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백화쟁명 속에 피어나는 미술


이선영(미술평론가)

 

  

1.

어두운 동굴 깊숙이의 벽화부터 이어지는 장구한 이미지의 역사 중에서 (순수)미술은 비교적 최근인 근대의 산물이며, 미술 또한 다른 분야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진화해 왔다. 이제 현대인들은 손안에 세계를 보는 창 외에도 크고작은 미디어기기에 둘러싸여 있으며, 24시간 돌아가는 시대에 걸맞게 거의 상시적으로 접속한다. 하지만 플라톤의 동굴 신화같이 그림자로 현실을 추측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 또한 존재한다. 회화나 조각 같은 미술 또한 실제 전시 이외의 시공간에서 다른 수많은 시각적 정보 중의 하나로 소비되는 중이다. 어느 시대보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진 일상은 예술적 작업에도 피드백 될 것이다. 높은 경쟁을 뚫고 전시된 이 작품들은 서양화, 동양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전시회 오픈과 동시에 사이버 공간을 돌아다니겠지만, 작가만의 손길이 닿은 원본은 따로 있다. 액정화면 속의 이미지는 실제로 그것을 보기 위한 관문이 돼야 하지만 대개는 무심히 지나치는 여러 이미지 중 하나로 넘어간다는 점이 미술을 소수의 것에 머물게 한다. 


스펙터클의 시대가 미술의 시대는 아니다. 애초에 코드로 생산된 것이 아닌 실제 작품들은 관객이 서있는 바로 그 공간에 존재하며 대화를 시작한다. 미술작품에 대화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단숨에 읽혀 소비/소유한다는 착각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읽기보다는 쓰기를 권유하는 빈칸이 산재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라는 시도 있지만, 《Time to Bloom: 피어나는 시간》 전은 말그대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미술의 속성을 전제하고 강조한다. 시간은 서사이다. 물론 이때의 서사는 현대적인 시간관념과 마찬가지로 단선적인 인과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관객의 상상이 피어날 빈칸은 많이 있다. 이 전시의 참여 작품들은 높은 밀도를 통해 미술작품의 존재감을 한껏 발산한다. 작품마다 작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촉감과 질감, 수많은 연구와 상상을 거쳤을 작품 내용 등이 단지 손가락 끝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정보와 비교될 수 없을 응집력과 아우라를 가진다. 이 전시의 작품들은 모더니즘이 미술을 ‘정화’하기 위해 없애나갔던 전통과 자연, 인간과 사회 등을 하나하나 불러들인다. 


사진을 비롯한 유력한 재현 매체 등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던 미술이 모더니즘의 논리 끝에 맞딱뜨렸던 것은 벽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 텅 빈 캔버스는 다시금 크고 작은 다양한 서사로 채워지게 된다. 삶을 지켜주는 부적같은 작품을 그린 고은주, 풀 한 포기와 벌레 한 마리에서 경이로운 질서의 우주를 보는 나광호와 박상빈, 몸뚱이 하나로 자연과 마주하여 삶을 일구는 해녀를 그린 신민정, 사회적 인간의 위장과 억압을 입체화한 남정근, 인간사에 내재한 갈등을 알레고리로 재현한 김기태, 일회용 상품인 냅킨에 새겨진 인간 이미지로 현대적 관계를 암시하는 윤일권의 작품은 이미지의 오래된 전통과 순수미술 시기에 획득된 형식적 질을 갖추고, 자신부터 현대문명의 상황까지 아우른다. 스마트 안경을 비롯해서 대중의 시야를 독점하기 위해 고사양 미디어 기기들이 경쟁하는 시대에, 이들의 작품은 다른 미디어로는 대체할 수 없는, 미술로서 가능한 표현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2.




고은주, 오늘도, 밝음부_161x129cm, 비단에 석채, 금박,은박, 2024


고은주는 대칭형 구성에 상징적인 도상들을 조화롭게 배치한다. 비단에 석채. 금박 은박같은 귀한 재료는 부적같은 염원을 내포한 상징적 우주를 빼곡하게 채운다. 이전 시대의 성상이나 도상처럼 보편적 상징이 아니라 작가의 관심과 취향대로 모은 수집물은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듯 자연스럽게 자리잡는다. 여러 기원을 가지는 상징은 행복을 위해 좋은 것을 끌어모으는 대중문화의 어법임과 동시에 위험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전방위적으로 지켜주려 한다.   

 



나광호, 풀더미유토피아  oil on canvas  112×162cm  2025


여러 종의 식물이 담겨있는 나광호의 작품들은 자연에 대한 탐구이자 화가의 꿈을 시작했던 어린 시절 참고서였던 도감에 대한 기억을 호출한다. 그가 그린 풀들은 누가 이름붙이기 전에 인간보다 더 오래 생존을 이어왔던 경이로운 존재이며, 지상의 낮은 곳에 자리한다. 실제 도감은 사실을 도해하는 기능을 가지지만, 그의 작품은 회화적이다. 식물들을 탐사한다는 프로젝트는 그리기를 위한 방편으로, 초심을 찾은 붓질은 자연과 미술, 꿈을 하나로 수렴한다.




박상빈_호박벌(bumblebee)_Acrylic, Lacquer on Canvas_117x91cm_2025


박상빈이 화면 가득히 그린 곤충들은 실제보다 확대된 덕에 볼 수 없는 부분까지 보게된다. 그의 작품이 포착한 기이한 부분들은 단순히 아름다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진화된 형태라 더욱 놀랍다. 그것들의 형태는 곧 기능이며 의미이다. 호박벌은 초당 300번의 날개짓으로 날기 불가능한 조건을 바꾼다. 그 치열한 몸짓처럼 화가도 붓질을 한다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내재한 치열함을 재창조한다는 겸허한 마음이 작가로 하여금 극사실주의를 선택하게 했다.




신민정 삶의무게 112.1x162.2 Acrylic on canvas 2017


신민정의 소재인 제주 해녀는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될만큼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물질하러 가는 해녀는 제주의 거센 바람과 파도치는 바다에서 고투한다. 작품 속 해녀는 자연과 대항하거나 그것을 대량으로 갈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스며들어 자기 몸이 딱 허락하는 만큼만 취한다. 생태적 삶의 본보기인 해녀들은 제주 현무암의 질감이나 반복되는 노동의 과정이 새겨진다. 해녀는 지구 생명체처럼 바다에서 와서 바다로 다시 스며든다  

  



남정근, 거리의 사람들, 석고에 연필 드로잉,103×51×178cm, 2025


남정근은 거리에서 만날법한 평범한 사람을 입체화한다. 석고 위에 연필 드로잉을 통해 일련의 무늬가 입혀진다. 하얀 조상(造像)은 미묘한 명암의 흐름을 받아내는 부피이자 표면이지만, 이를 교란하는 연필 가필은 은폐나 위장을 위한 것이다. 회색빛 도시에서 튀지 않으려는 무리의 모습이다. 배경과 구별되지 않는 흉내내기는 곤충의 의태(擬態)와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을 향한다. 배경으로부터 돋보이는 의식과 활동의 주체임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김기태, 내가 지키고있음을, 장지 위 수묵수채. 162.2x130.3 cm. 2023


김기태의 작품은 작가가 창조한 이야기의 삽화에 해당된다. 일종의 그림동화이지만, 관객 또한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 자기만의 상상을 펼칠 수 있을 만큼의 여백은 존재한다. 장면 사이의 도약과 비약은 빈번하다. 정지된 매체인 회화에서 서사는 순간이 아니라 전후를 압축한다. 그는 장면 하나하나를 재현하는 사실주의가 아닌 신화나 동화같은 알레고리 어법을 구사한다. 작품 속 인간들은 선과 악, 갑과 을 같은 전형이며 ‘삶의 지침’이 될만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윤일권, Memory_160x160x160cm


가득 쌓은 냅킨에 실크스크린을 한 윤일권의 작품은 복제 매체로서의 판화에 대한 자의식이 있다. 그가 주목하는 판화적 형식은 평평한 층들이다. 모든 층이 다 돋보이거나 남지 않기에 [기억]이라는 제목이 붙는다. 판화는 회화와도 일반 출력물과도 다르다. 일회성과 무한복제 사이에 있는 판화는 관계를 표현한다. 한번 쓰고 버리는 휴지에 새긴 얼굴들은 다소간 냉소적인 사회관계를 표현한다. 설치 작품이라는 형식 또한 한번의 연극적 연출 이후에 분해된다. 

 

출전; 호반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