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여행
이선영(미술평론가)
조국현의 작품에는 춤과 음악이 있다. ‘Feel so good’같은 흥겨운 노랫가사같은 제목뿐 아니라, 춤추는 형상들이 화면에 들어가 있곤 한다. 대개 비슷한 형상들이 여러 자세를 통해 움직임을 암시하며, 이는 정지된 매체인 회화에 운동감을 부여하는 고전적인 방식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추상미술의 출발에 있었던 음악과의 연대 때문은 아닐까. 대표적인 이가 ‘추상의 선구자’로 알려진 칸딘스키다. 칸딘스키는 추상미술의 정신성도 강조하는데, 조국현 또한 여러 기호적 형상들을 추상적 화면에 배치한다. 2024년 현재 42회가 넘는 개인전 중, 가장 최근 전시 제목이 ‘생각의 형상’(2024)이다. 적은 면적에도 많은 표현성을 줄 수 있는 얼굴 부분, 특히 눈코입 등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이미지가 바로 ‘생각의 형상’에 해당된다. 띠처럼 흐르는 듯 그린 문자형태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음악은 건축과 함께 비(非)대상 예술의 대표적 예다. 시각예술이 대상 없이도 가능할까 싶었지만, 르네상스 이후 확립된 재현적 장치 또한 사실주의만큼이나 추상적이다.

조국현_Feel so good Ⅰ_91 x 116.8cm_mixed media on canvas_2024
추상 또한 그 시대의 시각적 패러다임을 반영한다. 현대는 오히려 모든것이 코드화되다 보니 오히려 사실주의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살아있는 여자는 주름없이 팽팽해지려 하는데, AI로 창조된 여성은 더 현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그럴듯한 장치가 장착된다. 수학과 공학을 필요로하는 건축이 기하 추상으로 연결된다면, 음악은 유기적 스타일의 추상과 이어졌다. 후자가 서정 추상 또는 뜨거운 추상 등으로도 불린 것은 유기체의 온기와 맥박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조국현의 작품에서 선은 많이 등장하지만, 직선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참조하는 ‘자연과 인간’에는 직선이 없다. 빛이 예외인데, 그의 작품에서 빛은 어디에서 어디로 조명되는 것이 아니라 편재한다. 작품 [Feel so good Ⅰ](2024)에서 화면 한가운데의 연두는 푸른 자연을 둘러싼 대지를 떠올린다. 화면 상단에는 달이나 해를 떠올리는 원도 배치되어 있다. 화면 위아래를 활기차게 움직이는 선들은 율동이 되어 색의 하모니와 어우러지는 선율이 된다.
조국현은 자신의 주제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共存)을 위한 여행(旅行)’이라고 밝히면서, ‘특히 나의 서정(抒情)적 추상(抽象)에 있어서는 심리, 소리, 감정, 생각과 같은 것들이 이미지를 통해 변주되고 이것들은 항상 나에게 큰 모험이자 도전’이라고 말한다. 이미지들은 ‘마치 축제를 벌이듯 캔버스라는 우주 위에서 서정적인 춤을 추고 무한한 상상과 즉흥적 감흥의 세계가 관념의 시공(時空) 안에서 꿈틀거린다’ ‘이것들은 나를 비롯한 우리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휘감으며 때로는 야만적으로 때로는 섬세하게 말을 건네온다’ 작품 [몸짓](2024)은 여러 대조되는 형태와 색이 끝말 이어지듯 연결된 구도다. 다른 작품에서 춤추는 형상은 사람 인(人)과 가까이에 있고 밝은 원은 어두운 원과 인접해 있다. 강한 색과 약한 색이, 뾰족한 형태와 둥근 형태가 겹쳐있다. 명확한 지시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가지는 추상은 난해함과 열림이 공존한다. 대상에 대한 확언이 아닌 거리두기에서 은유는 활성화된다.

조국현_선율의 메아리 1_130 x 162.2cm_mixed media on canvas_2023
소리나 음악을 표현한 작품에서 잠재적 움직임은 더욱 활성화된다. 작품 [물의 소리-1](2023)는 물을 직접 묘사한 것은 아니지만, 물의 결을 연상시키는 선의 흐름으로 소리를 형상화한다. 물은 추상적 요소로 나타났고, 음처럼 흐른다. 중심으로부터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선의 흐름이 있는 [선율의 메아리](2023)는 제목 그대로 ‘선율의 메아리’를 보여준다. 보이는 것의 확실성을 의심하는 추상회화는 소리같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려 한다. 같은 크기로 제작된 시리즈 작업은 운동의 연속성을 말한다. 시리즈에서 달라진 색과 형태, 배치 등이 움직임을 전달한다. 작품 [선율이 움직이기 시작하다 Ⅳ](2023)는 그 시리즈 중의 하나로, 자유로운 표현 가운데 선 안에 포획된 색, 즉 색의 영역들은 움직이는 선율을 보여준다. 배경을 여백처럼 비워두어 운동이 가능한 영역을 암시한다. 고대의 원자론자들에게 세상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이 움직이기 위해 빈 공간이 필요했듯이 말이다.
사람의 표현은 아주 가깝거나 아주 멀리서 포착된다. 화면 한가득 얼굴이 있는 작품군과 춤추는 기호처럼 나타나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작품 [그리운 사람 Ⅰ](2024)에서 두 얼굴에 하나의 입술을 가진 형상은 그리운 사람과의 행동 또는 상상이다. 추상이지만 피부의 색과 형태감 등으로 두 성이 구별된다. 다름의 격차가 클수록 상호 간의 유인력과 결합력은 커질 것이다. 윤곽선이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추상은 서로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의 표현과 어울린다. 피카소가 전쟁의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얼굴을 산산이 깨진 유리창처럼, 에로틱한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 부드러운 형태를 제시한 것과 같이 말이다. 우정은 사랑과 다른 표현 방식이다. 작품 [친구랑 Ⅰ](2024)은 수학의 교집합 기호처럼 두 친구는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혼합재료로 제작된 이 작품의 배경을 이루는 굵은 입자들은 조명에 잔잔하게 반응하며 깨알같은 즐거움으로 가득했을 추억을 소환한다.

조국현_친구랑 Ⅰ_130.3 x 193.9cm_mixed media on canvas_20240313
그는 41회 개인전 ‘빛의 아이’(2023)의 작가노트에서 ‘우리들은 그렇게 어깨동무를 하고서 우주 곳곳을 누빈다. 빛과 색, 형이 함께 어우러진 우주의 시공간을 모험하며 나는 마치 어린 아이가 된 듯’하다고 말한다. 세월은 갔지만 작업하는 이는 다시 ‘빛의 아이들’이 될 수 있다. 1955년 전주 출신의 작가가 평생의 화업에 들어선 계기는 무려 초등학교 1학년 미술 수업까지 소급되니 만큼, 어린시절은 그에게 중요하다. 또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플란다스의 개]를 읽게 되면서 화가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조국현의 작품에는 재현적 요소가 있다. 하지만 재현주의는 아니다. 눈과 잎 등 얼굴을 구성하는 요소는 명확한 윤곽선 안에 배치되지 않는다. 대상을 명확히 규정짓기 위한 윤곽은 그보다 더 큰 에너지에 의해 해체된다. 유기체에게 명확한 경계의 해체는 죽음일 수 있지만, 예술은 현실과의 동어반복이 아니다. 에너지가 굳은 것이 물질이다. 물질은 임계점을 넘으면 에너지로 변환된다. 작업은 정신적인 차원에서 이 문턱을 수시로 넘는다.
작품 [행복한 미소Ⅰ](2024)에서 얼굴을 채우는 분자적 요소는 미소가 퍼트리는 행복 바이러스 같다. 작품 [바라보고 생각하고](2023)에서 앞을 응시하는 눈과 말아는 입은 시각과 언어의 관계를 말한다. 가장 고등한 감각인 시각은 언어적 이성과 밀접하다. 이성은 말이 말을 낳는 식의 동어반복을 행하기도 하지만, 말은 인간의 조건인 것이다. 인간은 자연이 아닌 언어라는 상징적 우주에서 태어난다. 조국현의 작품에 풍부한 질감은 촉각적인데, 그것은 시각의 일방성을 보완한다. 촉각은 가장 원초적 감각으로 가장 일찍 일깨워지며 가장 늦게 사라진다고 알려져 있다. 회화는 추상화되면서 질감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했다. 시각적으로 화면을 만지는 것은 사라진 대상 대신 화면 자체가 대상이 되기 위한 절차이다. 그것은 형식주의나 예술을 위한 예술의 길이다. 화면에 재현적 요소가 남아있는 조국현은 너무 멀리 가지는 않았다. 운명적인 사랑을 포함한 작가의 삶은 자연적 요소와 더불어 작품 여기저기에 긴밀하게 반영된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