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곳에 있던 세계
이선영(미술평론가)
김성해는 하늘 한번 바라보기 힘들만큼 쫒기고 사는 현대인에게 잊혀졌으나 늘 그곳에 있던 세계를 보여준다. 푸른 하늘 뒤편까지 뻗어나가는 어두운 우주적 공간이다. ‘우주라는 무한 시공간’을 표현하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적이고, 한낱 먼지, 티끌에 불과하지만 우리 개인이 존재하기에 우주 또한 존재하니 우리 각자 또한 너무도 귀하고 소중하다’고 말한다. 신화에서 여신의 옷자락이라고도 표현되는 오로라는 그의 작품에서 하늘이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휘발하는 듯한 형상으로 그려진다. 하늘에 드리워진 하늘하늘한 베일 사이로 별빛이 쏟아진다. 작품 [Aurora A Whisper in the Dark](2025)에서 눈 덮인 지상의 대지와 산은 하늘의 유동적인 공기의 흐름과 달리 굳건하다. 하지만 그러한 굳건함은 변치 않는 현실을 넘어가야만 하는 고난 또한 상기시킨다. 그는 ‘가파르고 눈덮인 설산은 삶의 과정에서 부딪힐 수 있는 어려움을 은유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위의 ‘경이로운 자연 현상인 오로라’를 볼 수 있기에, ‘위안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바램이다.

Aurora A Whisper in the Dark 80.9x116.7cm Mixed media on canvas 2025

The Galaxy 80.9x116.7cm Mixed media on canvas 2024

Aurora A whisper in the Dark 90.9x116.7cm mixed media on canvas 2025
지구 자기장과 관련된 현상으로 알려진 오로라는 시간적 추이에 따르는 변화 때문에 음악가들에게도 풍부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작가는 ‘속삭임’이라는 작품 제목 속 키워드를 통해 잠재적인 움직임을 강조했다. 정지된 매체인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붓질의 궤적을 화면에 많이 남겼다. 같은 제목의 시리즈 작품에서 아래로 시원하게 내려그은 붓질은 그대로 미세한 빛의 일렁임으로 변한다. 그가 그린 오로라는 애초에 추상과 구상의 구별이 무의미한 경계의 영역에 존재한다. 하지만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알프스 고산지대의 빙산이 녹아내려 그 아래의 그림같은 마을이 다 사라져 버렸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리는 것을 보면, 단단함과 유동성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저 신비로운 광경을 극지방에 가까운 극한의 기후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아름다움을 간취하기 위한 힘든 노고를 생각하게 한다. 지상 부분보다 하늘 부분의 비중이 압도적인 화면은 낭만적인 취향을 알려준다. 그의 작품은 지상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초월하는 숭고미에 호소한다.
물론 설산의 풍경이라서 그렇겠지만, 지상은 창백한 흑백이고 천상은 다채롭다. 관심이 가는 대상에 후광이 비치는 것 같은 환영이다. 인간은 자신이 딛고 선 대지 위에 펼쳐진 저 먼 곳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가지는 존재다. 하지만 오로라들 사이에서 빛나는 별들 또한 돌덩이 아니겠는가. 불타는 돌인가 식어가는 돌인가, 생성되는 돌인가 소멸되는 돌인가의 차이일 뿐. 먼지(cosmic dust)가 뭉쳐진 동질이상의 존재라는 것은 돌/빛을 바라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주에 대한 관심은 초월의 기미를 띠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한 유기체의 삶의 연대기와 비교할 수 없는 천문학적 시공간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무한한 우주 속의 유한한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들의 추구가 신화와 종교, 그리고 예술과 과학을 낳았을 것이다. 김성해가 과학을 전공한 화가라는 점은 그림이 그 모든 유의미한 것들을 종합할 수 있는 심미적인 활동임을 알려준다. 세계를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명의 발전을 낳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밤하늘만 쳐다봐도 깨달을 수 있다.

Chaos 91x72cm Oil on canvas 2023

Cosmos Within 116.7x90.9cm mixed media on canvas

Into the Space 91x72cm Oil on canvas 2024
작품 [Between Light and Void](2025)에서 어둡고 깊은 배경 위에 화려하게 빛나는 색 점들이 흩뿌려진 양태는 추상표현주의 풍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맥락에서 보자면 우주적 풍경이다. 추상이든 풍경이든 움직임은 극대화된다. 고대 원자론자들은 원자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상상하면서 원자만큼이나 중요한 관념을 전제했는데 그것은 바로 허공이다. 장 살렘의 [고대 원자론]의 논지에 따르면, 빈공간이 없다면 원자들의 이합집산은 불가능하고 세계의 근본 원리인 영원한 변화는 불가능하다. 비어있는 것에 대한 의미 부여는 무엇인가로 이미 꽉 차 있는 낮의 일상을 상대화시킨다. 밤은 일상 속 우주이다. 모리스 블랑쇼는 [문학의 공간]에서 ‘밤은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음의 출현이다. 밤, 그것은 텅 빈 것’라고 말했다. ‘낮은 그 임무들을 성취함에 있어 한발자국씩 밖에는 전진하지 못한다’(블랑쇼) 반면 꿈과 무의식, 그리고 노동으로 고갈된 몸의 회복이 일어나는 시공간인 밤은 도약과 비약의 장이다.
낮/밤의 세계는 코스모스/카오스의 관계와 같다. 작품 [Chaos](2023)는 그저 혼돈이 아닌 질서를 배태하는 잠재적 상태를 표현한다. 생명은 38억년 전의 지구의 바다 상태인 원시 스프(pimordial soup) 속에서 여러 가능성을 실험한 끝에 유전자의 조합이 잘 맞춰진 일부가 지상으로 진출하여 문명의 뿌리를 내렸다. 굳건한 산도 흐르는 용암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이미 존재하는 것만을 인정하는 실증주의적 관점도 있지만, 예술이야말로 가능성을 중시한다. 그래서 예술은 혼돈과 친하다. 매번 새로운 세계를 열기에 영원히 익숙해질 수 없는 점이 예술의 위대함이자 곤란함이다. 카오스의 철학자 미셀 세르가 말하듯이 현실은 수많은 가능성의 일부가 우연하게 고착된 것일 따름이다. 영원한 질서로 간주되는 우연의 단면들은 시간의 시험을 이기지 못한다. 문명은 완만한 변화가 아니라 갑작스런 문턱과 만나 도약해 왔다. 작품 [Chaos]는 우주적 심연이 요동치는 형상으로 표현되었는데 파도치는 바다나 급변하는 기상현상 등을 통해 체험된다.

The Universe 116.7x90.9cm Oil on canvas 2024

Whispers Beyond the Cosmos 116x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5
지표면 위에 살짝 걸쳐진 인간 문명은 언제라도 거친 자연력에 의해 그것이 기원했던 카오스로 돌아갈 수 있다. 역동적인 붓놀림에 실린 심연의 색감은 20세기 초반 추상미술이 출발할 당시에 종말론이나 신지학 등, 신비주의적 사유와 밀접했음을 떠올린다. 물론 그들은 그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상상했고 상당 부분 실현되었다. 작품 [Cosmos Within]와 [Creation & Extinction](2025)는 카오스를 상상하는 이는 코스모스도 상상하며, 그반대도 사실이다. 창조와 소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반대되는 것의 역설적 결합은 그의 작품이 ‘그려서 지워가는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과도 유사하다. 주제와 방법, 내용과 형식은 밀접하다. 작품 [Echoes of the Beginning](2024)에서 모든 시작은 유동적이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며 부피가 큰 나무 또한 작고 보드라운 떡잎부터 시작한다. 김성해의 작품에서 시작은 빅뱅 이론처럼 폭발적이고 그것은 오랫동안 반향 된다. 깊은 공간감을 가진 배경 위에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펼쳐지는 형상은 삶의 과정을 응축하는 듯하다.
어떠한 살아있는 개체도 깊은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나오고, 가장 빛나는 순간을 거치며, 그 이후에는 빛은 약화되고 스러져 갈 것이다. 작품 [Into the Space](2024)에서 소용돌이 치는 형상은 모든 것이 사라지거나 생겨나는 빈 중심을 가진다. 그곳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속도감 있게 휘몰아치는 색점들은 검은 구멍을 중심으로 배열된다. 작품 [The Galaxy](2024)에서 지상의 풍경과 접한 우주의 풍경은 유한과 무한의 경계를 보여준다. 무한의 영역에서 지상의 풍경이나 물감의 물성이 아닌 빛으로 폭발한다.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보면서 지구 또한 하나의 점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작품 [The Universe](2024)에서 구체적 형상과 관련되지 않은 색과 선에도 흐름이 내재한다.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합리적 구조이다, 작품 [Whispers Beyond the Cosmos](2025)는 추상적 화면 가운데 식물적 형상이 감지된다. 그것은 근대의 시인이자 화가 블레이크가 한 알의 모래알에서 우주를 보듯, 현대의 화가는 식물의 형상 속에서 우주를 본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