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7일부터 2025년 1월 18일까지 구자인, 박현욱, 이영빈, 이현미 작가 4인은 한국화여성작가회와 한국화진흥회가 공동 주최한 인도 러크나우(Lucknow)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는 송인상 큐레이터의 한국-인도 간 교류 노력 덕분에 실현될 수 있었다. 이 글을 통해 그 여정에 대한 소회를 공유하고자 한다.
내가 경험한 인도는 혼돈 속에서도 나름의 적응과 조화를 이루며,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떠나는 날까지, 끊이지 않는 경적 소리와 무질서해 보이는 도로 풍경이 우리를 감쌌다. 신호등과 차선이 무색할 정도로 자유롭게 오가는 차량들, 거침없이 길을 건너는 사람들-모든 것이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건물, 사람, 도로, 청결 상태까지, 이 도시는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이 거쳐 온 모습들이 동시에 공존했다.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서는 세탁, 목욕, 축제, 장례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이 풍경은 혼돈과 조화가 뒤섞인 인도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인도인들도 공감하며 흥미로워했다. 이미 그들 역시 같은 조화를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일행들도 한국에서 너무 정돈되고 깔끔한 것들만 보다가 이곳에 오니 창작 욕구가 자극된다고 했다.

박현욱, 〈누군가의 장례식〉, 2025, 신문지에 파스텔, 54×29cm
우리의 거점이었던 칼라스롯갤러리(KalasrotArtGallery.com)는 러크나우 시각예술의 중심이자 19세기 유럽의 살롱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러크나우는 종교적 명소와 역사적 유산이 풍부한 도시다. 품질 좋은 작물과 음식, 수준 높은 문학 활동이 자리하며, 인도에 7곳뿐인 국립미술교육기관인 랄릿칼라아카데미(Lalit Kala Akademi; lalitkala.gov.in)도 위치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익숙한 형태의 근현대 미술 갤러리는 이곳이 거의 유일했다. 현지 작가들은 러크나우에는 제대로 된 미술시장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시각예술에 대한 관심은 깊었다. 컬렉터, 예술가, 학자들이 자주 방문해 작품을 감상하고 교류했으며, 학생들도 찾아와 질문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갤러리 측에서도 우리를 포함해 관계 맺은 작가들에게 작업 공간과 재료 등 물적·인적 자원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작업하며 현지 예술인과 교류할 수 있었다.

레지던시 참여자들, 칼라스롯갤러리 대표 및 러크나우의 예술가들
ⓒ 제공 칼라스롯갤러리
인도의 미술은 전통을 강하게 지키면서도 모던한 인상이었다. 조소는 모던함이 강했고 재료의 물성, 추상 형상, 사회적 이슈를 담은 작품까지 다양했다. 한편 회화는 인도의 설화나 힌두 신화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으며, 마두바니(Madhubani) 회화나 곤드(Gond) 회화 같은 전통 양식에 기반한 작품이 많아 전통성이 두드러지면서도 유화·아크릴과 같은 보편적인 재료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 미술계는 전통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는 듯했다. 칼라스롯갤러리 인터뷰에서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도 우리에게“인도 미술이 너무 전통적인가?”, “얼마나 현대적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러크나우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체류가 아니었다. 나의 창작 세계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혼돈과 조화, 전통과 모던, 다층적 시간이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 나는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로서 어떻게 나아갈지 질문을 받았다. 이 경험이 앞으로의 작업에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 박현욱(1984- ) 영국 UCL Slade School of Fine Art 석사, 서울대 동양화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 독일, 불가리아 등에서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