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소통
이선영(미술평론가)
작가들과의 대화나 그들의 생각이 압축된 작가노트 등을 읽어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소통이다. 모든게 시장으로 나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통은 유통까지 포함한다. 또 다른 단어는 치유인데, 그 또한 소(유)통이 잘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넣은 작품 외에 말이나 글로도 무엇인가 전달해야 하고, 때로는 후자가 작업을 앞서는 상황에 대한 자괴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유아독존할 수 없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소통은 삶에 필수지만, 사회의 주변부로 물러난 예술에서 소통은 더욱 힘들다. 대중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예술은 소수자의 언어가 되었다. 이전 시대가 신화나 종교 등, 공통의 상징적 우주가 있었던 반면, 변화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여 늘 과도기로 다가오는 근대는 공통적 기반이 사라진 것이다. 다른 분야도 사정은 마찬가지지만, 예술의 ‘쓸모와 기능’은 소통이라는 대중의 기대치가 있다. 예술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치는 자기만의 규칙을 구축하여 자율화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근대예술은 소통 보다 존재를 강조했다. 예술은 자기 정체성의 확보를 위해 자신일 수 있는 것을 통해 순수해지려 했다. 예술지상주의를 넘어 형식주의에 이르면 자신만을 지칭하는 논리로 귀결된다.
‘순수’는 근대의 도구적 합리성에 대한 대안이었으나, 이 해방구는 고립되었고, 해방은 동시에 소외가 되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역설이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A는 단지 A가 아니다. A는 A가 아닌 무수히 다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물이 진실로 사물이 되기 위해서는 그 자신과 다른 것이 되어야만 한다. 동일성은 차이에 의해 유지된다’(벵상 데콩브)는 철학적 언명처럼, 순수하다고 가정되는 예술은 물론 자아나 주체의 동일성 또한 타자들에 의해 이미 잠식되어 있다. 정보혁명을 통해 소통만능주의 사회가 도래한 현재, 예술 분야가 먼저 앓았던 병이 일반화되고 있다. 소통을 빙자하여 모든 관계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미디어는 자신만을 지시하는 모더니즘의 모순을 되풀이한다. 미디어를 매개로 한 소통이 진실인가의 문제보다, 이제는 그 생태계에 적응만이 남을 정도로 지배적 패러다임이 되었다. 하지만 기술을 통해 시스템이 더 공고해지는 인간사회에서 아전인수, 자화자찬 등 자기지시적 화법이 여전한 것은 시스템이 결코 중립적이거나 투명한 것은 아님을 알려준다. 소통의 조건은 평등이지만, 현실의 인간은 평등하지 않게 태어난다. 결국 소통은 계층화된 시스템에 기대어 강제로 해결되곤 한다.

김주연, Metamorphosis III 신문 약 20,000부, 씨앗, 비계구조물 380cm(h)x170cm(l)x250cm(w) 2009년.
; 예술작품으로 변모하는 미디어.

2. 박미화, 뿔 달린 소녀, 32x21x78cm, 조합토, 산화소성, 2019년
; 고통 속에서 자라난 예술 작품.
머릿속에 칩까지 이식하려는 최근의 실험들은 보다 효율적인 소통을 위한 것일까. 소통에서 갑의 위치를 자지하는 이들은 권위라고 하지만, 그 권위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의 느슨했던 빈칸들이 더 촘촘히 메워지는 현대사회에서 이해관계는 더 분명하고 첨예해지며, 결론이 이미 나와 있는 상태로 수사학이 소통을 대신한다. 선전이나 광고처럼, 그저 같은 논리를 담은 같은 말을 반복할 따름이다. 우리는 매일의 정치판 뉴스에서 그러한 동어반복의 화법을 듣는다. 옳든 그르든 말빨이 먹히는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한 방향만의 경주 속에서 소통은 허울 뿐이다. 사회 주변부에 위치한 타자인 예술은 다르게 소통한다. 미학, 더 나아가 윤리의 기반은 타자다. ‘타자는 나와 똑같은 위치에 있지 않은 자’(엠마누엘 레비나스)다. 질 들뢰즈는 ‘예술작품에 의해 드러나는 본질은 차이(difference)’라고 하면서, ‘존재를 구성하고 그 존재에 대해 사유하고 이해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차이’라고 말했다. 자연과 역사가 갈라지는 점도 바로 차이다. 예술에서의 차이는 차별이 아니다. 자기지시적인 독백적 화법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은 소통의 전제로 ‘타자를 향한 도약’(가라타니 고진)이나 ‘고통’(프로이트)을 든다. 고통이 도약을 낳고 그렇게 예술적 소통은 시작된다. 반면 말이 말을 낳을 따름인 작금의 지배적 소통 방식은 상대에게 고통을 준다.
출전; 서울아트가이드 2024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