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
이선영(미술평론가)
작년 12월 '2030 세계 박람회'의 부산 유치에 대한 기대는 결과와의 차이가 너무 커서 충격을 주었다. 경쟁에서 패할 수는 있지만, 애초에 게임이 안되는 사안에 대해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백군이겨라/청군이겨라’하는 식의 맹목적 대응은 아니었나. 박람회는 미술과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당대에서 첨단을 자랑하는 것들이 총출동하는 문화전쟁의 장이라는 점에 연결된다. 작년에 진짜 전쟁이 하도 많이 일어나서 전쟁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죄스럽지만, 이번 엑스포 유치전에서 ‘하나가 되는 우리’, ‘원팀’ 등, 관련 뉴스를 통해 자주 들려왔던 비장한 멘트에 깔린 것은 전쟁에 임하는 태도다. 1900년 4월 14일에 개막해 20세기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파리 만국박람회처럼 당대의 문화예술에 영향을 준 대표적 예가 있다. 당시 최첨단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안가면 안되는 인기 있는 관광자원이고, 보존해야 할 '세계 문화 유산'의 목록에 오른, 프랑스의 상징처럼 각인된 에펠탑도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워진 것이다.
박람회는 사회적 근대성인 모더니티와 예술적 근대인 모더니즘과 연결고리가 된다. 물질적 발전과 예술적 진보는 상호작용할 뿐, 양자가 하나는 아니다. 행사유치에 관련된 ‘문화전쟁’은 끝나고 이제 대차대조표가 남았다. 2023년 말 엑스포 유치 관련 예산을 최소 5744억 이상을 쓰고도 29표(165개국 가운데 17.6%) 밖에 얻지 못한 객관적 현실에 대한 분석이 중요했지만, 최근 정권의 취향에 의해 길들여져 '국정홍보방송'으로 전락한 주요 언론은 참사 수준의 사건을 없었던 일인 양 없었던 일처럼 덮기에 바빴다. 엑스포 후보지 결정 발표 전날 9시 뉴스 방송 무대를 부산으로 옮길만큼, 마치 다 된 밥인 것같은 축제적인 분위기로 붕 떠 있었기에, 말 없는 추락을 보는 시청자는 황당할 수 밖에 없다. 일반 국민들보다 국제 정세 관련 정보를 조금이라고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국정원이나 외교부는 물론, 주요 방송사도 객관적인 사실 파악을 위한 현장 취재가 아니라,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만으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1900년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전경

로베르 들로네, [붉은 에펠탑], 1911년, 구겐하임미술관 소장
이후에도 근본적 반성이 없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이러한 류의 희망고문이 빈발하게 할 것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괴리라고 생각하기에는 공적 자원이 너무 많이 투입된 이 헛발질에 비한다면, 적어도 예산문제에 관한한 그보다 작은 문제일 수도 있는 예술 작업에 있어서의 이상과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정치인들이 주물럭거리는 예산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는 문화예술 관련 예산 역시 국민의 혈세라는 귀한 공적 자원이기에 검증의 문제는 중요하다. 미술도 제도화 되어서 때가 되면 작가든 기획자든 많은 지원 서류를 작성하게 된다. 그들이 그간 해왔던 성과물만큼이나 계획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지만 대개 1-2년 단위로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계획은 상당 부분 이미 진척이 되어 있어야 기간 내에 현실화가 가능하다. 선정이 되어 예산을 받으면 시작하겠다는 계획은 제대로 실현되기 힘들다.
현재까지는 이렇다가 아니라, 막연하게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계획에 치중한 경향은 공모 영역 뿐 아니라, 이제는 작가가 되는데 필수 코스가 되다시피한 석박사 논문, 소소하게는 평문을 대신하는 작가노트 등에도 많이 발견된다. 평론 등 미술 관련 언론의 역할이 부족해서 의도와 결과의 괴리 사이의 격차는 대부분 검증되지 못하고, 구체적 실행안 보다는 관념적인 수사로 가득한 계획서만이 전시나 행사의 결과물인 양 남아서 담론으로 순환하게 된다. 진짜 진행 중인 작업이나 기획은 연결되어야 하는 결정적 고리들이 구체화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집중한다. 추상적 관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관념적인 담론은 부실한 계획이다. 이런 계획들이 객관적인 자료랍시고 후대에는 중요한 기록들로 간주 될 것이다. 예술은 현실에 비해 이상의 영역이었지만, 작금의 현실에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전략, 경제적 이익 등 거품이 가득하기에, 이를 걷어내는 평형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출전; 서울아트가이드 202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