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의 집 한옥, 살아 숨 쉬는 집
고충환 | 미술평론가
한옥은 땅집이다. 땅 위에 누운 것 같고, 땅 위로 돋아난 것 같고, 땅이 낳은 것 같고, 땅에 속한 것 같다. 자연을 지향하는 것들은 땅의 결을 따라 눕는다. 그러므로 한옥은 자연 친화적이다. 반면, 신과 형이상학, 종교와 교회와 같이 하늘을 지향하는 것들은 하늘을 향해 키를 키운다. 그 결은 좀 다르지만, 문명과 도시도 그렇다. 한옥은 문명과 도시에 지친 삶을 보듬고 위로하고 치유한다. 땅으로부터 유래한 잃어버린 본성을 일깨워준다. 이처럼 상실한 본성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한옥은 생태 친화적이다. 그리고 어쩌면 존재론적이다.
여기에 한옥을 모티브로 한 작가들이 있다. 남다현 작가는 서울 남산골한옥마을 입구의 대문과 이승업 가옥 사랑채 툇마루를 전통 한옥 양식 그대로 복제했다. 크기와 모양이 실제 그대로지만, 알고 보면 스티로폼으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폼보드와 시트지 같은 생활용품을 덧붙여 시공한 것이다. 실제 그대로지만, 사진을 이용한 복사와는 다르다. 복사가 원본과 사본과의 관계를 묻는다면, 복제는 모형에 가깝다. 모형이지만 실제에 흡사한 닮은꼴로 인해 실재를, 현실을 재고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김선두는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라북도 정읍의 김명관 고택의 벽면을 위한 벽화를 그렸다. 알다시피 전통 한옥의 벽면은 생긴 그대로의 나무를 이용해 골조를 만들고, 그 사이를 흙으로 메워 하얀 회칠로 마감한 구조다. 그 벽면 위에 작가는 모란과 석류와 복숭아와 같은 부귀영화와 장수를 상징하는 모티브를 그렸고, 또 다른 벽면에는 맨드라미와 나리꽃이 핀 꽃밭을 들여놓았다.
전통적으로 한옥은 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행랑채 등 다양한 채들로 구성돼 있다. 이런 채 나눔 구조에 착안한 김민주는 조선 시대 사당도인 <감모여재도> 속 집 형태를 모티브로 채를 나눈 집 안에 자연을 들여놓았다. 집 안에 자연을 들여놓은 작가로는 안윤모 작가도 있는데, 꽃과 부엉이, 벌과 나비가 어우러진 한옥 정원으로 유년의 기억을 소환한 것이라고 했다. 전통적인 화조도와 초충도를 재해석한 것이면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이상세계를, 그리고 여기에 차경 그러므로 빌려온 풍경의 개념으로 대변되는 자연 친화적인 삶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 한옥을 구성하는 채는 한글 자음의 글꼴을 닮았다. 김도영 작가가 각 추사 김정희의 고택을, 안동 도산서원의 농운정사를, 해풍 부원군의 윤택영 재실을 이런 글꼴에 맞춰 재해석했다.
차경 그러므로 빌려온 풍경은 다르게는 차용한 풍경일 수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 삶의 지혜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기왕의 모티브를 끌어와 편집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제3의 현실이라는 또 다른 현실을 제안하는 방법론과도 관련된다. 여기에 하루.K 작가는 병산서원과 안동소주, 차와 안동마을, 안동의 특산물 자반고등어, 하회탈과 낙화놀이 등 안동의 지역문화를 차용하고 편집하고 재구성한 그림을 그렸다. 현대인의 이상향을 음식 풍경으로 재해석한 것인데, 그릇 속에 음식 대신 풍경이 들어있는 것이 그렇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호리병 속 술이 그렇다. 그리고 남경민 작가는 자연풍경 대신 옛 화가의 작업실을 불러온다. 타임머신을 타고 방문한 신윤복과 겸재 정선의 화방에는 정작 화가가 없다. 화방에서 관객들은 화가의 예술혼을 수혈받을 수가 있는데, 위대한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싶다는 후배 화가들의 욕망을 간접적으로 실현해주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여기에 폐가가 있다(김유정). 도자기와 항아리 그리고 반닫이 등 버려진 물건과 함께 한때 집을 지켰을 진돗개와 고양이가 어슬렁거린다. 그 폐가 위로 공기정화 식물인 틸란드시아가 뒤덮고 있다. 생활공간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한옥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 것일 터이다. 옛집에 대한 향수와 함께 근대생활사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 것일 수도 있겠다. 평소 작가는 생태에 관심이 많은 편으로, 틸란드시아와 질경이가 그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뿌리도 없이 자라는 틸란드시아도 그렇거니와 한옥 주변에 지천인 질경이가 한옥의 끈질긴 생명력을 증언해주고 있다. 한옥을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유기체로 보는 생태학적 관념을 반영한 것일 터이다.
그리고 여기에 궁궐이 있다. 보통 한옥보다 규모가 크고, 다른 한옥에는 없는 이런저런 상징적 의미가 권위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김홍식 작가는 용비어천가의 첫 구절에서 제목을 따온 <해동 육룡이 나르샤> 연작 6점을 그렸다. 6마리 용처럼 날아오른 건국(조선)의 주역들과 세종대왕의 치적을 기린 것으로, 종묘 등 전통 건축에서 치렀던 궁중 행사와 제례 의식, 세종의 공덕을 기리는 음악 치화평 공연 장면 등의 모티브를 전통적인 궁중 기록화 양식인 의궤도병의 형식을 차용해 그렸다.
그리고 작가 이윰은 AI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의 삶과 내면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저 너머 세계의 노래와 그림이라는 뜻의 <해세가도>라는 제목처럼 역사적 인물이 생전에 못다 이룬 꿈을 대신 현실화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저 너머 세계의 노래와 그림이라는 의미의 제목 그대로 평소 작가가 지향하는, 현실과 비현실, 감각적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의 성격에 부합한다는 생각이다. 작가가 자기에 꼭 맞는 도구를 만났다고 생각되는 만큼, 향후 AI를 도구로 작가가 열어놓을 세계가 기대된다.
한옥은 단순한 주거공간만은 아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진 삶의 태도를 지향하는, 흙, 물, 불, 공기, 바람, 대기, 기후, 계절과 더불어 호흡하는 생태 환경을 지향하는, 그런, 세계관의 총체다. 주체와 타자가 경계를 허물어 넘나드는, 타자에 대해 열려있는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 자연 친화적이고 생태 친화적인 세계관을 소리로 표현한 작가들도 있다.
화순 운주사와 산청 대원사에서 채집한 소리를 재생한 김준 작가가 그렇다. 어스름 새벽녘에 스님이 마당을 비질하는 소리, 바람이 흔드는 풍경 소리와 같은 사찰의 일상을 담은 소리와 새 소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와 같은 숲에서 나는 소리가 마음을 씻어내리고 자기 내면과 만나게 한다. 그리고 노치욱 작가는 신라 성덕왕 24년에 제작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의 동종에 해당하는 상원사 동종을 타종하는 소리를 재생했다. 원래는 보존을 이유로 타종하지 않고 있었던 것인데, 3D 모델링 기술을 활용해 가상공간에서 타종하는 소리를 재생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잠자던 전설을 일깨웠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여기에 한옥을 소재로 한 프로젝트와 아카이브가 있다. 건축 집단 MA(유병안 건축가)의 <숲속의 호수>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미국 미네소타주 콘코디아에 위치한 한국어 교육 마을 숲속의 호수는 전통 한옥의 철학과 공간 구조를 현대 건축에 적용한 실험적 사례로서, 전통적인 한옥의 생태적 가치가 현대 건축에서도 성공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전통 한옥의 현대화와 확장 가능성을 예시해주는 한편으로, 조형예술과 건축이, 조형예술과 아카이브가 경계를 허물고 혼용되는, 최근 미술관의 변화된 전시 행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총 13인(팀)에 달하는 현대미술 작가가 전시에 참여해 전통 한옥을 재해석했다. 한옥의 생태적 가치를 현대미술로 조명한 것으로 볼 수 있겠고, 생태 담론을 매개로 전통과 현대미술이 만나는 접점 가능성을 형식 실험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가족으로 대변되는 공동체가 해체되는 시대에 열린 전시여서 그 의미가 더 크게 와닿는 부분도 있다. 여기에 한옥이라는 특정 주제를 전제로 한 만큼 특정 주제와 연계된 경우가 아니라면 평소 접하기 어려운 잠재적인 작가층과 다양한 결의 작가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효과도 있다.
전통을 소재로 한 프로젝트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사비나미술관은 2018년 <한국 전통문화에서 찾은 최초의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이번에 한옥 전시 이전에도 그동안 한글과 한복을 소재로 한 전시를 꾸준히 열어왔다. 여기에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과 시로타 화랑, 주캐나다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과 갤러리 101, 폴란드 바르샤바 와지엔키 왕궁박물관, 헝가리 부다페스트 주헝가리한국문화원, 주상하이한국문화원과 상하이예술품박물관,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초대대통령박물관에 이어 올해에도 나이지리아 아부자 니케아트갤러리 등 국내외 순회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사립미술관이 자력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K컬처를 표방한 것인 만큼, 국가경쟁력과 관련되는 것인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의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