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외로운 존재다. 죽으나 사나 그렇다. 살아서는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 치고, 죽어서는 평가에 시달린다. 죽은 사람이 뭘 알겠느냐 하겠지만, 이름이 남으니 그렇다. 그래서 예부터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대저 좋은 이름을 남기기란 외로움에 세제곱한 것만큼 어렵다. 역사의 황량한 벌판에 내팽개쳐진 채로! 8월 12일, 故 김차섭(1940-2022) 화백의 예술과 삶을 주제로 한 1회 학술 세미나가 이화여자고등학교 100주년기념관 프라이홀에서 열렸다. 김차섭기념사업회(이사장 김명희)와 명지대 문화유산연구소(소장 이지은)가 김 화백의 작고 3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이 행사에 많은 미술관계자와 청중이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
세미나 주제인 “그림은 내 생명이다”란 문구는 김 화백의 80년대 뉴욕시절의 커피 컵 그림 제목 〈ART IS LIFE〉에서 온 것이다. 김 화백은 커피 컵에 인쇄된 “It’s our pleasure to serve you.(당신에게 봉사하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다.)”란 문장을 “It’s your pleasure to torture me.(나를 고문하는 것은 당신의 기쁨이다.)로 바꿔 자본주의의 억압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뉴욕에서 겪은 그럴만한 개인적인 사연이 있었다.

故 김차섭, 1992, 내평리, 불태운 직각삼각형과 함께.
김차섭 화백은 196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현대미술사에 전위의 족적을 크게 남긴 AG그룹(1969-75)의 창립멤버로써 1969년 전위작가 김구림과 함께 국내 최초의 메일아트 작품인 〈매스 미디어의 유물〉을 공동 제작, 발표했다. 백지 위에 각자 지문을 찍고 반으로 찢은 이 일련의 작품을 세 차례나 우편으로 받은 사람들은 당시 삼엄한 군사정권하에서 공포심에 젖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마지막 편지에는 명함 크기의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귀하는 매스 미디어의 유물을 1주일 전에 감상하셨습니다.” 이 작품은 전위와 실험의 명편으로 인구에 회자된다.
그 후 도미(渡美)하여 록펠러 장학금을 받아 1977년 프랫인스티튜트에서 미술학 석사학위(MFA)를 마쳤다. 강원도 춘성군 내평리 작업실과 뉴욕을 오가며 작업에 몰두한 김차섭의 삶은 그 자체가 유목이었다. 노마드(nomad), 곧 밤하늘의 별을 이정표 삼아 미를 찾아 떠도는 목자의 삶이란 곧 고독한 유목이 아니던가? 그런 그의 손에는 파이(π)를 상징하는 야구공이 들려 있었다. 스키타이 문명의 상징인 마상배(馬上盃)와 야구공의 지름은 각각 7.2cm로 같다. 김차섭은 이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마치 골리앗이 다윗에 돌팔매를 던져 도전했듯이, 스키타이 문명을 일으킨 흉노족의 후예인 경주 김씨 차섭은 이를 일생의 화두로 삼고 서구 문명의 아성에 도전했다.

전위무용가 홍신자, 공연 장면
김 화백 작고 전인 2018년의 어느 날, 내평리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야구공을 손에 쥐고 ‘7.2cm π’의 스키타이 문명의 상징과 의미를 설명하던 김 화백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눈빛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돈키호테 혹은 골리앗 식의 만용이 아니라, 일생을 건 투쟁이 모이면 미래의 어느 날 문화적 역전이 도래할 가능성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해석이다. 세미나에 참여한 정영목 교수의 ‘역풍: 김차섭의 예술적 태도’, 이지은 교수의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 김차섭의 자화상’, 백지숙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의 ‘김차섭 구상노트 아카이브 개요’, 이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의 ‘김차섭의 실험미술과 기하학적 시각을 통한 세계인식’, 김홍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의 ‘과학적 신비주의자 김차섭 작품에 나타난 ‘파이(π)’의 의미’ 등 다양한 관점의 학술 발표는 60여 년에 걸쳐 형성된 김차섭 예술의 대해부가 본격화됐음을 의미하는 사건이다. 향후 김차섭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기대된다.