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영, 〈진주-밥〉, 2019, 담수진수, 사기그릇, 9×11×11cm


미술은 또 다른 현실을 만든다.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작가에 의해 가상으로 만들어진 유사 현실, 가짜 현실이거나 몽상이자 환상 또는 환영이다. 
이미지Image는 마술Magic이다. 미술은 마술적인 행위처럼 늘 보던 세계와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우리 눈앞에 존재하지 않은, 존재하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고 만날 수 있게 한다.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하고 보여지지 않던 것을 보여주는 일이자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느 모습을 펼쳐내는 것이다. 그러니 미술은 다분히 마술적인 일이고 마법에 가까운 것이다. 마법사에 가까운 예술가는 몽상가이고, 새로운 환영을 창조하여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보여주고 관습에서 이탈한, 다른 경로에서 포착한 것을 호출한다. 
미술가에 의해 불려 나온 생경한 흔적을 통해 우리는 새삼 보는 법을 배우고 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도 접하고 새로운 감각과 마음을 만나고 놀라운 물질의 힘과도 마주한다. 그래서 미술 작품을 보는 일은 모종의 꿈꾸기이며 환상을 통해 이 현실을 빠져나가는 출구가 되기도 한다. 주어진 삶·일상의 풍경·낯익은 사물과 잠시 결별하면서 이런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의 새로운 얼굴과 마주하고 익숙함에서 벗어나 다른 감각과 감수성의 발생을 경험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세우는 일이기도 하고 어제와 이별하고 지금의 나로부터 새로운 나로 나아가게 해준다. 그래서 좋은 미술은 선한 마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과 세계를 재구성하게 한다. 지금까지의 자신과 완연히 다른 존재를 만들어낸다.
이 세계는 본래 그렇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술가는 각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보인다. 우리가 많은 미술 작품을 접하면 접할수록 그만큼 세계는 더 많아지고 풍성해지며 더욱 크고 넓은 경험을 겪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성숙한다.

물질을 빌어 모종의 형상과 눈에 호소하는 흔적을 만들어 보이면서 다가오는 미술은 먼 곳에서 온 미지의 손님과도 같은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좋은 작품은 이상하고 낯설고 기이한 몸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얼굴로, 사랑스러운 음성으로 다가온다. 마치 바닷물이 밀려오듯이 쉼 없이 들이친다. 미술작품은 사랑스러운 것이다. 우리의 눈과 마음에 다가와 적셔지며 흡입되는 농밀한 자극이다. 그 자극으로 인해 우리는 보다 섬세하고 조심스러우며 신중한 태도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힘을 얻는다. 주의 깊은 관찰과 흥미로운 상상력과 열린 감각으로 사물과 세계를 대하고 그를 통해 더욱 진지한 삶을 추구하도록 독촉받는다. 
사람이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하는 주된 이유는 자신의 몸을 적시는 미움을 중화시키고 싶은 욕망에서 일 수 있다. 미움과 질투가 바글거리는 삶 속에서 사랑을 떠올리는 자만이 이 현실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그래서 개인적으로 언제나 물밀 듯이 스미는 몽상처럼 비체계적이고 일탈로 다가와 이해되고 적셔진다. 결핍으로서의 사랑이기에 그것은 차라리 그리움과 가깝다. 그 결핍으로서, 부재로서의 사랑을 온전하게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기는 가능하지 않다.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리워하고 부재하는 것에 대해 꿈을 꿔보는 일, 안타깝게 그림으로 그려보는 일은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형상화될 수는 없다. 

미술은 정확하고 기계적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결코 출발하지 않는다. 미술은 표현될 수 없는, 표현되지 못하는 것을 표현 가능한 영역으로 안쓰럽게 애써 잡아당기는 일에 가깝다. 표현될 수 있다는 믿음과 그럴 수 없다는 절망 사이에 놓인 깊은 심연을 메꾸고자 하는 안타까운 시도, 흔적이 예술일 것이다. 그래서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결핍과 부재를 지니고 있는 이, 상기의 고통을 지닌 이가 예술가란 존재이다. 이런 예술가가 많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