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이자 쾌락인 미적 규칙의 세계

 

이선영(미술평론가)

 


서대호의 작품은 손수 구상하고 제작한 세트 안의 모델을 촬영한 것으로, 연출 사진 특유의 엄격한 조율과 실험적 조합이 특징이다. 여러 모양의 외곽선을 가지는 평면들은 간격을 두고 평행하게 배열되어 어떤 각도에서는 완전한 합(合)을 이룬다. 최종 결과물인 사진 작품은 마치 기하 추상처럼 여러 색으로 이루어진 평면이다. 사진을 직접 찍는가/만드는가에 대한 전문용어도 구별되어 있지만, 그의 경우 회화와의 접점을 중시한다. 작업에서 ‘재료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는 작품이 단순한 사진이 아닌 회화적인 성격을 지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시회에서 작품과 같이 공개되곤 하는 세트는 관객이 참여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관객들은 이 포토존에서 저마다의 사진을 찍어갈 수 있다. 그는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하나의 통합된 조형물처럼 보이도록 오브제들을 배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 된다고 말한다. 




Mver2_01(모든 사진 출전은 작가에게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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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오브제들 사이를 빛이 통과하면서 생겨나는 그림자를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작가에 의하면 작품 속 ‘그림자는 작품에 공간적 깊이를 더해주었고, 평면적인 회화 작업 안에서 공간감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미술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서대호의 방식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작은 연극무대 같은 소형모델을 만들어 빛의 조건을 미리 실험하거나 근대에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 것은 원형적인 사진의 어법이다. 가령 재현주의의 문법이 과학적으로 정교화된 르네상스 시대에 2차원적 평면에 3차원적 환영을 부여하기 위해 소실점을 기준으로 근경/중경/원경 등으로 가정된 평행한 면들을 가정한 경우가 그것이다. 바로크 시대에는 평행한 면들이 역동적으로 소용돌이 치면서 뒤섞인다. 물론 서대호의 경우 평행면들은 훨씬 더 압착되어 있고 그 사이로 미세한 공기가 있다. 


고대의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광학적 도구는 회화와 사진의 문법의 공통점이 근대보다 훨씬 이전에 있음을 알려준다. 현대에 와서도 컴퓨터 그래픽 같은 개념이 없던 때 아나로그 방식으로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곤 했는데, 그 안에서 공연했던 이들의 사진이나 영상에는 당대의 감성이 반영된 색과 형태로 손수 제작함으로서 생겨나는 예기치 못한 이탈들이 쌓여 생기는 기이함이 있다. 서대호의 작품은 인덱스의 특징이 있는 사진과 지시대상으로부터 자율적인 회화의 특징을 동시에 선택한다.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그 탄생부터 얽혀있지만, 이후 매체계가 진화하여 사진가 또한 화가처럼 대상보다는 방법이 중요해졌다. 이제 누구나 사진을 찍고 소비하는 ‘스마트한’ 시대에 그 진입장벽은 회화보다도 낮아지지 않았나. 그의 작품에서 회화적 부문은 광목같은 천을 비롯한 질감과 색감있는 표면이다. 쉽게 읽히는 형태와 달리 질감과 색감은 차이의 원천이 된다. 형태는 조각이나 사진에서도 잘 표현될 수 있지만, 색은 회화에서 최고의 효과를 발휘한다. 색은 쉽게 코드화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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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서 ‘컬러는 기억의 감정을 이끌어 내는 주요 매개체’다. 절제된 형식 속에서도 강렬한 작품들은 색의 힘이며, 촬영을 통해서 빛이 가세하는 효과를 보여준다. 빛이 있는 3차원에서 연출된 형태가 가지는 질감과 색감을 포착하는 사진은 그리기도 찍기도 아닌 어떤 영역에 존재한다. 그가 고안한 조형적 장치 안에 삽입된 인체는 기하적 질서의 또 다른 양상이자 서사의 요소다. 인체와 기하학의 조화는 양자의 공통 분모 때문이다. 가령 대칭적인 얼굴이나 몸은 유전자적 차원에서 개체의 건강함을 표현하는 자연의 기호이다. 물론 1920년대 서구와 동구의 구성주의처럼 기하학만으로도 서사를 펼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라는 요소는 서사를 이끄는 촉발자로 기능한다. 얼굴이 무대의 둥근 패턴에 가려진 여성을 표현한 작품에서 화면 상단부에 배치된 여러 색의 원은 여인의 꿈과 환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기하학적 형태 속에 배치된 인간은 고요한 정지감 속에 있다. 


기하학과 인체의 조합은 마치 장기판의 게임처럼 다양한 수를 가진다. 비록 목만 잠깐 드러나지만 그것은 작은 원을 머리로, 그 아래의 구조를 의상으로, 마주한 사각형을 창으로 보이게 하는 맥락을 형성한다. 타원형 안팎에 배치된 인간이 등장하는 작품은 기표로 분해되어 있다. 그는 얼굴을 가린다. 기하학적 맥락에 놓인 인간은 개별성이 아니라 보편성을 추구한다. 관객이 마주한 둥근 형태가 머리로 간주되는 시각적 관습이 있다. 몸통 부분에서 발하는 빛은 실제적 대상을 포착한 것임을 알려준다. 기하학은 이상적이다. 일찍이 질서정연한 이상세계를 구상했던 플라톤이 염두에 두었던 것은 기하학이다. 인체와 결합해서 이상형을 낳는다. 가장 고전적인 것은 이상적인 신체 비율이다. 인간이라는 ‘만물의 척도’가 흔들리던 시대의 기하학도 규범과 관련된다. 정보화 시대를 지배하는 코드를 읽지 못하면 현실과 유의미한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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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발레리나처럼 균형잡힌 여성의 뒷모습이 등장하는 작품은 마치 창처럼 뚫린 정사각형을 향한다. 원과 사각형의 조합 위에 배치된 여성은 마치 소우주와 대우주의 조응을 믿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처럼 기하학과 맞아 떨어진다. 머리 부분을 원으로 대치함으로서 오히려 잘록한 허리라는 여성적 특성은 강조된다. 하얀 의상과 분홍빛 원 또한 그러하다. 몸은 시대마다의 요구에 의해 이상형이 정해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하학적 배치는 자연스러움을 대신한다. 또 다른 작품에서 모델의 하얀 의상은 마치 하얀 석고상처럼 풍부한 질감과 형태를 자세히 재현한다. 그림자처럼 어둑한 배경은 하얀 의상을 빛으로 변화시킨다. 마치 종교적인 이이콘처럼 고요한 정지감은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슷한 도상의 여러 배치가 나타나는 그의 작품은 기하학으로도 서사는 가능함을 보여준다. 마치 수녀를 연상시키는 하얀 의상은 머리 뒤의 둥근 원을 후광처럼 보이게 한다. 빛으로 화한 하얀 의상은 후광보다 더 밝다. 


얼굴을 가린 네 개의 붉은 원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는 관객의 상상에 달려있다. 성스러운 도상은 관객의 의식과 무의식이 투사되는 장(場)이다. 이상은 현실의 평균이 아니라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다는 점에서 억압적일 수도 있다. 앞을 향해 깍듯이 인사하는 듯한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배후의 기하학이 규율적임을 말한다. 원색의 기하학적 평면 사이에 서있는 인간이 등장하는 작품은 후광이 있지만, 동시에 그의 등을 찌를 듯한 날카로운 녹색 면 사이에 끼어 있다. 자연이 아닌 상징적 우주에서 태어나는 인간에게 지배적 구조는 강제적 주입이나 자기검열을 통해서 훈련되고 내면화되어 미시적인 권력으로 작동된다. 비평가 다이엔 맥도넬은 [담론이란 무엇인가]에서 권력의 양식을 계보학적으로 탐구한 미셀 푸코를 인용하면서, ‘훈련의 주요 원칙이 움직임의 통제와 함께 행동의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는 것이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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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푸코의 계보학에서 중요한 것은 권력의 억압적 기능 뿐 아니라 생산적 측면이다. 그자체로 선도 악도 아닌 권력/담론 복합체는 지식과 쾌락을 생산한다. 피라미드처럼 각이 잘 맞춰진 거대한 기념비부터 대규모 인원이 동원되는 카드 섹션, 보다 은밀하게는 사도매저키즘적인 관행까지, 당시에 정해진 규칙에 따르는 행위에는 일말의 쾌락이 있으며, 그 점에서 본다면 예술 또한 자유롭지 않다. 모든 예술작품에는 열락이나 승화로 귀결될 잔인함의 몫이 존재한다. 기하학과 인간의 만남은 이상적이지만, 그 이상은 고정되지 않는다. 가령 바우하우스 풍의 기하학적 인물들은 계층, 요컨대 관리자의 입장인가 노동자의 입장인가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다. 인간은 규율을 만들고 규율은 다시 인간을 만든다. 구조주의의 유행에서 보이듯이, 현대는 인간보다 구조의 힘이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과녘같은 원과 머리 위치가 일치되는 강렬한 작품은 기하학으로 대변되는 엄밀한 규칙과 유기체의 만남이 우호적일수 만은 없다는 붉은 색 경고등처럼 다가온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5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