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현, 헤이리북하우스, 2023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휴가 개관한 지 어느덧 23년이 되었다. 프린지페스티벌의 시각예술 전시를 기획했던 1999년부터 생각하면, 청년미술가들과 동고동락한 지도 26년 째이다. 나와 함께 의욕적으로 창작활동을 했던 청년들은 이제 50대에서 60대 중견작가들이 되었다. 미술계의 시니어 세대에 접어든 이 작가들과의 오랜 인연과 활동을 회고해 보면서, 우리 미술계에서 중견 미술인의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대안공간을 비롯해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나 수많은 작가 공모전, 미술인 지원 사업 같은 공공영역에서 조직되는 지원 프로그램은 대부분 청년 세대에게 집중되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새로운 창조와 혁신이라는 것이 청년 세대의 비전과 노력에 달려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대미술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또 공감을 끌어내는 미술이란 자기 자신과 자기가 속한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유를 보여주는 베테랑 작가의 활동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현대미술은 대단히 철학적이고 사색적이다. 또한, 감각적 표현과 함께 성숙한 세계관과 인생관을 포함해야 한다. 나를 비롯해 미술현장에서 활동하는 기획자와 평론가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다.

지난 2023년 봄 ‘한국 현대미술의 재발견’이란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한길사와 협력해 우리 미술계의 주요 작가인 권여현(1961- ) 작가를 재조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우리 미술계의 대표 화가로 활동해온 권여현 작가에 대하여 더욱 종합적인 이해와 재평가가 필요한 시기였다. 《현대 한국미술의 발견 - 권여현》전에서는 250점의 작품을 통해 서울 순화동천·자하미술관·헬렌앤제이갤러리·북과바디 그리고 파주 잼일레븐·한길북하우스에서 작가의 다양한 예술세계를 대대적으로 선보였다. 


권기수, KH에너지아트스페이스, 2025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해 2025년 봄에는 권기수(1972- ) 작가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아트스페이스휴를 비롯해 서울 KH에너지아트스페이스·CCCA·미음프로젝트스페이스·아트노이드178·스페이스수퍼노말·갤러리JJ와 판교 마음AI&아르스초이 8곳의 전시장에서 밀레니엄 이후 지난 25년간 세계적인 미술가로 활동해 온 권기수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다. 권기수 작가는 회화와 조각, 설치,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표현 형식을 활용해 한국화의 현대화와 세계화의 전면에서 활동해왔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충분히 연구하고 이를 준비하는 시간과 예산 그리고 협력기획자와 전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 프로젝트를 격년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 작가의 전시를 6-8개 처의 여러 공간에서 동시에 개최하는 방식은 우리 미술계에서는 새로운 시도이다. 작품 수가 많지 않은 청년 작가에게는 맞지 않는 방식이지만 중견 작가는 2-30여 년 이상 창작 과정에서 형성되고 변화되어 온 예술세계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소개하고 프로모션하는 큰 장점이 있다. 전시가 가능한 작품이 적어도 300점 이상이 필요하고 동시에 작가의 꾸준한 작업 활동 속에 기획자와 평론가의 텍스트가 충분히 쌓여 있어야 가능한 프로젝트이다. 

생각해 보면 많은 우리 미술인이 청년 시절 조명받고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소수의 작가를 제외하고 중년기를 보내며 많은 작가가 활력을 상실하고 무거운 슬럼프를 경험한다. 이 과정에 많은 미술인이 작가 활동을 접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술 분야에서 청년기는 그리 길지 않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미술계 또한 짧은 청년기를 지나며 막연하고 막막한 어두운 터널과 같은 중년의 시기를 지나게 된다. 따라서 한국 현대미술의 재발견이란 한국 미술계의 중견 미술인의 재발견과 다름없다. 앞으로 더 많은 다양한 방식의 기획과 전시로 중견작가들이 조명 받고 재발견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