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가득한 상징적 우주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종석 알베르토의 그림은 밝고 따스하다. 그를 가까이 지켜본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와 용기, 꿈을 선사’하는 그의 작품이 ‘특히 색감이 너무나 아름답고 선명하며 꾸밈없는 마음과 밝고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다’(다운복지관 김인숙 관장)고 평가한다. ‘이종석 알베르토 green 그림’이라는 부제는 2016년 첫 전시부터 계속 사용되었는데, 여기에서 ‘green은 이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와 함께 주요 활용 색상이 희망을 주는 초록이고, 자연 친화적인 그림을 주로 그려왔다는 의미 등이 포함된다’(카톨릭 신문, 이소영 기자) 녹색은 지구에 생명을 번성하게 했던 최초의 식물을 상징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태양 빛을 활용하여 생명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자연의 공장이다. ‘사람들에게 행복과 축복을 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작품은 ‘따뜻한 색감과 밝은 에너지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징적 우주의 중심에 있는 성스러움보다는 금기의 위반을 지향하는 현대미술은 대개 어둡다.

가족의 사랑과 축복을 드리는 성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2022 2022 120x110 oil on canvas
하지만 밝음에 대한 지향은 진짜 음지에 있는 이들의 욕망 아닐까. 일상의 패션을 봐도, 젊은이들보다는 여생이 얼마남지 않은 이들의 색상이 더욱 화사하지 않은가. 이종석에게 예술은 다운 증후군을 극복하고 타인과 행복하게 소통하는 매개다. 치유와 소통이 예술의 보편적 키워드로 자리잡은 것은 과거에 종교가 맡았던 기능을 상당 부분 계승한 예술의 특징이 반영된 것이다. 이종석은 독실한 신도이기도 하다. 작품 [가족의 사랑과 축복을 드리는 성-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2022)은 종교적 건축의 특징인 높은 축은 생명의 근원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다. 사그라나 파밀리아 성당은 구불구불 유기체의 율동을 담아낸 가우디의 건축으로, 한 예술작품이 국가를 상징할 정도로 유명하다. 창공으로 솟은 첨탑은 식물의 가지나 뿌리를 떠올리며, 생명의 근원을 향한 본능적인 움직임을 반영한다. 땅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을 결합하는 성당은 그것의 가장 뾰족한 부분이 별처럼 빛난다.
그의 작품에서 하늘은 하나의 색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여러 색이자 빛으로 변하는 팔렛트와도 같다. 감동이란 일순간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동치는 순간을 지속시키며, 그것은 공간을 지각할 때뿐 아니라, 기억의 시간 또한 마찬가지다. 그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재)창조하는 이만이 (추)체험이 가능하다. 가우디의 건축 특성을 고려한다 해도 안정적이지 않은 형태나 자유로운 색의 처리는 감동의 순간을 (재현이 아니라)재연한다. 사그라나 파밀리아 성당은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된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독실한 신자에게는 천상과 접촉할 수 있는 성스러운 장소가 되기도 한다. 건축은 많은 예술을 종합하는 또 다른 예술이다. 이종석의 작품 목록에는 종교적 도상이 많다. 작품 [알베르토의 기도하는 종](2022)은 성물의 이미지로, 어둑한 배경 속에서 빛난다. 절대적 타자인 신은 강력한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지만, 대개 그 근원은 감춰지곤 한다.

안녕 햇님 2019 162.2x130.3 oil on canvas

알베르토 정원 2020 65.1x53 oil on canvas

버드나무아래에서면 2024 130.3x97 oil on canvas
난데없이 나온 듯한 작품은 주체를 신화화하려는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작품들은 도상적 형태와 더불어 색감 또한 종교적 상징과 관련되는데, 특히 빛의 표현이 그러하다. 종교학자 엘리아데에 의하면 빛과의 조우에는 기쁨과 평정, 영원에 대한 확신감, 절대적 진리의 계시, 중력의 법칙에서 자유로와진 느낌이 수반된다. 종교를 현상학적으로 해석한 엘리아데에 의하면 빛의 체험은 종교적 체험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체험은 일상적 세계, 역사적 상황에서 벗어나 이와는 전혀 다른 초월적이고 거룩한 세계로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품 [축복 해요 아기 예수님](2019)의 모자상은 사랑하는 관계의 정점에 놓인 도상으로, 보편적인 울림을 준다. 천사들이 뿌리는 눈 결정체 같은 빛과 성모자의 금빛 머리, 후광처럼 배치된 초록빛 자연은 축복에 대한 이미지다. 감각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충만한 느낌의 금빛은 종교적 도상 뿐 아니라, 동식물, 풍경 등에도 자주 사용된다.
작품 [버드나무 아래에 서면](2024)에서 따스한 색감으로 잎들이 칠해진 그의 버드나무는 빛을 입고 있다. 늘어진 가지를 따라 아래로 죽죽 내려그은 선 아래는 물이 흐르며, 수평의 선들로 채워진다. 그는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한 율동을 조형적 언어로 번역한다. 화면을 지탱해 주는 나무 기둥만이 재현적 요소에 충실하다. 추상적 언어가 빛을 발하는 것은 실재가 무게중심을 잡아줄 때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추상은 자연을 표현할 때 그 장점이 두드러진다. 작품 [황금의 계절]은 그 시공간성이 모호하다. 하지만 추상이 그렇듯이 더 포괄적이다. 작품 [황금의 계절](2022)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황금의 계절’은 빛이 가장 강한 여름일까, 결실을 맺는 가을일까, 추운 겨울을 이겨낸 봄빛일까. 봄날 같은 빛이 비추는 늦가을(인디언 섬머)같은 모호한 계절일까. 큼직하게 성장하여 잘 익은 과일처럼 여러 색의 큰 덩어리들이 편재하는 화면은 아무래도 태양 빛이 결실을 맺는 가을이 아닐까.

하트바오밥나무 2019 162.2x130.3 oil on canvas

초록 폭포의 다큐 2023 130.3x97 oil on canvas

축복해요아기예수님 2019 116.8x80.3 oli on canvas
숲같은 야생의 자연과 구별되는 정원은 자연과 문명의 중간 지대이다. 예술이나 놀이 또한 이 중간의 영역에 존재하면서 직접적인 현실과의 접촉함으로서 생겨나는 위험으로부터 선제적 대응을 한다. 작품 [알베르토 정원](2020)에서 가지런히 피어있는 전경의 꽃들은 조율된 자연인 정원의 특징을 압축한다. 작품 [하트 바오밥 나무](2019)에서 거대한 신전의 기둥처럼 서있는 바오밥 나무 잎은 하트모양이다. 이 거대한 기둥은 화면 상단의 깊은 우주부터 중간의 푸른 하늘, 그리고 지상의 낮을 관통한다. 매해 다시 꽃피우는 나무는 인류에게 부활이라는 상상을 낳는 원동력이 되었다. 자신들의 갈 길을 정확히 아는 양 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새 떼들과 인간과 눈을 마주치며 교감하는 새의 부리는 전능한 황금빛을 공유한다. 빛은 온 우주에 가득한 사랑처럼 편재한다. 작품 [우당탕탕 하트 바오밥나무](2025)에서 반 고흐의 풍경처럼 생물 무생물 할 것 없이 모두가 요동치는 화면은 물활론적이다.
하늘, 물, 풀밭 모두가 굼실굼실 움직인다. 온 우주에 편재하는 신의 사랑에 대한 이미지는 바람에 흩날리는 포자처럼 표현했다. 작품 [안녕 햇님](2019)에서 잔뜩 낀 구름을 뚫고 빛나는 해는 일렁이는 거울 역할을 하는 해수면 때문에 더욱 밝고 화려하다. 해수면 위의 색 선은 빛의 선이 된다. 빛은 스펙트럼을 통과한 것처럼 여러 파장대의 색으로 분해된다. 강한 중심 집중적 구성은 유일신 사상을 반향 한다.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행성 위의 항성이라는 우주적 풍경을 좀 더 인간적으로 번역하는 것은 관객을 향한 새이다. 날기를 잠시 멈추고 공중 부양 중인 새의 모습은 초월에 대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새는 사람처럼 눈썹이 있고, 전체적인 실루엣은 작가의 종교적 기호인 십자가 형태를 닮았다. 황금빛은 동물의 표현에도 적용된다. 작품 [초록 폭포의 다큐](2023)에 등장하는 고양이과 야생 동물의 털이 마치 수놓은 듯이 촘촘하게 표현돼 있다.

황금의 계절 2022 65.1x53 oil on canvas

황금 날개 사자 2024 130.3x97 oil on canvas
빛남에 대한 작가의 애호가 빛나는 털을 가진 동물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야생적 존재는 대지에 굳건히 서있지 못하고 가느다란 선에 의지한 모습이다. 식물마저도 잎새를 떨어트리고 있다. 자연에 대한 가장 큰 적대자가 인간이 된 이후로 애석하게도 이 아름다운 존재들은 위기에 봉착했다. 그래서 더욱 귀하다. 똘망하게 눈을 뜨고 관객을 바라보는 동물은 인간이 자연에게 저지른 만행이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듯하다. 자연에서 살아갔던 동물이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지만, 그조차도 화석같은 흔적으로만 남으면, 신화로 재생될 것이다. 작품 [황금 날개 사자](2024) 여러 동물의 부분이 조합된 신화 속 동물은 그 힘 또한 막강하다. 사자의 힘과 새의 자유로움이 결합 된 ‘황금 날개 사자’는 신성한 메시지가 새겨진 계율을 가리킨다. 그의 작품에서 황금빛은 여러 형상들로 변모되어 나타나는 성스러움을 이어주는 강력한 실이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5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