술이 대중하고 많은 괴리가 생겼어. 미술은 모르는 세계라고 단정 짓는 것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어’라고 말한다. 



우리집, 2018, 캔버스에 유채, 72.7x90.9cm



춘천 오월리 작업실 전경


황효창은 2006년에 춘천 민족미술인협회를 창립했다. 그 선언문에서 작가는 ‘더불어 그려가는 아름다운 춘천을 꿈꾸며’라고 쓴다. 작품 [육림고개](2007)에는 구체적인 골목이 등장한다. 춘천의 풍물시장을 사실적으로 그린 [풍물시장](2010)에는 손님이 많지 않다. 화면 밖을 보고 있는 있는 고깔모자의 생선 장수는 삶의 현장을 관객에게 소개한다. 재래시장을 그린 [번개시장](2011)에서도 고객들 사이에 광대 복장 사람 하나가 관객에 눈을 맞추고 무엇인가를 안내하는 듯한 자세를 보여준다. 역전 앞 쇼윈도에 도열해 있는 매매춘 여성들을 그린 [역전 풍경](2010)은 캔버스 3개를 붙여 스펙터클한 형식으로 지역의 홍등가를 표현했다. 관객이 무대로 들어가게 하는 광대 복장의 사람도 작게 그려져 있다. 일상은 예술이나 축제가 아니지만, 여전히 일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또는 느끼기 위해서 또 다른 입구나 안내자가 필요함을 말한다. 황효창의 인형이나 광대는 현실에 도달하기 위한 환상적 매개자라고 할 수 있다.


출전; 강원문화재단 원로예술인 디지털 아카이브 '인형작가 황효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