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약] 한국현대목판화 70년, 전통의 수용과 현대적 변용
고충환 | 미술평론가
판화에는 오리지널 판화와 복제판화 두 종류가 있다. 오리지널 판화란 통상적으로 말하는 판화인데 한문으로 옛날에는 板畵로 쓰였으나 지금은 版畵로 쓰고 있다. 이는 오래전에 나무에만 새겨서 찍어내는 방법에서, 근대 현대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인쇄 방법이 발명된 것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1) 실제로도 18세기까지만 해도 목판화가 대세였고, 나머지 판법은 모두 19세기 이후 새로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여기에 목판화는 기본적으로 볼록판이지만, 하기에 따라서 오목판도 나아가 평판마저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목판화는 사실상 모든 판화의 모태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3) 이처럼 목판화는 다른 판화와 비교할 수 없는 역사와 전통을 내재하고 있고, 여기에 모든 현대에 어울리는 자기 변신이 가능한 미디어,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면서 아우르는 미디어로 거듭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현대목판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시점은 어떻게 설정될 수 있는가. 종교적인 경전이나 시전지(편지지)와 같은 생활 속 쓰임새를 위해 제작된 판화를 생활판화라고 한다. 이런 생활판화로 치자면 그 기원이 더 위로 소급되는 것이지만, 생활판화를 현대목판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현대목판화는 어떤 계기로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개인전이 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활 속 쓰임새가 아닌, 순수한 심미적 동기가 작동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강열이 목판화로 개인전을 연 1952년으로 그 시점을 소급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4) 아무래도 진정한 계기로 치자면 집단창작행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떤 계기로부터 비롯했는지 보는 것이 일반적일 수 있다.
그렇게 한국현대판화의 시점은 이항성이 아연판으로 제작한 석판화로 첫 개인전을 연 것을 계기로 한국판화협회를 창립한 1958년으로 소급된다. 5) 그리고 1968년에는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창립된다. 그리고 이후 1970년에는 동아일보가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를, 그리고 1980년에는 공간이 공간국제판화전을 각 창설했다. 특히 공간국제판화전은 공간국제소형판화전이 원래 명칭이었는데, 소형 판화의 미학적 가치를 지향했다. 출품 작가의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 공모전 형식을 취한 것이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와 다른 점이다. 이후 소형 판화에 제한하는 제한 규정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고, 향후 보다 자유분방한 현대판화를 수용할 요량으로 규격 제한을 폐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5년에는 각 서울판화미술제와 내일의 판화전이 열렸다. 같은 해 한국판화미술진흥회 설립을 계기로 열린 서울판화미술제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초의 판화 전문 아트페어를 표방했고, 이후 판화와 함께 사진과 조각을 아우르는 에디션아트페어로 개칭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서울판화미술제에 자극받아 열린 내일의 판화전은 연이은 3회 전시 후 폐지되었다. 서울판화미술제가 판화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를 꾀했다면, 내일의 판화전이 순수판화의 표현 가능성과 실험적 모색에 있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판화를 대상으로 한 모든 전시에 있어서 한국판화협회와 한국현대판화가협회는 때로 견인차 역할을, 더러는 견제책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한국현대판화를 선도해왔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는 국내적으로 좌우 이념대립이 첨예했던 시대다. 미술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노크롬(단색화)으로 대변되는 제도권 미술과 민중미술로 대변되는 참여미술이 대립했다. 참여미술, 정치미술, 현실주의 미술을 표방한 민중미술은 당시 형상성에 바탕을 둔 소위 형상미술에서 예술의 실천 논리와 당위성을 찾았다. 전통적인 아카데미 풍의 미술과 구상 회화와의 차별성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형상미술 외에 당시 민중미술에서 유래한 용어로는 매체 미술도 있다. TV와 신문과 같은 대중매체에 나타난 사회문화적 현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성의 회화를 의미했다.
형상 미술과 매체 미술은 말하자면 민중미술을 위한 실천 논리의 두 축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형상성을 획득해야 했다. 그 이론적 근거를 주로 게오르그 루카치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에서 가져왔는데, 반영이론, 전형이론 그리고 총체성 이론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에서의 형상성(그리고 형상 미술)이란 당대적인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영하는 형상을, 현실을 함축한 전형적인 형상을, 그리고 총체적인 국면을 반영한 형상을 의미했다. 민중미술에서 형상이 강조돼 보이는 것도 알고 보면 바로 이런 극적인 현실(극화된 현실)의 표현과 함께 사회적 현실의 전형적인 국면이 강조된 것에 따른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와중에 민중목판화운동은 민중을 계몽하고 선동하는 도구로서, 민중에 파고들기 위한 도구로서 역할을 하는 것에서 예술의 당위성을 찾고 실천 논리를 찾았다. 시위를 위한 걸게그림과 휘호, 포스터와 삽화 등 광범위한 경우에서 그 쓰임새를 찾았는데, 아마도 소통의 매개체로서의 판화가 갖는 가능성에 주목했을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경우가 처음은 아닌데, 1920년대 카프 운동에서도 역시 판화는 선전 수단으로서 널리 제작되고 유포된 사례가 알려져 있다.
지금은 목판화가 다른 판화 중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옛날에는 판화라고 하면 목판화가 당연시되었다. 그만큼 동양에서 목판화의 전통은 깊다. 더욱이 한국은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보유하고 있다. 판화의 역사가 인쇄의 역사로까지 소급되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한국에서 목판화의 전통은 가히 유서 깊은 것이었다고 할 만하다. 이런 뿌리 깊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한국현대목판화는 현대적 시대정신과 감수성에 맞게 자기 변신을 꾀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현대적 시대정신은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를 반영하고 표현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현대적 감수성은 주로 형식적인 표현의 확장을 꾀하는 식으로 발전해왔다. 주로 전통적인 칼과 판의 확장과 변용을 중심으로 자기 변신을 꾀해온 것이다. 먼저 칼의 확장을 보면, 전통적인 조각도를 비롯해 주걱 칼, 소형 드릴, 레이저커팅, 그리고 여기에 프로토타입 기법을 전용해 그 표현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판의 경우로는 전통적인 송판을 비롯해 합판, 리놀륨, 그리고 우드락과 포맥스와 같은 동시대적 신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에 때로 칼의 확장과 판의 확장에서 나아가 공간 확장을 꾀하기도 하는데, 그 자체 설치작업의 한 경우로 보아야 할 설치판화가 그렇다.
현대미술과 관련해서 판화는 일종의 멀티플 플랫폼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다른 매체와의 호환을 매개하고 견인하는 미디어라는 말이다. 종 다양성 개념이 미덕으로 운운 되는 현대미술의 자장 속에서 가장 강력한 미디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해체하면서 그렇게 할(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일전에 다른 원고에도 썼지만, 판화에서 판법으로 가야 한다. 판화가 판화의 장르적 특수성에 한정된 개념이라면, 판법은 판화의 장르적 특수성의 경계를 넘어 회화의 표현 방식을 다변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판화는 회화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이번 전시는 목판화와 관련한 전통의 수용과 현대적 변용을 한자리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 드문, 귀한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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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자현, 오리지널 판화와 복제판화 및 인쇄물의 개념.
2) 정원철, 본 전시 <한국현대목판화 70년> 전을 위한 집담회, 경기도미술관.
3) 김준권, 본 전시 <한국현대목판화 70년> 전을 위한 집담회, 경기도미술관.
4) 김진하, 본 전시 <한국현대목판화 70년> 전을 위한 집담회, 경기도미술관.
5) 이항성은 한국판화협회를 창립한 1958년 미국 신시내티미술관에서 열린 제5회 국제현대컬러리토그래피전에 입상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항성에 앞서, 1905년 해강 김규진이 시전지를 석판화로 제작한 것(난초)을 계기로 1905년을 한국 근대판화가 시작된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