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남을 위한 조건
이선영(미술평론가)
조헌의 23회 개인전 ‘지각된 풍경’에서 벽돌이나 시멘트의 잔해는 전쟁 폐허가 연상된다. 풍경인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그곳은 무너지기 이전에도 삭막한 곳이었으리라. 부익부빈익빈을 강화하는 근대의 정치경제학은 밀집과 해체를 반복적으로 실행한다. 포성이 울리는 전쟁터만이 아니다. 그의 전시에는 지하 주차장같은 넓고 텅 빈 공간 또한 등장하는데, 이 장소는 무너지지 않아도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를 바 없는 황량함이 특징이다. 한국에서 코로나 이후 지방은 물론 도시에서도 종종 보게 되는 풍경과도 닮았다. 강철, 콘크리트, 유리 같은 근대 건축의 주요 재료는 처음 등장할 때 유토피아적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지만, 백여년이 지난 후 새로움과 진보라는 근대의 이상은 빛을 바랬다. 조헌의 작품 속 장소에 살던 이들은 죽었거나 떠났다. 간혹 동물(개, 고양이, 고라니 등)이나 사람이 홀로 등장하여 슬픔과 충격에 대한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한다. 최근 작품에서는 이조차도 빠져 더욱 적막하다.

Babel, 2025, 캔버스에 유화물감, 162.1x130.3cm(이하 모든 사진 출전은 미술관에 있음)
종전은 커녕 ‘영원한 전쟁’(푸틴)까지 운운되는 요즘, 일말의 서정이나 감상도 자리잡기 힘든 상황 때문이다. 화면의 주조 색인 다크 브라운, 울트라 마린블루, 그레이 계열은 묵직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붓보다 나이프로 작업하는 거칠거칠한 질감은 기름기 흐르는 화려한 현대의 이면이다. 다들 반대하는 전쟁은 왜 일어나고 지속되는가? 작가는 ‘권력자들과 위정자들에 의하여 저질러진’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것이 혼란에 빠진 ‘Babel의 시대’를 낳았다고 말한다. 그가 영감을 받은 우크라이나나 가자지구의 경우, 독재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다지기 위한 전쟁임이 확실해지고 있다. 위기를 조성하여 소수에게 이익이 집중시키는 것은 탁월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분쟁지역인 한반도 또한 이 전략이 포기된 적이 없다. 고가 상품인 무기를 더 팔아먹을까, 또는 재건 사업에 참여할까 하는 이해득실을 따지는 주변 국가들이나 강대국들 간의 뒷거래는 하루하루의 안전이 절박한 민중과 전쟁에 동원되는 가난한 국민들은 아랑곳없다. 조헌의 풍경은 사건 이후의 장면이다. 모든 것이 끝나고 고요하다.
우리의 삶처럼 하나하나 쌓아 오던 것들을 일순간 무화시키는 파괴적인 힘이 휩쓸고 지나간 모습이다. 바벨탑처럼 하늘로 솟아오르던 반듯한 형태는 무너져내려 불규칙한 덩어리들이 된다. 살아있음을 상징하는 수직에서 수평으로의 변화는 죽음을 말한다. 또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끝낸 이후의 평정이다. 조헌의 작품을 감도는 전반적인 색감은 유기체적 온기의 사라짐, 원근법적으로 저 멀리 사라지는 풍경과 관련된다. ‘기억된 것이 더 잘 지각된다’는 작가의 믿음에 의하면 사라짐은 나타남을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이 전시의 또 다른 풍경인 바다는 삶이 시작된 곳이자 끝나는 원초적 시공간이다. 바다의 수평은 바벨탑같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본래 그렇다. 무너짐이 아니라 운동의 과정이다. 가늘지만 강렬한 빛의 띠가 등장하는 그의 바다는 육지 폐허가 어떤 빛도 투과할 수 없을 정도로 침울하고 묵직한 공기가 지배하는 것과 비교된다. 여러 계열의 푸른 색조가 클래식 음악처럼 잔잔하게 움직이는 [Mahler의 바다]는 먹구름이 끼었지만 어디선가 비치는 빛으로 환해진 수평선이 각성의 순간을 나타낸다.

Babel, 2025, 캔버스에 유화물감, 162.1x130.3cm

Babel, 2025, 종이보드에 유화물감, 78.8x54cm

Babel, 2025, 캔버스에 유화물감, 130.3x162.1cm

Babel, 2025, 종이보드에 유화물감, 78.8x108cm
누구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면 살아 생전의 짧은 기간 동안 그렇게 싸우지 않을 것 아닌가. 그것은 이번 전시 부제인 ‘지각된 풍경 (Perceived landscape)’ 그자체이다. 그는 ‘아주 멀어서 망각되었다고 결정조차 내리지 않았던 어떤 순간의 기억부터, 하나하나의 작은 사실들이 쌓여 만들어진 사건의 연관성에 관한 숙고의 시간들’을 말한다. 그는 바다를 보면서 ‘최초의 생명체로 시작되어 인간의 마음에 이르기까지의 진화의 숭고함’과 ‘어쩔 수 없이 사라져가야 하는 인간의 필멸성’ 또한 생각한다. 바다는 그에게 ‘사유의 영감이 촉발되는 환경을 제공’하며, 작품은 현현(epiphany)의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자잘한 지류들의 궁극적 목적지인 바다는 보다 큰 하나를 상징한다. 이러한 근본성에 의해 바다는 빛과 함께 종교적 도상에 자주 등장한다. 우연찮게도 바다(mer)와 첫 자와 끝 자를 공유하는 음악가 말러(Mahler)의 음악은 자연이나 종교가 아닌 예술적 언어에 근접한다. 작가에 의하면 말러는 ‘세기말 상황의 근본적 비관주의자’로 평가된다. 하지만 ‘어떤 평정의 장엄함이 깃들어’ 있는 그의 음악은 많은이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우울한 국면이 있는 자신의 작품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할 것이다. 바벨과 바다는 문명/자연, 수직/수평, 단선적 진보/순환적 반복 같은 이항적 상호관계를 대표한다. 어떤 풍경은 거의 해저에 잠겨있는 난파선같은 분위기이다. 멀쩡하게 서있던 건축물은 거대한 해일의 공격을 받은 배와도 같은 운명이다. 미래 사회에 대한 탁월한 비전이 담긴 SF영화 [블레이드 러너] 이후, 디스토피아 풍경은 태양광이 차단된 눅눅한 풍경을 공유한다. 무엇이 뒤섞여있는지 모를 자욱한 안개 속 풍경은 미래에 대한 암울한 상상을 투사한다. 요즘은 AI로 만들어진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 상이 많이 생산된다. 그가 보기에 이러한 영상과 회화의 다른 점은 ‘질료적인 것’이다. 화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색감은 질감과도 연결된다. 대개 뿌연 안개로 가득한 디스토피아 풍경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인공광이지만, 전쟁으로 파괴된 곳들은 그마저도 꺼진다. 제목에 ‘바벨’이라는 키워드가 들어있는 그의 작품은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린 문명의 무너짐을 말한다.

Babel, 2025, 종이보드에 유화물감, 78.8x54.0cm

Mahler의 바다, 2025, 캔버스에 유화물감, 162.1x130.3cm

Mahler의 바다, 2025, 종이보드에 유화물감, 54.0x78.8cm
그가 붓이 아닌 나이프를 주로 사용하는 것은 구축된 것이 해체되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정상적인 붓이 유기적 자연의 재현과 어울린다면, 미장이의 도구같은 그의 나이프는 무너져내려 부서진 각면들을 표현하는데 적절하다. 가까이 보면 작가만의 리듬으로 구축된 면들이 추상적이다. 추상미술은 재현주의와 대별되면서, 미가 아닌 숭고와 연결되기도 했다. 뒤죽박죽된 형태로 가득한 폐허는 19세기의 낭만적 폐허를 특징짓는 숭고함과도 비교될 수 있지만, 그의 경우 더 건조하다. 거기에는 근대에도 여전히 남았던 형이상학의 가림막이 사라진다. 낭만주의나 고전주의가 지배하던 근대보다 더 긴밀해진 세계 시장화는 더 위험해진 사회를 전제한다. 조헌의 [Babel] 시리즈는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쓰나미같은 쓰레기 더미에 휩쓸리고 있다. 파괴되어 드러난 건물의 단면만이 어디선가의 빛을 받아낸다. 파괴되기 전에는 어떤 지역성이 내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지역도 계절도 알기 힘들다. 삶의 급작스러운 중단에 대한 불길한 예감은 이제 시공을 초월해 편재한다.
푸른 하늘에 떠 있어야 할 하얀 구름 대신 잿빛 하늘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폐허에 종종 등장하는 동물은 있음직한 현실이다. 재난의 현장에는 인간과 더불어 살던 동물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도시적 일상에 편재하는 지하공간은 무너지지 않은 폐허라는 점에서 [Babel]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다. 수직으로 건물을 키우는 도시에는 그만큼의 지하공간이 있고, 이 또한 자연재해에 취약하다. 수직 공간의 뿌리에 해당되는 지하는 종종 급작스러운 수몰 현장이 된다. 문명의 빈 곳을 채우는 자연은 재해로 들이닥친다. 그는 이러한 지하공간을 신화처럼 먼 시간, 실제 전쟁터같은 먼 공간이 아니라 ‘내 주변의 바벨’이라고 말한다. 그 또한 폐허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곳이 ‘공포와 침묵이 지배하는’ ‘현시대의 고립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가는 20여 년 전 전주 사공리 폐교를 몇년간 임대해서 홀로 작업한 적이 있으며, 지금도 전주 인근 오봉리에서 공동(空洞)화되어 가는 지방을 겪으면서 불현듯 다가온 미래를 체감한다. 그는 친했던 길고양이를 비롯해서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 예술을 생각한다’.
출전;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