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지만 끝없이 이어온 질문들
이선영(미술평론가)
얼마 전 한 학회에서 김기라가 자신의 작업 세계 전반에 대해 발표한 발제문에 ‘기록되기는 하지만 보여질 수 없는 어떤 것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것은 기록과 보이는 현상과의 괴리를 암시함과 동시에, 그러한 괴리를 극복하려는 그의 작업/기획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듯하다. 명확해 보이는 현상도 막상 기록하려면 불확실한 구석이 많아진다. 작업이란 많은 빈칸들을 탐구나 상상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기록하려는 순간 ‘보여질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비로소 감지된다. 그것을 다 보이게 할 수는 없지만, 이때 시각예술가로서의 본격적인 도전이 생긴다. 확실해 보이는 것을 깨뜨리고, 불확실한 것들을 부각시키는 것이 그 역할이다. 김기라의 작품들은 그동안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의문시하면서 주변화되어 있는 타자와 소수의 문제를 수면 위로 띄웠다. 현대사회에서 예술 자체가 주변화되어 있는데 그게 가능할까싶지만, 소수는 다수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오늘날 예술가는 소수 중의 소수이다.
작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예술계가 그 무대를 마련해 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작가란 존재하는 현실만 인정하거나 긍정하는 실증주의자나 낙관론자라서가 아니라, 작업을 위해서 자신의 온 촉수를 현실에 대고 있는 존재다. 김기라는 상상보다 현실의 풍부함을 일찌기 깨달은 듯하다. 그는 막연한 상상이 들어설 저리가 없을 만큼 촘촘한 그물망으로 짜고 그것을 끝없이 현실에 던진다. 작품의 밀도와 강도를 가능하게 한 것은 현실에서 길어낸 소재이며, 이는 현대미술의 치명적 단점인 소통의 문제도 짚고 갈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맥도날드 햄버거부터 평양냉면까지, 태극기 부대부터 마르크스까지, 남북 이산가족부터 래퍼까지 전방위적인 소재가 등장한다. 새로운 소재는 그 때마다 그것을 적절히 담기 위한 또 다른 기법을 요구한다. 이는 그가 회화와 조각을 모두 전공했다고 해도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적절한 협업자를 찾는 것도 작업의 중요한 대목이다. 많은 작가들이 전략적으로 하나의 기법을 자신의 상표처럼 내세우면서 가다듬는데 힘을 기울이는 것과 비교된다. 작가가 장인이 아님을 자각하는 이는 형식적 매끄러움을 위해 메시지를 약화시키는 선택은 거부할 것이다. 세련된 형식의 연마로 사라지는 메시지, 또는 메시지의 부재를 감추기 위한 과도한 형식적 포장보다는, 야생적 측면을 중시한다. 2009년 년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거칠거칠한 목조각들은 현대문화산업의 영웅 캐릭터를 통해 문명의 원시적 속성을 드러내게 했다. 2015년 올해의 작가상 전에 붙였던 부제인 ‘Floating Village’는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집약한 것이다. 하나의 본질이나 중심이 없는 떠도는 삶을 표현하기 위한 방식은 결코 고정될 수는 없다.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하는 것은 수동적인 기술도 기계적인 반영에 의한 것이 아니다.
김기라는 일찌기 사진과 영상 등의 매체도 적극 활용했지만, 이 새로운 ‘거울’은 적극적으로 구성/해체되면서 서사를 이끈다. 작품 내용이 중요하기에 연극적 설정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관객의 호오(好惡)는 갈릴 수 있다. 연극은 대사와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훈련된 배우도 따로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관객들은 서사보다는 시각성에 집중되어 있다. 관객이 정치적 계몽이든 미학적 계몽이든 설득당하기도 싫어한다는 점도 서사가 억제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미학적 이데올로기가 배제하려는 서사는 진지한 예술이라면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자극적인 눈요깃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미술관에서 한발짝만 나가도 대형스크린에 명멸하는, 자본과 기술이 집약된 이미지들이 미술 안팎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전시들에서 그의 작품이 서사적이면서 종합적이라는 연극의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다.
연극적 형식은 퍼포먼스 형태로 직접 상연되기도 하지만, 미술관은 무대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객과는 영상으로 만난다. 연극과 영상은 회화나 조각에서 서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형식으로 선택된다. 또한 그가 세팅해 놓은 무대 위, 출연 배우들의 몸짓은 디지털화되는 문화환경 속에서 아나로그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다. 재현 대신에 재연의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국의 현실에 주목하다보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이념의 문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 이념은 자주 등장한다. 그의 작품에서 이념은 단순한 정신적 현상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살고 죽는 몸에 작동한다. 작품에 공동체나 공동선 등, 작품에 주의주장을 담는 것에 대한 거리낌은 없었지만, 작가로서는 무슨 정파에 속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깊은 분열의 씨앗은 식민 지배가 결정적이었으며, 이는 소위 말하는 ‘번영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돼서도 여전하다.
제국주의와 군사독재로 점철된 근대화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진보를 이루어냈지만,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예술은 현실정치에서 배반당할 위험이 늘 상 존재하며, 권력의 양날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동일자에 대한 타자적 비판이건, 자본주의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건, 어떤 사회적 사유든 한때가 아니라 여태 그가 그것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정답은 없지만 끝없이 질문해야 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질문 자체에 답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기에, 관객은 작품을 통해 그다음의 질문/답을 구하게 된다. 최근 아르코 미술관 개관 50주년 전에서 그가 신학철 화백을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었다고 말한 점은 특기할만하다. 서로 영향 관계를 가지는 작가들끼리 대화적 상상력을 풀어헤치는 이 기획전에서 그는 청년기에 신학철의 [한국 근현대사] 연작에 감명받았다고 하면서, 그의 작업이 가져왔던 정치적 맥락을 강조한 바 있다.
김기라는 그동안 분단은 물론, 제주 4.3부터 여순 사건 등을 작품과 전시기획으로 펼치기도 했다. 관동대지진의 대참상을 기념비적으로 묘사한 신학철 화백의 거시적 관점과 대화하고자 했던 그의 작품 [눈이 멀고 벙어리인]은 시각장애인 남자와 언어장애인 여자라는 두 사회적 약자가 서로의 결핍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연극적으로 보여준다. 세대도 다른 두 작가의 어법은 다르지만 타자에 대한 연민은 공통적이다. 정치적 작가와 작가적 정치는 차이가 있다. 전자가 현실에 안전하게 정착하기 위한 한 방법이라면, 후자는 작가이기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는 정치적 관심사다. 작가란 진정한 변화에 대해 꿈꾸고 실천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작가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다. 사는 것과 기록 또한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기록하는 이는 대상과의 거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거리는 기록할 수 있게 하지만 국외자로서 초월적인 입장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어느 한편의 일방적인 선택은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삶과 기록이 모두 중요하지만 작가는 현실과 화해하고 안주하기보다는 변화를 향한 열정을 정치와 공유한다. 최근의 공적 무대에서 그가 제시한 ‘기록되기는 하지만 보여질 수 없는 어떤 것들’은 변화의 방향성이 정치인들처럼 확실하지 않음을 말한다. 하지만 변화의 조건이 기록인 것은 사실이다. 만들어진 작품이 다 발표되지도 기록되지도 않는다. 기록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고, 관객이나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그다음의 기회도 얻기 힘들며, 심지어 작품 그 자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매개를 놓치는 셈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작품/작업 대신에 기록/말만 번성하는 제도화의 어두운 그늘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무튼 말과 사물에는 괴리가 있고, 이러한 괴리 자체를 도전의 영역으로 삼는 작업/기획이 있을 수 있다. 김기라는 자신을 예술가/전시기획자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것은 여수 비엔날레 등 크고 작은 전시기획을 함께 해온 그동안의 이력과 관련된다.
제8회 2018 여수 국제아트 페스티벌(“지금, 여기 또다시”)같은 비엔날레급 전시부터 얼마 전 동년배 세대들끼리 진행한 ‘기적과 잠꾸러기’(2022년, 두남재아트센터) 전 같이 한국 미술계의 한 단락을 묶어준 전시까지 이른다. 이러한 기획전은 억압된 역사의 상처부터 부스러기같은 단편으로 만들어진 대안적 세계에 대한 비전을 포괄한다. 한국에서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유학 시절 문화비평, 조각 등을 전공하고, 이후 그의 관심사는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전방위적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았다. 74년생인 그의 청년기, 즉 90년대에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 생태계의 큰 변화가 있어서 그의 전방위적 방식은 또 다른 차원을 포괄한다. 영상은 마치 영화나 다큐멘타리가 그러하듯, 다양한 관심사를 담아내는 형식이 된다. 하지만 이후의 ‘영상’ 세대와도 다르게, 아나로그적 감성을 포함(이젤 회화부터 나무조각까지 그때마다 필요한 형식을 호출)하며, 현실적 감각과 판단력이 필수인 문화적 실천을 지향한다는 차이가 있다.
예술적 형식을 가다듬는 행위를 넘어서 문화적 실천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관심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의 작업/기획은 예술적 주체의 독백보다는 대화를 중시한다. 이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 그가 직접 밝힌 바로는 ‘다양한 분야의 철학가, 아티스트(음악가, 무용가, 신경정신과 의사, 국악가, 연극인, 테크놀로지, 영화인, 건축가, 디자이너, 음악가, 공연 예술가, 비평가, 안무가, 엔지니어 및 과학자) 등’과의 협업을 추구하게 했다. 예술 자체가 종합적인데, 근대의 미학적 순수주의에 의해 그 가능성은 접혀 있었다. 근대 이후 각 분야는 분업화를 통해서 생산성을 높여왔고, 그것을 진보라고 간주했다. 예술 또한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면서 ‘순수’와 ‘자율’로 포장하곤 했다. 한가지 소재를 선택해서 계속 그것만 파고, 마치 특정 상표처럼 인지도를 얻는 쉽다면 쉬운 길이 있었다. 예술적 분업은 사회적 토양으로부터 예술을 단절시켰다.
김기라가 협업을 비롯한 다양한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접혀져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현실에서 펼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작업에는 기획자의 개념이, 기획에는 작가적 감성이 깃들여 있다. 한편으로 단편화된 현실에 단선적인 합리성을 부여하는 시스템도 더불어 강화되고 있다. 그의 작업과 기획은 현실을 합리화하는 가짜 연속성에 구멍을 내고 필요한 부분은 연결시키는 등의 다양한 방향성을 가진다. 긍정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작가의 목적은 전방위적인 관심과 형식의 차용, 낯선 언어와의 대화는 단절된 것을 잇는 방식을 취하게 했다. 하지만 종교라는 단어의 어원에 포함되어 있듯, 단절된 것을 잇는 것은 거의 종교적인 차원의 비전을 요구한다. 내가 아는 한, 그가 특정 종교를 앞세운 적은 없고, 무엇보다도 그의 작업은 초월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라는 점은 종교와는 다른 방식의 ‘잇기’를 전제한다. 김기라는 자신의 탐구 방식을 ‘사유, 공유, 향유’라고 요약하면서 현실과 다양한 창구로 대화를 시도한다.
*본 평문은 2024년 6월 15일 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에서 진행된 [예술과 미디어] 학회에서 발표된 김기라 작가에 대한 필자의 질의문 일부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다.
출전; 퍼블릭아트 202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