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지만 이 남도 끝자락의 바닷가는 여느 내륙과 인접한 바다의 그 처연한 막막함이나 드센 파도를 좀체 보여주지 않고 약간의 냉기만을 수면 위로 분산시켜 줄 뿐이다. 이 느긋한 남해바다의 한가로움은 지난 날 여수의 비극을 애써 지우고 망자의 혼을 죄다 물속으로 수장시킨 듯한 죄의식에 시달린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여수 돌산 너머, 향일암(向日庵)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강종열의 작업실에서 여순사건의 비극을 형상화한, 상당히 좋은 목탄화 수십 점을 보고 있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대작도 볼만하지만, 목탄 드로잉으로 그려낸 일련의 연작은 그 비극의 정서를 더 어둡고 밀도 높게 압인하는 편이다. 그로 인해 역사적 상흔과 죽은 이와 바다를 찢는 비명과 허망하게 아니 격렬하게 썩어가는 시신과 참혹한 학살이 지나간 아픈 자리를 새삼 호출한다.

강종열, 〈어느 청년의 죽음〉, 2019, 종이에 목탄, 106.5×76.5cm
작가는 어린시절 그 현장에서 살아남아 학살과 죽음의 기억을 구전하는 어머니의 음성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한다. 그 기억의 힘으로 그린 그림은 망자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의식과도 같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기억의 힘에 의해 망실되지 않는다. 하여간 죽음의 현장을 보여주는 음화와도 같은 그림은 내내 사방을 검게 물들이면서 사람의 감정을 오래도록 침전시키는 그 무엇으로 배회한다. 그 무거운 그림을 떨치고 나와 바로 작업실 앞에 드러누워버린 바다의 조신하게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고 다시 황량한 동네 풍경을 본다.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남아 생을 이어온 자들은 어촌의 삶이 그렇듯 오랜 습속이 된 바다에서의 생계를 도모하는 중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겨울 바다는 한가하다 못해 적요해서 갈매기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마을 길가에도 인적 하나 없다. 이 스산함과 처량함은 가뜩이나 어수선한 바닷가 근처 풍경을 더욱 황폐하게 바라보게 한다. 이런 풍경적 정서가 이곳 출신인 류경채의 〈폐림지 근방〉(1949)이란 그림을 형상화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여수 바다와 상흔 같은 그림을 뒤로 하고 광양으로, 전남도립미술관으로 갔다. 여수에서 광양으로 가는 도로는 길게 이어져서 옆으로 여수산단의 풍경을 거침없이 밀쳐가며 차는 질주한다. 지금 이곳 여수산단은 이전의 좋았던 시절에 비하면 어느덧 궁핍한 초췌함을 은연 중 드러낼 정도로 활기가 없어 보인다. 겨울 풍경 또한 가난하고 보잘 것이 없다. 겨울은 변화를 거듭하는 자연이 죽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자 동시에 동토를 견뎌 다시 살아날 궁리를 어디선가 부산스레 도모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당장으로는 눈에 벅찬 그 무엇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메말라서 보는 이를 공연히 슬프게 하는 편이다. 광양에는 광양국가산업단지도 있고 광양불고기도 있고 멋진 매화나무도 즐비하지만 빈 들에 우두커니 직립한 전남도립미술관도 슬그머니 그 목록에 얹혀졌다. 광양에서 순천은 옆 동네다.‘여순사건’은 그렇게 순천과 광양을 지나 여수에 이르고 종내 제주로 가서 4.3이 되었다.
도립미술관에서는 《오지호와 인상주의》(2024.11.15-3.2)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대규모 회고전은 아니지만 그의 중요한 작품 몇 점과 그 외의 것으로 구색을 맞춘 전시다. 좀더 오지호의 많은 작품을 관람하길 기대했는데 그 기대는 반쯤 접혔다.
오지호는 한때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검거, 풀려난 이력을 지닌 자다. 그의 기적 같은 생환은 양수아와 그 운명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부터 짱짱한 그림을 선보였던 오지호는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기의 참담함을 용케 지나 꾸준히 자기 세계를 도모한 미술계 어른이 된다. 전시장에는 그의 대표작인 〈남향집〉(1939) 하나가 돌올(突兀)하다. 그리고 1970년대에 그려진 일련의 항구 풍경이 좋았다. 그 아찔하게 감각적인 블루색과 힘 있는 필세의 단호함이 있다. 전시장 한 방에는 그의 아들과 손자의 그림이 구색을 맞추듯이 걸렸는데 이것이 전시를 산만하게 해버렸다. 오지호의 작품만을 갖고 더 힘있고 밀도있게 전시를 차렸어야 했다. 사실 그런 아쉬움은 나와 무관한듯해서 어두워지는 광양을 뒤로 하고 나는 집이라 여기는 북쪽을 향해 상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