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회가 깊은 여운을 남기며 화제를 모은 것은 유진 초이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었다. 스쳐 지나가듯 스크린에 등장했다가 일본군의 총에 쓰러져 간 이름 모를 의병들, 단 한 번의 대사도 없이 화면에서 사라져 간 조연들의 모습이 더 큰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모두 영웅을 응원하고 기억하지만, 정작 역사는 그런 익명의 인물들이 만들어 간 것이 아니었을까.

연극 〈세기의 사나이〉 컨셉 사진, ⓒ 극단 명작옥수수밭
최근 6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연극 〈세기의 사나이〉는 바로 그런 관점에서 독립운동을 재해석했다. 평범한 청년 덕배가 우연히 3.1운동에 참여하다 일본 경찰의 총에 죽었지만, 저승사자의 실수로 되살아나 125년을 사는 이야기다. 그 여정에서 그는 시인 이상, 손기정, 윤봉길, 김구 등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들 뒤에서 묵묵히 도움을 준 익명의 존재들을 조명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익명으로 남은 존재들 외에도 의도적으로 가명을 사용해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이 당시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 흔히 있었다. 대표적으로 문인 이육사, 김영랑, 심훈 등과 독립운동가 김산, 김단야 등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당시에는 이름을 지우고 살아가야 했던 이유들이 분명했다. 어떤 이는 생존을 위해, 또 어떤 이는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감췄다.

최덕휴, 〈3년간 걸어보며 배운 나의 길〉 탈출 경로 스케치, 1940년대, (액자 포함) 32×40×3cm, 최덕휴기념관 소장
그러나 우리는 현재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익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우리는 가명 뒤에 숨어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고, 세상과 소통한다. 겉으로는 자유롭지만, 그 익명성은 때로 무책임한 발언과 폭력의 가면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과거의 익명성은 자신의 존재를 지우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가치가 있었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반면 현재 디지털 시대의 익명성은 개인의 편의와 안전을 위한 보호막임과 동시에 누군가를 향한 날이 선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의 익명성이 ‘나’를 숨기고 ‘타인’을 공격하는 도구라면, 과거의 익명성은 ‘나’를 감추고 ‘우리’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었을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개인의 안위보다 민족의 미래가, 개인의 명성보다 조선의 광복이 앞섰다.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다른 지역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같은 꿈을 품고 저항했던 이들은 평범한 일반인과 학생이었고, 화가와 시인이었고, 지식인이었다. 이들의 이름 없는 연대는 우리의 역사를 바꿨지만, 지금 우리가 이름 없는 개인주의 속에서 서로를 상처 입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화가들을 익명으로 만들고자 한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이름을 지웠다면, 지금은 그들의 진정한 가치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이름을 뒤로 미룬다. 다가오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그 익명의 화가들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박물관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이면서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은 다섯 명의 화가를 조명하는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처음에 ‘어떤 화가의 일기’라는 익명의 텍스트를 통해 당시 화가들의 고뇌와 의지를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시장을 나서며 그 일기의 주인공들이 누구였는지 확인하게 된다.
80년 전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지금 우리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름을 숨기고도 하나였던 그들의 마음과, 이름과 얼굴을 감추고도 각자인 우리의 현실 사이에서 무언가 잃어버린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들이 보여준 익명성의 진짜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는 다시금 묻게 될 것이다. 진정한 연대란 무엇인지, 지금 사회의 ‘우리’는 존재하는지. 이 전시가 그 질문에 대한 성찰의 기회로 다가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