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첼 윤, 〈Enraptured〉 작품세부, 2025, 자동운동기구·인공 야자수·재배용
조명 등 혼합매체, 200×160×120cm
지난 한 달간 우리의 시선에 아른거린 슬로건들. 그 중에서도 “이제부터 진짜”와 “정정당당”. 여느 슬로건처럼 이전과 다른 무엇인가에 대한 추구라는 공통점과 함께 ‘반드시’와 ‘반듯이’ 같은 차이도 지니고 있다. ‘반드시’에는 ‘꼭, 틀림없이’라는 의지가, ‘반듯이’에는 ‘기울지 않고 바르게’라는 방향성에 의미의 요점이 있다. 물론, 스쳐 지나가는 미사여구에 그칠 수 있다는 연약한 존재감은 같지만.
연약함, 지난 달 지속되었던 두 전시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상을 가질 수 있었다. 《레이첼 윤: NO SWEAT》(4.29-5.31, 지갤러리)의 전시장에서는 끊임없이 소리가 들린다. “텅텅텅. 윙윙윙. 사사사”, 마사지 기기, 운동 기기, 육아용품 기기 등 인간의 활동을 모방하는 기계들이 모터소리와 지면과의 마찰음을 내면서 쉼 없이 움직인다. 그 기계에 연결된 플라스틱 인공식물들과 그 끝에 맺혀진 인공 땀방울은 그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전시 제목 《NO SWEAT》는 기계의 힘을 빌려 땀 한 방울 없이 쉽게 자기 개선을 이루길 원하는 개체의 욕망과 함께 끊임없이 대체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결핍마저도 시스템에 의탁해 버린, 연약한 인간 지성을 동시에 함의한다. 레이첼 윤(1994- )은 이민자였던 부모 세대가 꿈꿨던 아메리칸 드림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 그리고 그 목표가 쉽게 도식화되는 과정을 거쳐 끝끝내 공허함만이 남은 덧없는 움직임을, 마지막으로 그 움직임마저도 외주화시킨 우리의 연약함을 기계음 가득한 풍경 안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정연두, 〈아픈 손가락〉 작품세부, 2025, 항아리·조명 등 혼합매체, 39×38×38cm×5each
《정연두: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4.25-7.20, 국제갤러리 부산)의 전시장 입구에서는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들린다. 전시는 이주민과 블루스, 막걸리와 메주, 밀가루와 우주라는 외형 안에 애환과 유머, 소멸과 재생, 일상과 신비 같은 의미들을 품고 그 안에서 한 편의 공연처럼 다양한 요소들이 감각의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그중에서 항아리 형상의 〈아픈 손가락〉(2025)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영상과 함께 전시장에 들어서면 처음 관람객이 마주하는 작품으로 전시의 인상을 결정하고 있다. 작품 제목 ‘아픈 손가락’은 연주자가 현을 튕길 때 느낄 통각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막걸리가 아닌 만화경처럼 알록달록한 색을 품고 있는 항아리는, 영상 속 현의 튕김에 맞춰 번쩍이며 그 통각이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미적 울림으로 승화됨을 형상화해낸다.
두 전시는 소재나 내용,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온도에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소리가 전시의 주요한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 외에도 이상을 쫓는 과정에서의 결핍과 갈등, 인지부조화에 대한 성찰이라는 점은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위대한 게츠비』(1925)의 작가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는 그가 1936년에 발표한 자전적 수필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참된 지성은 모순된 생각을 함께 껴안고도 무너지지 않는 힘에서 드러난다.”
우리 사회는 이제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을 맞는다. 결과와 상관없이 안도와 실망, 기대와 우려라는 감정은 시차만 존재할 뿐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반드시’와 ‘반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혼란을 피하지 않고 견디는 힘이며, 담담하게 우리 안의 모순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