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도록 한 권을 받았다.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이 보낸 『2025 하정웅컬렉션 단색화: 무한과 유한』이다. 유백색의 바탕에 넓은 붓으로 가로세로 그은 점이 선명한 이우환의 작품이 표지에 보인다. 나는 이 전시의 서문을 썼고 강연도 했다. 돌이켜 보니 단색화를 ‘Dansaekhwa’란 영어명으로 표기한 지도 어느덧 25년이 지났다. 꿈에 그리던 세계화도 이루어 이젠 발음도 어려운 ‘단색화’가 프랑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단색화는 어떻게 해서 태어나게 됐는가? 그 경위를 널리 알리는 의미에서 도록에 쓴 글을 인용한다.

좌) 박서보, 〈묘법 No.900725〉, 1990, 캔버스에 한지를 이용한 혼합재료, 117×95cm
ⓒ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하정웅 컬렉션
우) 『2025 하정웅컬렉션 단색화: 무한과 유한』 도록 표지
“세계미술계에서 단색화가 알려진 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단색화와 광주는 인연이 매우 깊다.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으로 열린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에서 ‘단색화(Dansaekhwa)’란 고유명사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전시의 큐레이터인 나는 도록의 원고 교정을 보던 중 영문 번역자가 번역한 ‘monochrome painting’에 주목했다. 번역자는 내가 쓴 도록 서문에서 한 글 원고의 ‘단색화’를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순간, 그건 맞는데,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70년대 중반부터 전위그룹 ST의 일원으로 현대미술의 현장을 체험한 나는 한국 단색화의 독자적인 가치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단색화’를 ‘Dansaekhwa’란 영어명으로 표기했던 것이다. 그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Dansaekhwa’를 강조한 나는 드디어 단색화를 세계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맞았는데, 2012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 Dansaekhwa Korean Monochrome Painting》가 바로 그것이다. 이 전시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단색화가 급부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단색화 탄생 25주년을 맞이하여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이 마련한 이 전시는 재일교포사업가 동강 하정웅 선생이 광주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총 2,603점으로 구성된 하정웅 컬렉션 중에서 단색화 작품만 골라 기획했다. 이우환, 곽인식, 하종현, 정영렬, 박서보, 허황, 최명영, 정상화, 윤형근 등 전기 단색화 대 표작가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다면 이 전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단색화의 정수(精髓)를 일본에 거주하는 한 사업가의 안목으로 꾸몄다는 사실에 있다. 이른바 ‘하정웅 컬렉션’으로 대표되는 작품 가운데 선정된 이 단색화 컬렉션은 그 하나만으로도 동강 하정웅 선생의 미적 안목을 살펴볼 수 있는 지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몇 년 전, 수만 점에 달하는 미술작품을 기증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이건희 컬렉션’과 함께 역시 방대한 양의 작품을 광주, 대전 등 국내 시립미술관에 기증한 ‘하정웅 컬렉션’은 기업의 사회 환원을 이끈 선구적인 사례이다. 이 놀라운 성과는 향후 수많은 기업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이끌 견인차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렇다면 한국 단색화의 요체는 과연 무엇일까? 대체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길래 세계의 미술애호가들이 그토록 열광하는가?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며 빛나듯이, 별처럼 독자적인 아우라를 내뿜는 한국 단색화 작가의 작품은 이제 국제무대에서 콜렉션의 필수 품목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단색화란 용어가 탄생한 지 25년 만에 올린 개가이다. 하정웅 컬렉션은 그 중의 하나이며, 하정웅 명예관장의 단색화에 대한 독자적인 안목과 심미안이 작품 속에 투영돼 있어 작품을 따라가며 감상하다 보면 단색화 작품의 독특한 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