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프라맹스-풍경〉, 2016, 패널에 OPP테이프, 아크릴, 45×60cm


김이수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바람이 불지 않는 잔잔한 날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볼 때처럼 고요한 평정심이 찾아온다. 그러한 감정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파아란 색채일까? 수평의 구도? 이처럼 신묘한 기분에 빠져들 수 있다니, 이것이 바로 김이수의 작품이 지닌 힘이자 매력인가 싶다. 

김이수가 단색의 세계에 빠져들어 온갖 실험을 기울인 지도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한국 후기 단색화 대표작가 중 한 명인 김이수는 자연의 풍경을 소재로 삼아 단색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열정을 다한다. 이른바 앵프라맹스(Inframince)라고 하는 ‘미세한 차이’에 착안하여 이를 어떻게 표현할까 늘 고심한다. 자연에 내재한 색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공물인 물감으로 치환, 시각화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일은 과학이지만, 그것을 캔버스에 옮기는 일은 예술이다. 따라서 예술가에게는 상상력과 지성의 작용이 필요하다. 김이수의 그림을 바라볼 때 우리는 바다와 노을, 초원을 연상한다. 시각적 경험에서 연유하는 이 같은 연상은 당연한 일이다. 김이수의 그림은 그처럼 자연을 연상시키는 단초로서 세계를 연다. 풍경으로서의 그림, 이에 대해 일찍이 미술평론가 김복기는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내가 보기에 그 풍경은 우주를 연결하는 하늘이요, 왕양한 바다요, 땅을 딛고 끝없이 펼쳐지는 대평원으로 보인다. 이른바 숭고미(sublime)로 가득 찬 풍경이다. 김이수는 이 풍경이 자신의 과거 추억이나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풍경은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 낯이 익다. 언젠가 한 번쯤 가 본 적이 있는 풍경처럼 보인다.”
이러한 기시감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칸트(Kant)가 말한 이른바 공통감에 기반한 풍경이란 대중적 공감이 필수, 거기에 보편적인 미적 승화가 따른다. 아니, 보편적인 미적 승화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적 공감이 따른다는 게 보다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처럼 보편적인 대중적 공감을 자아내기 위해 김이수는 오랜 세월을 테이핑 작업에 바쳤다. 캔버스에 테이프를 붙이고 그 위에 서로 다른 미세한 차이를 지닌 물감을 칠하는 반복적인 작업을 지속해 온 것이다. 


〈앵프라맹스-인카운터〉, 2024, 캔버스에 아크릴 2024 97×162.2cm 
ⓒ 김이수, 조은숙갤러리


강남의 조은숙갤러리에서 열린 《김이수 초대전》(3.6-3.29)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이번 전시는 기존에 해오던 수평적 구도가 아니라 수직적 구도가 특징이다. 마스킹 테이프로 화면을 분할한 뒤 그 위에 청, 황, 녹 등 색상의 미요한 차이를 지닌 단색의 아크릴 물감을 반복적으로 칠해 그라데이션 효과를 낸 것이 제작의 핵심이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이 〈앵프라맹스-풍경(Inframince-Landscape)〉이다. 

앵프라맹스란 현대미술의 비조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창안한 개념으로 지각적으로 감지하기 힘든 ‘미세한 차이’를 뜻한다. 과연 김이수의 이번 출품작이 그랬다. 얼핏 보기에 붓질인 듯 싶은데 실제로는 무수한 테이핑 작업의 결과다. 계획된 화면분할이 이렇듯 정교한 우연과 무작위적 효과를 낳았다니 그것을 창출한 끊임없는 열정과 에너지가 놀랍다. 김이수의 그림은 수없이 반복된 미세한 띠들이 모여 벌이는 단색의 향연이다. 푸른색, 황색 등 단색으로 이루어진 화면은 차분히 가라앉아 정적인 느낌을 준다.   
선(禪)이 지향하는 세계와도 흡사한 김이수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색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봄으로써 내면의 소릴 듣는다는 이 역설! 역시 김이수는 후기 단색화의 정예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