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삶의 감옥으로부터의 탈주
알렉산더 디크 전(2024.11.29-12.21, Jarilager Gallery)
니키 노주미 전(2024.11.13–2025.1.12, 바라캇 컨템포러리)
이선영(미술평론)
무질서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예술
알렉산더 디크(Alexander Dik)와 니키 노주미(Nicky Nodjoumi)의 전시는 보이지 않는 삶의 감옥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의지와 몸짓으로 가득하다. 탈주를 위한 탈주가 아니라 현실과 싸운 흔적이며, 코드화를 통한 자동적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화면 자체가 상처를 받아낸 흔적처럼 어지러운 알렉산더 디크, 작품마다 총탄 자국같은 얼룩이 산재하는 니키 노주미의 작품은 어설픈 승화보다는 현실의 충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들의 작업 방식과 형식은 메시지와 연관된다. 알렉산더 디크는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작업한다. 자신의 행동이나 물감 자국, 심지어는 담뱃재까지 작품이 된다. 니키 노주미의 모노타이프는 흘러나온 체액처럼 물감을 찍어낸 낱장의 종이들로, 적게는 4장 많게는 18장까지 이어붙여 현실의 공백 또는 빈틈을 내보인다. 망명 중에도 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니키 노주미의 작품 속 격자는 현실을 정확히 재현하기 위함이 아니라 변형하기 위함이다. 알렌산더 디크의 얼룩덜룩한 작품은 ‘순수’ 예술을 오염시킨다. 그들의 작품은 질서와 무질서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마침 그들의 전시 기간 중에 한국에서의 계엄령 사태는 현대예술가들이 왜 이런 작품을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내란 사태가 터졌을 때 ‘질서 있는 퇴진’이 대안의 하나로 제시됐다가 곧 무산됐다. 내란 주동자는 법적 질서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고, 그 비슷한 아바타들로 정부 기관들이 채워지다시피 하면서, 법의 산물이자 그것을 지탱해주기도 하는 관료제도의 중심이 사욕과 아집으로 가득했기에 국민의 심판 외에 질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국민들은 그들의 법과 제도가 더 이상 질서 있다고 보지 않았다. 물론 권력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야광봉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무질서하다고 봤을 것이며, 총을 앞세운 ‘압도적’ 힘만이 질서를 되찾을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 질서/무질서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재현주의로부터 벗어난 현대미술은 저항적이든 아니든 무질서하다고 간주되었다. 이주자인 알렌산더 디크나 망명자인 니키 노주미에게 다가온 현실은 조화로운 질서와 거리가 있었다. 피상적인 질서에 틈을 내고 뒤틀고 지우고 변형하는 그들의 작품 또한 무질서하다고 비난받을 수 있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 괴물이 되어선 안된다고 한 철학자의 조언도 있었지만, 질서의 부재와 그에 따른 부자유는 그들의 작품 중심을 관통하는 작업의 동인이 되었다.
스탈린이나 히틀러같은 독재자들이 질서의 대명사인 신고전주의를 애호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신고전주의는 질서에 대한 그들의 이상을 재현했다. 혼돈에 맞서는 질서의 이상을 앞세운 예술이 있다면, 이 전시의 작가들은 그 반대이다. 그들이 본 현실은 삶과 독재자의 폭력으로 가득한 혼돈이었다. 독일계 러시아인으로서 가난한 이주자였던 알렉산더 디크에게 예술을 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문턱을 넘는 도전이었고,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은 철권으로부터 망명한 니키 노주미에게 저항하면서 작업하는 삶은 위험으로 가득했다. 정주민들의 아늑한 질서는 이주자와 망명자에게 먼 현실이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방해꾼에도 그들이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은 대안의 질서를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질서 있는 현실에 대한 예술의 반응은 격렬한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보이는/보이지 않은 삶의 감옥으로부터의 탈주의 여정에서 혼돈과 질서는 결합되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카오스모제]에서 ‘혼돈(chaos)과 질서(cosmos), 상호침투(osmose)를 결합시킨’ 신조어를 만들어 ‘카오스와 복잡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조직화 과정’을 설명했다.

Alexander Dik, Das Altgeborene (The old born) 2024 Oil on linen 60 x 50 cm , Courtesy of the Artist & JARILAGER Gallery

Alexander Dik, Kampfbefleckt (Battle-stained) 2024 Oil on linen 200 x 150 cm , Courtesy of the Artist & JARILAGER Gallery

Alexander Dik, Podium 2024 Bronze, patina 24 x 18 x 42.5cm , Courtesy of the Artist & JARILAGER Gallery
이주와 망명의 예술가
카자흐스탄에서 독일계 소수 민족으로 분류되는 ‘러시아계 독일인’(Russlanddeutsche)이었던 알렉산더 디크는 동유럽 음식 전문 슈퍼마켓 체인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며, 밤에는 슈퍼마켓 지하의 어둡고 답답한 비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려왔다고 한다. 그는 35세가 돼서야 베를린 예술대학에 입학해 ‘화가로서의 운명’을 정식으로 시작한다. 아이가 그린듯한 활달한 필치의 작품 한가운데 작가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자리한다. 모든것이 불확실해질 때 자아를 중심에 세우는 낭만주의적 태도이다. 이방인의 만만치 않은 삶의 한가운데서, 일기를 쓰듯이 그렸고, 그것은 그를 다시 형성해 주었다. 전범국이었던 독일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금기시된 내용도 피하지 않았다. 현실처럼 인종적, 사회적, 계층적 지위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이 주인이 되는 장으로서의 예술이다. 예술은 삶의 방해, 또는 압박이 클수록 반동도 커진 자유에의 의지이다. 작품 [The old born]의 인물은 얼굴이나 상황을 알 수 있는 배경 또한 지워졌다. 꼬리를 밖으로 길게 뺀 검은 얼룩들이 얼굴을 공격하는 듯하다. 머리카락도 없이 둥글게 그려진 얼굴을 견고하다. 그는 작품을 통해 삶의 상처를 모두 받아냈다. 쉽게 화해하거나 치유하는 몸짓 대신에 투쟁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The old born]과 짝을 이루는 [The new born]은 얼굴이 비로소 생겨났고, 바깥에 대해 더 개방적이다. 새롭게 변신한 몸은 빛이 솟아나는 듯하다.
작품 [Battle-stained]는 끝나지 않는 싸움에 지친 듯하면서도 영웅적이다. 대안적 삶인 예술 또한 투쟁이다. 오랫동안 독학을 하기도 했던 그가 참조했던 위대한 화가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스타일이나 구성, 이름을 작품에 넣기도 한다. 작품 [Referee]에서 그는 잭슨 폴록부터 바젤리츠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화가와의 대화적 관계를 시도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처럼 넓게 쓱쓱 만든 선이자 면들은 가로 방향이든 세로방향이든 화면 중심의 주체를 지우려 한다. 그 와중에 생겨난 우연적 얼룩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변모한다. [short knives]와 [long knives]에서는 칼같이 뾰족하고 공격적인 도구가 등장한다. 인체가 분자적으로 해체되어 확산 된다. 환희와 죽음은 모두 정체성의 경계를 풀어헤친다. 그가 받은 상처와 압박만큼 되돌려주는 상징적 행위로서의 예술이다. 알렉산더 디크의 브론즈 작품들은 사지가 잘린 듯한 몸통이다. 푸른색 덩어리에 단면이 강조된 그의 조각은 토르소가 가지는 고전적 안정성이 아닌 말 그대로 단편화된 몸이다. 기존의 확실성은 잘려 나가고 분열된다. 그러나 그에 머무르지 않는다. 주체든 세상이든 통합된 이미지가 무엇인지는 미지의 상태다. 미지의 향한 움직임이 작품의 내적 역동성을 만든다. 작품 [Weightless]에서 무중력 상태처럼 붕 떠 있는 형태는 삶의 중력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구가하며, 생경한 색감과 거친 선으로 그려진 [Shift]에서 관객을 응시하는 작품 속 인물은 야성적이다.
니키노주미의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전에는 1979년 이란 혁명 이전의 작품 세 점과 이란을 떠나 미국 망명 직후 1981년 마이애미에서 제작한 모노타이프 60여 점이 출품되었다. 테헤란에서 미술대학을 나오고 파리로 미술 장학생으로 간 작가가 맞은 것은 68혁명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꽃은 68혁명의 상징이기도 했고, 이후에 자유의 바람이 부는 어느 곳이건 보편적 상징으로 피어올랐다. 그의 작품은 팔레비 왕조는 물론, 그 이후 호메이니 지도자 하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 모두와 친할 수 없었다. 깃발처럼 여럿이 함께 세운 붉은 꽃은 그만큼의 희생이기도 하다. 총은 전쟁을 꽃은 평화를 상징하지만, 어느 순간 경계는 사라진다. 평화를 위한 전쟁, 자유를 위한 질서 등등, 일직선을 향하는 투명한 논리와 달리 현실은 돌고 도는 역설이다. 이슬람풍의 전사가 깃발처럼 세우고 있는 총 끝의 꽃은 불을 뿜은 화기나 그에 따르는 피 등을 동시에 떠올린다. 발포되는 총은 쓱쓱 지워진 듯한 배경처럼 문명과 인간성을 소멸시킬 것이다. 작품 [굳건히 서다]에서 붉은 마스크가 뒤집어 씌워진 인물은 독재체제의 특징은 불법적인 체포, 구금, 고문, 살해 등을 떠올린다. 권력의 불법적 행동은 쥐도새도 모르게 행해진다. 작품 [걷기 그리고 말하기]에서 피를 흘리고 바닥에 쓰러진 사람, 그 아래 화면에서 걷는 사람의 하체는 수평/수직의 대조로 죽음과 삶을 표현한다. 봉건적, 또는 근대적 독재 체제에서 테러와 암살은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 지배자의 질서가 무질서한 이유이다.

Nicky Nodjoumi, Standing Tall_1976(이하 모든 사진은 바라캇컨템포러리에 있음)

Nicky Nodjoumi_Walking and Talking_1976

Nicky Nodjoumi_The Blue Horse_1981
종이에 모노타이프로 만들어진 작품은 종이 하나가 단위가 되어 퍼즐처럼 그림이 맞춰진다. 작가가 처한 정치적 상황과 관련하여, 오늘은 여기까지 그려서 맞추었지만 나머지 조각들을 무사히 완성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과 긴급함이 내재한다. 실제로 이란 혁명이 일어난 1979년 이후 그의 작품들은 당국의 감시를 받고 다수가 소실되었다. 이란의 모스크를 뒤덮는 정교한 추상적 패턴도 그렇고 전통적 상징의 세계는 그렇게도 질서 있고 조화롭지만 현실은 또 다르다. 이념과 체제로 대결 국면에 있는 세계는 고유의 문화는 이중적 역할을 한다. 억압자와 저항자에게 다르게 읽히고 활용될 수 있다. 여러 화면의 조합 속에서 원근법은 뒤죽박죽이고 화면들 간의 틈새는 굳이 조율되지 않는다. 작가는 그것들이 이어져 있는 것임을 숨기지 않는다. 작품 [자는 사라]에서 화면 위에서 내려오는 붉은 발은 소녀가 내일도 편안하게 잘 수 있을까를 묻는다. 단편들에 보이지 않는 맥락을 부여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총탄처럼 박혀있는 하얀 구멍들이다. 여러 작품에서 보이는 총탄같은 상흔들은 폭력의 편재를 말한다. 두 손을 들거나 한 손을 드는 것은 가장 직접적인 몸의 언어이다. 지배와 권력이 최종적으로 향하는 몸은 불안하다. 작품 [군중 속의 사라]에서 여러 작품에 끼워 넣어진 여성의 옆얼굴은 장면의 관찰자처럼 보이며, 관객 또한 관찰자에 합류한다. 현대과학이론이 예시하듯이, 관찰은 그자체로 현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시대의 증인으로서의 예술도 마찬가지다.
출전; 아트인컬처 2025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