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자리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이선영(미술평론가)
윤종주의 캔버스는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 보는 창이나 거울이 아니라, 주변의 빛과 반응하는 민감한 판같이 작동하면서 시선에 따라 서서히 달라지는 빛깔이 특징이다. 고정된 형식인 회화에 특별한 기계장치 없이 색으로만 움직임을 담은 것이다. 둥글거나 사각형인 캔버스 형태들은 이런저런 구성을 피하고 그저 수직, 수평으로 나열되곤 한다. 그의 작품은 벽에 설치된 캔버스들 사이의 조그만 틈이나 모서리, 가장자리까지 민감하게 작동한다. 통상적으로 색도 상징을 통해서 의미와 연결되지만, 여기에서 색은 코드화로 고정되지 않고 계속 미끄러지며 변동한다. 이 이름붙일 수 없는 색들은 시간이라는 불안정한 요소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기계적 시선이 아닌 요동치는 육안에 호소한다. 질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빛은 시간이고 색은 공간’이라고 정의 한 바 있다. 또 다른 책에서 질 들뢰즈는 ‘시간은 기억이고 공간을 지각’이라고 말한 바 있으니, 빛-시간-기억/ 색-공간-지각이라는 관계적 개념 쌍이 성립된다.

cherish the time-veiled, 100x180cm, acrylic, medium on canvas, 2024

cherish the time-veiled, 100x180cm, acrylic, medium on canvas, 2024
작가는 ‘나의 작업들은 색채를 통한 공간성과 그 특유의 물질성과 형태를 실험하는 작업으로 요약된다. 색채를 통한 서정성, 깊이감을 표현해 왔다’고 하면서, ‘다양한 재료 체험을 통해’ ‘색과 색 사이에 존재할 법한 제3의 색,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간, 수많은 기억들을 다양한 물성을 통해 고요하고도 깊이 있는 감성을 전달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시간이라는 키워드는 최근 발표된 [Cherish The Time] 시리즈의 제목에도 나타나며, 소주제인 [Promenade]는 음악적 은유를 통해 시간을 도입한다. 해가 지거나 뜨는 대자연이나 음악의 중심축은 시간성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작품 사이로 산책을 하며 거친 파도가 방파제를 뚫고 나오는 해안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금새 철분이 가득한 토양을 매만질 때의 촉감과 공기가 느껴지는 부호화된 색면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감각의 논리]에서는 화살표가 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에 대해 ‘밝은 황토색으로부터 붉은색으로 시선을 미끄러지게 하는 어떤 역동성’으로 해석한다.
윤종주의 경우 최소한의 이미지나 기호도 없이 그러한 색/빛의 운용을 보여준다. 굳이 어떤 구체적 현상과 비교하자면 미묘하게 변화하는 하늘이나 그것을 비추는 수면이다. 캔버스라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넘어서 그 안팎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은 빛과 같은 속성을 가진다. 그의 작품은 성급하게 의미를 읽어내려는 눈을 무시한다. 사낭꾼처럼 의미를 읽고자 하는 시선에 순순히 걸려드는 것이 없는, 때로 단조로워 보이는 색의 실험 하나에 집중하는 추상회화다. 적지 않은 작품을 걸어도 그의 전시장은 고요하고 단순하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미술사적 사조를 논외로 치고, ‘미니멀’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최소한에 최대한을 담는다는 의미가 있다면, 그의 작품은 내포적 다양성을 위한 엄밀한 실험 장치같다. 전시장은 캔버스 하나가 구조적 단위가 되어 맞춤형으로 도열한다. 퍼즐이 잘 맞춰진 것 같은 안정감은 색을 빛으로 운용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 캔버스들은 가로로, 또는 세로로 배열됨으로서 차이의 가늠자가 된다.

cherish the time-veiled, 150x150cm, acrylic, medium on canvas, 2023

cherish the time-veiled, 100x100cm, acrylic, medium on canvas, 2024
화이트 큐브에 나열된 색 면들은 사이에 간격을 약간 두기도 하면서 공간의 조명 또한 작품의 내재적 요소로 끌어들인다. 색/빛의 현상이 충분히 펼쳐지게 마련된 표면들은 미세한 차이가 포착되는 장이 된다. 조지 존슨은 [세상의 비밀을 밝힌 위대한 실험-우주의 작동원리를 탐구한 10가지 실험들]에서 간결한 실험설계에 따라 정확하게 수행된 실험들은 아름답다고 평가하면서, 거기에는 군더더기 없는 그리스 조각상처럼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있다고 평가한다. 단순한 실험 장치를 통해 혼돈과 모호함이 순식간에 걷히고 자연에 대한 새로운 도약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실험...]의 저자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우주의 비밀 한 조각을 단단히 쥐고 있는 의문점을 자연 속에서 찾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자연이라는 거대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미지의 조각 하나를 실험대 위에서 밝혀내던 시절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술에서는 자본과 기술이 집약되어야 가능한 분업화된 시스템으로서의 과학기술에서 불가능해진 직관적 실험이 가능한 몇안되는 영역 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자기만의 비법을 실험하는 윤종주의 작품은 그리기보다는 만들기에 가깝다는 점에서 근대 과학 이전의 연금술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언어로부터 빠져나가는 색채를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 화가다운 작가다. 1971년 생인 작가의 이전 작품도 형태라 할만한 것은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 조각이나 모호한 형상 내지 흔적인 얼룩같은 양상이었다. 2010년 갤러리 진선에서의 개인전 [Solid-Flexible]의 전시된, 종이나 패널 위에 파라핀으로 만든 작품들이 그 예다. 그의 작품은 캔버스 위에 액상의 물감을 부어 재료의 유동성을 활용하기에 붓질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유연하고도 반투명한 재료를 통해 의도에 좀 더 가까운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다. 최근 작업은 수차례 밑칠한 캔버스 위에 잉크, 아크릴 칼라, 미디움을 섞어, 둥글고도 유연한 형태의 이미지를 만든다. 잠잠한듯해 보이는 이미지의 물성은 기울기를 만들어, 그라데이션되면서 시간을 머금은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색면이 쌓인 매끄러운 표면은 깊이가 있다. 이 층들의 상호작용으로 색이 달라진다.

cherish the time-veiled, 56x72cm(x3), acrylic, medium on canvas, 2023

cherish the time-veiled, 150x150cm, acrylic, medium on canvas, 2024
그의 작품은 깊이와 움직임이 있는 표면이 특징이다. 작업 과정에 접어넣은 시간의 층이 관객의 시점에 의해 펼쳐지는 형국이다. 특히 색면의 층들을 쌓은 후 모서리의 물감을 닦아내 생기는 경계가 중요하다. 변화가 왕성한 지점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에 있다. 재현과는 무관한 시공간에서 사건들이 벌어진다. 윤종주의 작품에서 색1에서 시작하여 색n으로 넘어가는 순간들은 색과 빛의 관계를 강조한다. ‘빛을 받은 물체가 어떤 파장의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가에 따라 나타나는 물체의 빛깔’(다음 백과사전)이라는 색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참고하자면, 윤종주의 작품은 빛깔이 펼쳐지고 접혀지는 물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인용한 조지 존슨의 [위대한 실험...]은 ‘색이란 빛과 어둠의 혼합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한다. 이후 근대를 열어제친 과학자 뉴턴은 ‘색은 곧 빛의 굴절’임을 발견한다. 뉴턴은 ‘이 세상이 색으로 가득한 까닭은 물체마다 각기 다른 한 종류의 빛을 다른 빛보다 더 많이 반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색에 대한 과학적 학설은 예술도 참조할 수 있다. 뉴튼의 역저 [광학]은 우주론과 형이상학까지 포괄한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자연광이나 인공광을 만난 윤종주의 캔버스에서 색은 물질과 빛이 만난 결과물인 것이다. 제임스 글릭의 평전 [아이작 뉴턴]에 의하면, 뉴턴은 서로 다른 굴절률을 이용하여 색을 분류했다. 각각의 색은 다른 파장과 진동수를 가지는 각각의 색은 미세한 측정 가능한 차이를 전제한다. 뉴턴의 실험기구인 프리즘에 버금가는 윤종주의 캔버스는 유동하는 차이의 계열이 펼쳐지는 장이다. 색의 층들로 이루어진 밀도 높은 화면은 색과 빛의 호환성으로 인해 그 물질성이 약화 된다.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이 추상회화는 거울이나 유리창처럼 투명하다. 그것은 의미를 실어 나르는 투명함이 아니라 감각을 담아내는 투명함이다. 2023년 개인전에 출품된 [cherish the time-circle] 시리즈는 하나, 또는 여럿이 동시에 작동되면서 관자의 시선에 의해 켜지고 서서히 변하는 미광(微光)으로서의 색을 보여준다. 캔버스는 하늘빛을 비추는 웅덩이처럼 빛깔을 담는 용기(容器)가 된다.

cherish the time-line 24080001, 56x72cm(x4), acrylic, medium on canvas, 2024

cherish the time-line 23080001, 56x72cm(x4), acrylic, medium on canvas, 2023
아크릴과 미디움같은 회화적 재료를 통한 광학적 효과에서 붓의 역할은 크지 않다. 캔버스를 일련의 단위 구조로 삼아 설치함으로서 생기는 움직임도 가세한다. 충만한 순간은 고정되지 않고 지속된다. 변화는 작품 내부에서도 작품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해가 뜨고 지는 얼마간의 시간 동안 이동하는 시점에 의해 포착되는 미묘한 빛과 유사하다. 매일 반복되는 우주의 드라마를 작품 안에 효과적으로 넣기 위해 작가는 시간이라는 변수를 고려했다. 캔버스 가장자리는 한 작품에서도 여러 번 바뀌는 빛깔이 활성화되는 곳이며,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순환적 틀이다. 색과 색의 전이는 고체나 액체가 아니라 기체처럼 퍼진다. [cherish the time-promnade] 시리즈는 띠 형태의 캔버스를 수직, 또는 수평으로 이어 설치한 작품으로 간주곡(promnde)을 들으며 걷는 시간성이 내재한다. 관객의 시선은 각기 다른 울림을 가지는 시각적 건반을 두들긴다. 같은 규격의 캔버스 여러 개가 세로로 병렬된 화면은 비슷한 계열의 색들이 모여있는데, 빛을 발하는 색면들은 고정될 수 없는 차이로 진동한다.
출전; 퍼블릭아트 2025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