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아, 〈도축된 소 한마리의 피로 만든 벽돌〉, 2012, 설치, 120×30×70cm
소 한마리를 도축하여 받은 피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벽돌은 피로 쌓아 올린 문명을 암시한다.


어느 민주주의 국가든 여당과 야당이 있고 진보와 보수가 있기 마련이지만, 요즘 한국 사회의 분열 양상은 극단적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도 무조건 양쪽으로 쩍 갈라진다. 법을 비롯한 공공적 규칙 대신에 이해관계에 따른 전략이 앞서며, 거칠고 큰 목소리가 난무한다. 청년 사이에 남/녀 대립까지 심해져서 정치적 입장 차가 있으면 연애나 결혼조차 힘들다고 한다. 국민소득은 선진국 대열에 올랐지만, 또 다른 지표들은 분열의 원인과 결과를 가리킨다. 최고 자살률과 최저 출산율에 대한 통계치는 우리가 부자나라이면서도 견디기 힘든 측면이 동시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대립의 기원은 제국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근대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민주의는 같은 민족간에 대립을 추동하고 이용해 왔다. 지배층이 어느 한 편을 들어주면, 피지배 계층끼리 죽기살기로 싸우며, 의식과 무의식에 쌓인 원한은 대를 이어 전수된다. 유럽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 상당수가 해방 이후에도 내전이 끊이지 않고, 지금도 혼란에 빠져있는 맥락도 이와 비슷하다. 주변 강대국의 이익과 부합됐던 한반도의 분단 또한 국민을 분리 지배하려는 정치세력에 유리하다.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교묘한 권력의 자동적 실행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강력한 변수가 추가되었으니, 그것은 정보혁명이다. 

처음에 군사기술의 하나로 시작된 인터넷은 손바닥 안의 세상인 스마트폰으로 날개를 달면서 대중의 눈과 귀를 온통 모바일 앱에 집중시켰다. 얼마 전 충격적인 계엄 사태로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주 매체가 극단적 주장을 반복해서 인기를 얻고, 막대한 경제적 이익 또한 취하는 SNS라는 분석이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아닌 사필귀전(錢)이다. SNS는 알고리즘을 통해 정보 소비의 방향성을 강하게 자동화함으로서, 정보의 바다라는 애초의 비전과 기능이 무색해진다. 이는 입력보다 출력이, 생산보다 재생산이, 만들기보다 받아먹는 것에만 익숙한 소비 사회와 관련된다. 기술이자 상품으로 이루어진 정보 인프라 안에서 정보 소비자는 정보를 통해 세상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며, 이는 단선적인 사고와 행동 패턴을 낳는다. 분업이 더 체계화된 근대부터 사회적으로 고립된 예술 역시 정보 시대의 유아론(唯我論)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적 고립이 보다 넓고 깊은 세계와의 만남에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은 가능성일 뿐이다.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되려면 전방위적인 실천 감각이 필수다. 작업은 눈과 손가락의 연결이 아닌, 머리와 온몸의 연결이다. 골방이 아닌 통풍이며 단편이 아닌 종합이다. 실제의 실험과 더불어 상상 속에서의 다양한 시도 속에 맹목적 단순 논리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유아론은 손쉽게 개인주의를 가장한 이기주의로 뒤집어질 수 있다. 예술은 극단적 정치세력처럼 목소리가 크지 않지만, 객관적 세계와 담을 쌓는 방식은 유사하다. 소위 말하는 새로움의 창조는 객관적 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현실의 초월은 현실을 포함하는 것이지 피해 가는 것이 아니다. 유아론은 소소한 몽상부터 편집증적인 망상까지에 걸쳐있으며, 이는 자본과 권력의 에너지원이 된다. ‘고독한 군중’은 대중소비사회의 산물이다. 이제 고독할 틈도 없이 쇄도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비슷한 정보 소비의 반복에 의한 자기최면은 개인과 사회 모두를 위험에 빠트린다. 이편이냐 저편이냐에 대한 편리한 방식인 이항 대립의 원리는 철학적으로도 비판되었을 뿐, 해체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관료사회의 형식주의를 타고 교묘한 아전인수적 논리로 변질되곤 한다. 
미술인으로서는 대립과 분열의 무대에 등장했던 물건들이 흥미롭다. 손바닥에 그린 왕(王)이나 이마에 그린(사순절을 기념하는) 재의 십자가, 나치식 경례, 강렬한 염원을 담은 K-Pop의 응원봉이나 붉은 경광등, 응급보온포(은박담요)를 둘러쓴 ‘키세스 군단’, 늘그막에 청년 시절의 객기를 상기시키는 군복과 빨간 조끼, 캡틴 아메리카나 조커의 코스프레 등은 분열과 혼란의 시대를 상징하는 기이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