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에 스민 삶과 죽음의 흔적들 

  

이선영(미술평론가)

  


작업실보다는 방랑자처럼 붓 한 자루 들고 돌아다니며 그리는 것을 즐기는 한상진의 주된 소재는 풍경이다. 백두대간 등 실제의 풍경으로부터 받은 영감이 핵심적인 작품은 유명 장소를 쇼핑하듯이 둘러보는 관광객의 시선이나 정상 정복을 위해 떠나는 조직적인 산행도 아니다. 그의 작품에 산이 많이 있어도 대부분 길섶에서 바라본 풍경들이다. 지리산이나 계룡산같이 유명한 산부터 접경지의 산자락 등을 하염없이 걷다가 즉석에서 현장 작업을 하기도 한다. 겨울에는 보온병 안의 물도 재료가 된다.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대, 자연의 고요한 움직임은 그에게 감흥을 준다. 그 시작은 예술과도 비슷하다. 작품 [먼 곳의 풍경]에 나타나듯, 산은 그에게 무궁한 영감을 주지만 사막 속 신기루처럼 다가가면 멀어지는 환영같은 실재로 다가온다. 그의 풍경은 고정되지 않고 흐른다. 그것은 ‘목적 없이 천천히 걷는 시간인 소요(逍遙)’의 산물이다. 그에게 소요는 ‘무위(無爲)를 향한 길 떠남’이다. 




NoBoundary 무경계 2024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60.6 x 90.9 cm Gongju, Chungcheongnam-do



NoBoundary 무경계ㅡ공산성  2024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41.1x24.2cm



소요는 그의 작품이 ‘생성되는 자리이며 오늘날의 세계가 필요로 하는 빈공간이자 멈춤, 중지와 같은 개념들’(2021)과 연관된다. 이러한 무위의 행동은 쌩쌩 돌아가며 점점 더 조여지는 문명과의 거리를 상정한다. 그의 작품은 문명은 자연에 비해 비중이 낮다. 밤비 내리는 풍경 [夜雨]에서 도시의 흔적은 화면 아래에 낮게 깔린 가로등 몇개가 전부다. 인간은 발명을 통해 밤을 정복했다고 믿지만, 아직도 가장 무서운 것은 자연이다. 기상이나 기후의 급격한 변화는 가상이 아닌 실재다. 실재는 삶과 죽음의 원천이지만 코드화되지 않는다. 한상진이 그리는 대지와 물, 또는 그 결합이 실재계와 비유할 수 있는 형상이다. 풍경은 흐릿하지만 현실적이다. 작가는 하늘에 압도적인 비중을 둠으로서 자연과 문명을 대조한다. 그것은 현대의 낭만주의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체와 객체의 합일을 관념적으로 상정하는 19세기 풍의 낭만주의는 아니다. 


알베르 베갱은 [낭만적 영혼과 꿈]에서 ‘낭만주의자들은 그 한계를 깨고 즉각적으로 무한 속에 침잠하여 생명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 안에서 기분 좋게 용해되기를 추구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한상진의 ‘낭만주의’는 주체와 객체 간의 동일성이 아닌 차이를 중시하는 감각에 있다. 그는 ‘풍경을 통해서 내가 나로부터 달라지는 지점과 새로운 이미지를 만나려 한다’. 그의 예술적 여정은 ‘예술이 규정된 양식이나 형식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변화하는 삶과 시간 속에서 발생하며 조우하는 것이라는 믿음’(2024년)과 관련된다. 탈모더니즘의 경향 속에서 낭만주의의 숭고미는 되살아났다. 장-뤽 낭시는 [숭고에 대하여-경계의 미학, 미학의 경계]에서 예술의 미와 숭고를 비교한다. 아름다움은 ‘윤곽과 그것이 남기는 자취 사이에 성립하는 엄정한 일치이다. 형태나 윤곽은 경계를 한정한다. 그것은 미가 하는 일이다. 반면 탈경계는 숭고의 영역’이다.  




NoBoundary무경계 2022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145.6 x 112.0 cm Yanggu Gangwon-do



Around the time 무렵 2024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44.0 x 27.4 cm



‘숭고는 경계의 가장자리에서 발생하는 탈경계의 움직임이다. 탈경계의 자취. 탈경계는 경계의 바깥쪽 가장자리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시작만 거듭할 뿐,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시작의 끝없음이다...시작의 가능성, 그것이 바로 자유이다. 자유는 뛰어나게 숭고한 관념’(장뤽 낭시)이다. 명확한 윤곽을 가지는 형태가 아닌 상태의 연속일 뿐인 바탕의 형상은 숭고의 미학과 닿아있다. 하지만 탈경계란 단지 무한함이기 보다는 경계를 전제한다. 한상진의 작품이 자연이라는 지시대상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다. 자연적 실재를 함부로 소거시킬 수 없는 것은 작가가 농촌 출신이라는 점도 생각할 수 있다. 태어나면서 스마트기기를 달고 산 세대와 달리 1971년생의 그는 농촌-산업-탈산업 사회를 두루 거친 세대다. 초등학교 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그는 그곳이 그리워서 고향집을 그리며 놀이 삼아 그림을 그렸다. 어린 시절의 원초적 기억은 세월이 갈수록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수직지향의 현대사회와 역행하는 수평지향의 태도는 작가로 하여금 바깥을 바라보게 했다. 화가의 길도 바깥에 있다. 종종 전쟁으로 치닫는 바람 맹렬한 경쟁의 시대로부터 떨어져 나와 아무도 걷지 않으려는 길을 걷는다. 부는 대로 구름 따라 정처 없이 걷다가 다가간 그곳들을 작가는 온몸으로 느끼고 기억한다. [눈멂](두나무아트큐브, 2023년) 전은 시각성에 집중하는 근대 미술의 패러다임을 신뢰하지 않는다. ‘땅 위에 떨어진 열매, 투박하게 마모된 조약돌, 빛바랜 플라스틱이나 유리 파편들, 녹슨 쇠붙이, 바닷가에 떠내려온 부유목, 수변 풍경, 적벽... 풍상이 담긴 나무들, 나타나고 사라지는 하늘의 구름, 하늘과 땅의 경계가 그려내는 모호한 풍경들, 그것들은 그 자체로 원초적이고, 거칠고, 아름답고, 숭고하고 강렬히 눈을 멀게’ 한다. 그에게 ‘시선의 불가능성’은 ‘언어가 의미에 닿지 못하고 끊임없이 지연되고 미끄러지는 것처럼 존재의 지평에서 의미로 포획될 수 없는 나머지와 포옹’(2023)하게 한다. 




Around the time- Face of a Landscape 무렵-풍경의 얼굴 2025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41.1 x 73.2 cm White clouds and light shafts encountered at Seryu Station



Dim Light  미명微明 2024  캔버스에 아크릴 혼합재료 90.9x72.7cm 원주, 백운산, 12월 새벽무렵



충남 공산성 인근의 [안개]는 축축하고 서늘한 기운이 지상의 풍경을 녹여버릴 듯하다. 그냥 봐도 멋졌을 산성 풍경은 기상현상으로 해체된 불확실한 형상으로 남아있다. 새벽이슬과 안개, 구름과 비 등으로 가득한 그의 풍경은 앎을 통한 이해와 지배, 소유를 전제하는 빛-시각의 형이상학과 거리가 있다.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시간과 타자]에서 모든 것은 빛 속에 포착될 수 있다고 믿는 이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성은 모든 대상을 의식의 언어로 말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독단적 이성은 존재를 하나로 보지만, 타자를 인정하는 철학은 다양한 존재를 인정한다. 타자에 방점을 주는 사유는 좌우익 전체주의가 다시금 준동하는 현대에 다시금 중요해진다. 전체주의는 교활하거나 멍청한 독재자만큼이나 기술-관료주의에 의해 실행된다. 한상진은 ‘데이터화, 수치화를 통해 모든 존재를 의미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보는 자본의 힘은 폭력적’이라고 비판한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전체성은 동일자의 지평이고, 인간이 자기실현의 원 속에서 무한히 자기를 확장해 가는 힘’이다. 도래해야 하는 타자의 철학은 ‘그 자체 동화할 수 없는 것, 절대로 다른 것, 경험에 의해서 동화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 또는 그 자체 무한한 것, 개념적 이해에 스스로를 내맡기지 않는 것과의 관계로서 사유’(레비나스)한다. 형태가 아닌 형상, 고정이 아닌 과정을 지향하는 한상진의 작품은 타자를 향한다. 동일자의 시선은 대상을 고체처럼 고정시키지만, 그의 작품은 액체나 기체처럼 흐른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운무는 비가 되어 내리기도 하고, 온도 차이로 인해 기화하기도 한다. 잠재적인 움직임으로 가득한 흐릿하고 어스름한 화면은 경계를 넘나든다. 하지만 넘나듬듦은 경계를 다시금 인식하게 한다. 어렴풋이 드러나는 대상은 생략된 선들은 내부에 숨기고 있다. 앞서 인용한 미와 숭고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Mountain Clouds 2 산운山雲 2 2025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90.9x60.6cm 양구 대암산에서



Mountain Clouds3 산운山雲3 2025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90.9x60.6cm 공주 계룡산



‘미가 저 자체의 바깥으로 향하는 또 다른 종류의 유출, 즉 숭고를 거쳐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저 자신의 고유한 특질을 획득할 수 있다. 미는 저 자신을 넘어설 때만 미가 된다...숭고는 미에 부차적으로 덧붙여지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형시키고 빛나게 하기 위해 있다.’(장-뤽 낭시) 작가는 변화 그자체가 주인공인 시공을 담는다. 단지 일회적 우연을 중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다니고 여러 번 그린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제주,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에 이르는 여러 지역에 머물며 작업했던 기회와 관련된다. 우리나라 전역이 그렇듯이 어디든 산이 많다. 어떤 곳이든 구름이나 안개, 비 같은 유동적 현상에 감싸인 장면에서 지형적 특성을 가늠하기 힘들다. 풍경은 기체나 액체에 흐릿한 이미지는 새벽같이 그가 선호하는 시간대도 한몫한다. 이름이 있는 산이든 아니든 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산들의 묵직한 실재감은 그 주변을 감도는 기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바위와 흙 그리고 그것을 덮는 식물 등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러한 생략이 아쉬운 듯 수묵 드로잉으로 그린 [묵상] 시리즈를 통해 풍경과 마주해 놓았다. 풍경이 멀리서 바라본 시점이라면 토분에 담긴 야생초나 떨어져 상처 난 과일, 이끼 등은 미시적이다. 먹을 붓에 찍어 속도감 있게 그린 작은 대상들은 마치 점묘화같이 세밀한 붓의 궤적을 남긴다. 대상의 배경은 없다. 종이에 먹으로 그린 작품이니 동양화의 여백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작가는 그것을 빈공간에 가득한 빛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빈공간을 중시하는 것은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미립자처럼 보이는 대상의 구성요소들은 빈공간을 통해 재배열된다. 그것은 재현이 아닌 생성의 과정이다. 미광(微光)의 풍경에 비한다면 지상의 작은 것들을 비추는 빛은 충만하다. [묵상]은 미시입자들로 가득한 축소된 자연이다. 너무 낮은 곳에 널려 있어 눈에 띄지 않는 돌멩이들은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띄워놓았다.


 


No Limit - Disappearing and Appearing 3 무극- 사라지며 나타나는3 2024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33.5 x 24.3 cm



무렵ㅡ밤 눈 2022_2025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116.7x90.9cm 구례구, 지리산 가는 길에서



미명(微明) 2024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90.9x72.7cm 원주, 백운산, 12월 새벽무렵



이번 전시의 부제 [무렵]에는 ‘낮은 곳에서 맞이한 빛나는 순간들’이라는 부제가 또 붙는다. 길가는 와중에 그의 눈에 띄어 수집된 돌들은 산이나 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한상진의 작품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은 미미하다. 사람은 풍경 안에 내재할 것이다. 작은 영토지만 한 많은 사연이 많은 우리의 근대사를 생각할 때, 모든 능선들은 무덤처럼도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한반도 곳곳에 편재하는 삶과 죽음의 흔적들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구름이나 안개 같은 기상현상은 베일 역할을 한다. 드리워진 베일은 신비하면서도 슬프다. 작품 [山雲 1]은 양구의 대암산 풍경인데, 그곳은 한국전쟁의 격전지로 알려져 있다. 비극적 역사는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에 무게와 깊이를 더한다. 사연과 서사가 부족한 작품은 눈만 스칠 따름이다. 작품 [임하도ㅡ윤슬]의 배경인 해남 임하도는 세월호와 관련된 지역이다. 빛나는 바다 쪽을 바라보는 새는 애도의 풍경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여러 겹 층진 대지를 흘러내리는 물감 자국 또한 슬픔을 전달한다. 푸른 색감이 주도적인 전시 작품들에 붉은 색감의 작품 [미명(微明)]은 2021년 담갤러에서의 전시부제와도 동일한 제목이다. 새벽 무렵에 본 강원도의 산은 불타오르는 듯 붉다. 더 자세히 보면 물감은 아래쪽으로 흘러내린다. 붉은색 계열은 푸른색 계열보다 물리적으로 에너지가 적다. 빛은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이며 물질로 치면 미량이다. 또 다른 [微明]에서는 주도적인 푸른색감이다. 같은 장소(백운산)와 시간(새벽)이지만 색감 차이는 크다. 대상 그자체보다는 상황이나 상태가 중요하다. 지상에 우뚝 솟은 산을 바닥에 거의 깔고 하늘의 비중을 높인 [미명]은 양자의 구별이 무화되기 시작할 무렵 지상과 하늘을 보여준다. 흙과 공기의 밀도 차이는 명도의 차이를 낳는다. 작가는 미명 시리즈에 대해 ‘시야를 불가능하게 하는 일상 속의 풍경들에 매료되곤 한다’고 말한다. 




Night Rain夜雨 2024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24.5 x 41.0 cm



.Imhado - Water Shimmering 임하도ㅡ윤슬 2022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60.6 x 91 cm From Imhado, Haenam



‘흐릿한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서, 어른어른하게 굴곡진 비닐 너머의 자리에서, 눈 내리는 겨울 풍경 속에서, 흐린 날에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미명의 그늘진 풍경 속에서...’(2021) 빛에 대한 작가의 감수성은 구름을 표현한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흰구름과 청명한 하늘이 만나는 하늘 풍경에서 사람의 옆모습 같은 실루엣이 발견되는 작품 [무렵-풍경의 얼굴]은 태양은 직접 내리쬐지 않는다. 구름의 변화무쌍한 외곽선은 보는 이의 마음이 투사될 수 있다. 한반도가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아 아열대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 즈음, 우기(雨期)에 열린 [무렵] 전은 습도가 높은 전시장 바깥의 분위기를 공유한다. 이번 우기에 폭우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폭염이 이어진다. 이제 급작스럽게 변하는 기상현상은 위험한 변수가 되었다. 자연에 거듭하여 축적된 문명의 폭력이 되돌아오는 것이다. 


허연 구름 덩어리로부터 중력의 방향으로 떨어지는 형상은 흘러내리는 물감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다. 변화무쌍한 기상현상은 자유로운 회화적 붓터치의 장이 된다. 나란히 걸어놓은 같은 크기의 연작 [山雲]은 급변하는 자연의 캔버스를 옮긴다. 장소는 양구 대암산과 공주 계룡산 등 여럿이지만 대자연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역의 구분은 인간이 붙인 자의적인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산과 구름이 만나면 차갑고 축축한 안개같은 상태가 되는 것은 공통적이다. 특수성은 보편성이 된다. 특정 시공간에서의 경험은 온도, 농도와 밀도 같은 물리적 차원의 움직임으로 번역되고 이는 회화적 강도를 조절하는 기초가 된다. 그의 작품은 유동적이지만 액체보다는 더 운동에너지가 높은 기체 상태가 압도적이다. 공기는 지상의 강력한 물리적 괴체를 중간단계를 생략한 채 승화시킨다. 고체에서 바로 기체가 되는 드라이아이스 덩어리처럼 말이다. 그에게 실재는 감춰져 있고 징후를 통해서만 짐작된다. 




Distant Landscape 먼 곳의 풍경 2024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34.8 x 53.2 cm



안개 2024 32.2x53.1cm  Acrylic mixed media on canvas 충남 공산성



[무극-사라지며 나타나는] 시리즈는 어떤 형상도 감지되지 않는다. 추상에 가깝고 단색화같은 단일한 색조가 특징이지만, 그의 전체 작품 맥락에서 보자면 그냥 추상이 아닌 자연으로부터 추상된 상태이다. 나타남/사라짐이 호환되는 역설 어법은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 기저에 깔려있다. [무경계] 시리즈는 공주, 공산성, 양구 등 다양한 지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풍경은 고체/액체/기체, 하늘/땅/물 등의 경계가 모호하다. 정지된 매체인 회화에서 움직임을 도입하는 방식은 정중동의 풍경과 어울린다. 공주의 풍경에서 산 중턱에 걸친 안개는 물이 되어 아래로 떨어지며 공산성 풍경에서 산은 화면 아래에 낮게 깔려 있지만 넓은 하늘을 통해 자신의 실재감을 발산한다. 양구의 풍경에서 영감받은 [무경계]는 블루와 화이트 계열의 색조만이 자연으로부터 출발했을 것이라는 단서를 주는 추상화로, 여기에서도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한상진의 시리즈 작업은 구체적인 시공을 벗어나 회화적 맥락으로 연결된다.

 

[무렵-밤눈]은 구례구에서 지리산 가는 길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밤에 내리는 눈은 눈앞의 모든 광경을 입자로 흩날리게 한다. 구름 낀 하늘이 기이한 형상으로 눈길을 끄는 작품 [무렵]에서 순간적 형태를 고정시키는 재현은 맘껏 붓을 놀리면서도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해체된다. 길에서 만난 풍경은 ‘새벽과 해질녘 풍경은 모호한 이미지들이고 비와 안개 눈의 풍경처럼 본래의 모습으로부터 변화하고 흐르는 시간과 공간’이다. 그것들은 ‘사실적 재현이 아니라 풍경과의 접촉을 견지하며 몸의 흔적으로’(2020) 나타난다. ‘나의 그리기는 고요하게 내려놓는 순간에 발생한다. 소요(逍遙)하는 시간 속에서 무심히 하늘을 바라보는 텅 빈 시선, 판단하지 않는 태도, 너와 내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님(不二)을 깨닫는 시간 속에서 경계(境界)는 사라지고 삶의 유한함 속에서 손에 잡을 수 없는 무한한 것과 만나게 하는 과정’(202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